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생의 주역-2] 우표디자이너 이기석 ![]()
‘편지’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써본 것이 언제였던가? 초등 학교 땐 국군의 날이 되면 군인 아저씨께 위문 편지를 쓰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중학교 땐 전학간 친구에 대한 그리움에 편지를 썼고 입시 문제로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던 고등학교 땐 ‘편지’로 시작하여 인연이 된 펜팔 친구를 통해 답답한 현실에서 잠시 나마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가 전 세계를 뒤덮어 버린 요즘에는 길거리에 놓여있는 빨간 우체통의 기능이 무색할 만큼 손수 편지 봉투를 우체통에 넣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어진 듯 하다. 빠르고 편리하게 보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편지’는 자연스레 ‘e-mail’로 대체되었지만 편지함에 비스듬히 꽂혀 있는 편지 봉투를 받았을 때의 설레임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편지를 받아보는 또 다른 기쁨 중에 하나는 가지각색의 모양을 띈 우표를 모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봉투에서 우표를 깨끗하게 떼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던 것이나 우표 앨범의 빈 공간이 조금씩 채워져 갈 때마다 느꼈던 즐거움은 빛 바랜 우표 앨범과 함께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잡았다. 수집 취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수집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우표 수집은 편지 문화가 조금씩 사라짐에 따라 수집 인구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인터넷 잡지 및 신문이 등장했을 때 종이로 만들어진 매체는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현재에도 꾸준히 발행되고 있는 것처럼 우표역시 수집품으로써 꾸준히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표는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되며 다양한 우표의 무늬를 직접 디자인 하는 ‘우표 디자이너’의 세계는 어떠할까? 그것이 궁금하여 찾아간 사람은 대한민국 우표 디자인실 실장 이기석(41)씨다. 최근 독도 우표 발행으로 인하여 더욱 바빠졌다고 하는데, 독도 이야기는 조금 뒤로 미루기로 한 후 우표 다자이너로서 그의 인생이 시작될 무렵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 화폐 디자이너와 마찬가지로 우표 디자이너 역시 미술을 전공한 사람만이 그 자격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우표에는 주로 그 나라의 문화, 예술, 사회적인 행사, 자생하는 동,식물 등이 표현 되기 때문에 작은 공간 안에 함축적이면서도 정확한 이미지를 담아내기 위해선 미술적 감각이 필수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우표 디자인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우표 디자이너는 모두7명. 우표 디자인실 홈페이지(http://psdesign.koreapost.go.kr/)에 개재되어 있는 그들의 프로필을 보니 산업디자인학과, 도예과, 시각디자인학과 등 다양하다. 인하대학교 미술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홍익 대학교 광고홍보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한 광고기획사의 디자인실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94년에 열린 제21차 만국우편연합 서울 총회 때 회의 준비를 맡게 되었고 우편 올림픽 때 국내외 홍보를 담당할 우표 디자이너가 필요하다는 채용 공고 소식은 그를 이미 우표 디자이너의 길로 인도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우표에 쏟아 부은 그의 열정은 지금도 개개인의 사연이 깃든 편지와 함께 국민의 손에서 손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파되고 있다. “광고 회사 디자인실에서 근무할 때는 광고주와 소비자의 입장을 모두 반영한 상업적인 요소가 짙은 이미지를 디자인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어요. 반면에 우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적 상징물인 만큼 정확성, 사실성, 공익성을 중요시 하기 때문에 상업적인 요소는 완전히 배제된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 한 나라의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라고 우표를 정의 내린다면 디자인 하는데 있어서 사실성, 공익성을 중요시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가끔은 추상적이고 광고성 메시지가 담긴 우표를 다자인 해 보고싶은 바람이 있다고 말하는 그의 마음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한번쯤은 탈출하고픈 여느 직장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대한민국 우표 디자인실에 입사 후 가장 먼저 디자인한 우표는 96년에 발행된 1000원 권 보통 우표라고 한다. 무열왕릉에서 출토된 수호신인 석수(돌로 만든 동물의 상으로 중국 한대 이후에 잡귀를 쫓는 벽사 의 뜻으로 분묘 앞에 세우거나 묘안에 진 묘수로 세운 것. 현재 알려진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은 무령 왕릉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의 석수이다)를 사진 기법으로 표현한 이것은 지금도 앨범 깊숙이 보관하고 있지만 가끔 꺼내 보면서 얼굴 붉힌 적이 많았다고. “벌써 8여년 전의 일이네요. 처음 디자인한 우표라서 가장 많은 애정이 가지만 반면에 미련도 많이 남아요” 그의 처녀작에 대한 미련이 현재 그를 우표 디자이너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게 해 준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건 우표 사용이 조금씩 줄어드는 현상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표시하는 그에게서 우표 사랑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우표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우표발행심의(우표심의위원회)->디자이너 선정->자료 수집->외부작가협의->천공(우표크기와 모양 선정)및 신기술 검토->원도디자인(스케치 및 채색)->자문->수정 및 보완(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디자인 심의->수정 및 보완(디자인 심의위원들에게)->우표 인쇄 관계자 회의(한국 조폐공사 인쇄 관계자)->우표원도확정->우표인쇄교정->우표탄생 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과정 중에서 우표 디자인의 기술적인 면은 1995년도를 기준으로 하여 변화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95년 이전에는 수작업이 많았던 것에 비해 컴퓨터 그래픽이 발달하면서부터는 빠르고 간단한 방법으로 색깔변화를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디자인 하면서 작업이 쉬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정감이 가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2000년 이후부터는 아날로그 기법과 컴퓨터 그래픽을 혼합하여 작업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1종류의 우표 디자인이 완성되기 까지는 약 3~4개월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우표심의위원회에서 소재만 결정 되면 빠른 시일 내에 디자인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3~4개월 안에 디자이너가 해야할 매우 중요한 작업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어떤 것을 디자인 할 것인지 소재가 결정 되면 1년 동안 발행 될 우표에 해당하는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자문을 구하러 다닙니다. 유물, 인물, 자연, 음식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해 검증을 통과한 후에야 디자인 작업에 들어갈 수 있지요” 그는 우표가 우리 나라의 문화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물인 만큼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디자인을 하는 것이 우표 디자이너로서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물론 디자이너 본인의 창의력을 적절히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내,외국인에게 우리의 문화를 제대로 알려야 하는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 “단지 독도에 살아있는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사회적인 이슈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독도 우표 발행으로 인하여 독도 사랑에 대한 국민들의 마음과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낀다는 그. 하지만 우표 자체에 대한 이해 보다는 우표에 사용된 소재만으로 국민들에게 접근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단다. “요즘 유,무선 통신의 발달로 정감어린 문자가 사라져 가고 있잖아요. 독도 우표로 인하여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한층 고조된 것이 더할 나위 없이 기쁘지만 그것과 더불어 우표를 사랑하는 마음도 커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편지함에 비스듬히 꽂혀 있는 편지 봉투에서 자신이 디자인한 우표를 발견할 때 우표 디자이너로서 가장 많은 보람을 느낀다는 이기석씨. 편지 한 장에 담긴 따뜻한 마음처럼 우표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변치 않는 한 편지 봉투에 붙어있는 우표는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어디에선가 날라 올 편지 한 통을 기다리는 설레임과 함께… |
TV 및 각 온라인 언론매체 인터뷰자료를 인용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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