[우정이야기] 펠프스는 손으로 쓴 편지를 좋아해
2008 09/02   뉴스메이커 790호
    ‘세상에서 가장 작은 화폭’.
    2008 베이징 올림픽이 낳은 최고의 스타는 미국의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다. 이번 대회에서만 금메달 8개, 통산 전적으로는 올림픽 14관왕의 위업을 달성했으니 가히 살아 있는 신화라고 할 만하다. 올림픽 역사상 전대미문의 기록이다.

    그런 펠프스에 미국인들이 환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펠프스의 일거수 일투족이 미국인의 관심사다. 말하고 입고 먹고 자는 것까지 펠프스의 모든 면이 뉴스거리다. 그가 350㎜의 거대한 발을 가졌고, 일반인보다 6배 더 먹는 대식가라는 점, 어렸을 때 행동장애를 앓았고 19살 때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돼 벌금 250달러를 물고 남들 앞에서 반성하는 연설을 했다는 점 등이 전파를 타고 온 세계에 전해진다. 비자카드, 스피도 등 7개 기업의 후원을 받는 펠프스의 연 수입은 300만~500만 달러(50억 원) 정도.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광고 모델 요청이 쇄도해 수입이 2배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이렇게 몸값이 비싸니 현실성은 없어 보이지만, 펠프스는 우정사업의 마케팅 모델로 적격이다. 그가 팬들과 교신할 때 손으로 쓴 편지로 하기 때문이다. 그의 인터넷 공식 홈페이지(www.michaelphelps.com)에는 이메일 주소가 나와 있지 않다. 대신 “펠프스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라고 묻고는 “아래 주소로 옛날식(the old fashion way) 편지를 보내주세요”라는 안내문이 적혀 있다. 주소는 ‘PO Box 1734 Olney MD 20830-1734’, 메릴랜드 주 소도시인 올니 우체국의 사서함이다.

    팬들에게 보내는 자필 사인도 우편을 이용한다. “사인(autograph)을 원하시면 우표가 붙은 반송 봉투를 넣어 우편물로 보내주세요. 최선을 다해 보내드릴 것입니다”라고 약속하고 있다. 이런 안내 문구 옆에는 우체국에서 찍은 소인이 사진으로 실려 있다. 손으로 쓰는 편지의 의미를 한껏 강조한 것이다.

    우체국 소인은 펠프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그가 금메달 6개를 따고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집에 돌아왔을 때 ‘펠프스티벌’(Phelpstival)이란 이름의 환영 퍼레이드가 열렸다. 이때 우정청은 행사가 열리는 광장에 임시 우체국을 열고 시민들이 가져오는 우편물에 기념 소인을 찍어줬다. 펠프스가 우편을 사랑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도 이때다.

    어디까지나 상상이지만, 펠프스가 미 우정청(USPS)의 광고 모델로 나선다면 어떻게 될까. 그가 TV에 나와 “저는 손으로 쓰는 편지가 좋습니다. 우편을 사랑합니다”라는 식의 멘트를 날린다면 미국 내에 편지 쓰기 붐이 일어나지 않을까. 미국은 올 들어 편지와 같은 1종 우편물 물량이 현저하게 감소하는 추세여서 우정청에 비상이 걸렸다. 따라서 ‘펠프스 효과’로 분위기 반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올림픽이 우정인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은 국내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최초의 근대 올림픽이 열리던 1896년, 아테네에는 우체국이 8개나 있을 정도로 우정이 발달해 우표 판매액으로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역사적 배경이 그것이다. 당시 아테네는 우표를 7만5000종을 발행했는데 그중 1만 종이 올림픽 우표였다.

    올림픽과 우표의 이런 특수관계 때문에 올림픽 개최국은 우표 전시회를 함께 준비하는 게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전통이 되었다.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동안 반드시 문화행사를 열도록 올림픽위원회 규정에 명시돼 있는데, 화폐 전시와 함께 우표 전시회가 그 중심 이벤트인 것이다. 이번에도 베이징 당국은 올림픽 엑스포(Olympic Expo)라는 문화행사를 베이징 전시센터에서 열었고, 각국의 올림픽 우표가 이 자리에서 선보였다.

    베이징 올림픽 기념 우표를 발행한 나라는 세계 100개국이 넘는다. 개최국인 중국은 2005년 11월부터 시리즈로 발행하기 시작해 8종을 발행했고, 유엔우정도 6종을 발행했다. 우리나라도 체조선수를 모델로 한 기념 우표를 발행한 바 있다. 왜 체조일까. 스포츠의 미(美)를 나타내는 데 체조가 유용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일 뿐 종목을 선정하는 데 원칙 같은 것은 없다는 게 이기석 우정사업본부 우표 디자인 실장의 설명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이종탁  jtlee@kyunghyang.com〉






    [우정이야기] 여성 인물 우표는 왜 드물까
2008 03/17   위클리경향 816호
   왼쪽부터 신사임당, 류관순, 육영수 우표.
    5만 원짜리 신권에 신사임당 얼굴이 들어갔다. 신사임당의 아버지 외가인 강릉 최씨 대종회에서 화폐 속 얼굴이 표준영정의 그것과 다르다고 이의를 제기하면서 또 다른 논란을 낳았지만 화폐에 여성의 얼굴이 들어간 것은 처음이다. 이것만으로도 우리 여성사(史)에 큰 의미를 지닌다 할 것이다.

    우표는 어떨까. 우표는 화폐와 달리 한 해에도 수십 종이 발행되기 때문에 위인의 얼굴이 새겨질 여지가 많다. 그러나 여성이 우표에 등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신사임당은 2000년 밀레니엄 시리즈 우표가 나올 때 우표에 등장한 적이 있다. 신사임당의 서체가 새겨진 병풍도를 배경으로 표준영정이 비교적 선명하게 그려져 있어 우표수집가들의 인기를 끌었다.

    유관순 우표도 나와 있다. 1982년 10월 100원짜리 보통우표에 유관순 열사의 얼굴이 등장한 것이다. 보통우표는 특정 기념일에 한정 수량을 찍어내고 마는 기념우표와 달리 수요가 있을 때 한동안 계속 찍어낸다는 점에서 더 많은 수량이 시중에 풀려나간 셈이다. 이들 우표는 지금도 우표 거래 사이트에 가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게 사실상 전부라는 점이다. 125년 한국 우정 역사를 통틀어 이 두 종류 외에 내놓을 만한 여성 인물 우표가 없다.

    수집가들이 좋아하는 우표가 한 종류 더 있긴 하다. 하지만 순수한 의미에서 인물우표라고 하기에는 정치적 색깔이 너무 짙다. 해당 우표는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를 추모하는 우표다. 육 여사는 1974년 8월 15일 문세광이 쏜 총탄에 맞아 숨졌다. 그로부터 석 달 뒤인 11월 29일 고인의 49회 생일을 맞아 당시 체신부가 “나라와 겨레를 그지없이 사랑하시다 가신 여사의 유덕을 길이 추모하기 위해”라며 우표를 발행했다. 육 여사가 많은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우표를 발행한 의도는 명백히 박 대통령에게 잘 보이는 데 있다. 여성 우표라는 것이 당시로선 상상도 못할 때였으니 체신부의 파격적인 아부가 박 대통령을 감동시켰을지 모르는 일이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남성 위주로 전개되면서 위인 반열에 오를 만한 여성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신사임당과 유관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얼굴을 알 길이 없는 고대 인물은 차치하고 근·현대사만 더듬어도 적지 않은 인물이 떠오른다. 일제와 맞선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나 교육자이며 독립 애국지사인 김마리아, 농촌 계몽운동가로 소설 <상록수>의 모델인 최용신 같은 이는 언제라도 우표에 등장할 자격이 충분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 ‘사의 찬미’를 부른 여류 성악가 윤심덕, 최초의 현대무용가 최승희, 최초의 여기자 최은희, 판소리 명창 박녹주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우표에 등장했다고 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우표에 등장하지 못하는 걸까.

    우정사업본부 이기석 우표디자인실장은 “성(姓)에 따른 차별은 없다”고 말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우표 도안에서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보다는 인물우표 자체를 좀처럼 발행하지 않는 데 그 원인이 있다.

    우표는 우정사업본부가 마련해놓은 우표발행세칙에 근거해 발행한다. 여기에 인물우표 발행을 금지한다는 규정은 물론 없다. 다만 “역사적으로 기념할 중요한 가치가 있는 인물·사건으로 50주년 또는 100주년 단위의 기념행사가 있을 때”라는 제한 규정이 있다. 또 정치적·종교적 논쟁의 소지가 있는 소재는 발행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굳이 발행하려 든다면 못할 것은 없다. 유관순 우표는 이런 기념우표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도록 아예 보통우표로 발행했다. 보통우표는 우정사업본부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엔 무엇이든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기념우표도 국민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가능하도록 돼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본의 발행 의지인 셈이다.

    지난주 한·필리핀 수교 60주년 기념우표가 나왔다. 특정국가와 수교한 지 60년이 되었다는 사실도 의미가 없지는 않겠지만 국민 다수의 관심을 끌 사안은 될 수 없다. 그보다 여성 인물우표에 대한 금기 아닌 금기를 허무는 일이 우표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경향신문 논설위원 이종탁  jtlee@kyunghyang.com〉

    [자료출처] 위클리경향 newsmaker.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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