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0만세운동 100주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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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표번호 | 3889 |
| 종수 | 1 |
| 발행량 | 낱장 480,000장(전지 30,000장) |
| 디자인 | 순종 인산행렬과 6·10만세 기념비 |
| 인쇄 및 색수 | 평판 / 4도, 유광 코팅 |
| 전지구성 | 4 × 4 (152mm × 208mm) |
| 디자이너 | 박은경 |
| 발행일 | 2026. 6. 10. |
| 액면가격 | 430원 |
| 우표크기 | 30×40 |
| 인면 | 30×40 |
| 천공 | 14 × 13¼ |
| 용지 | 평판 원지 |
| 인쇄처 | POSA(RoyalJoh.Enschedé社) |

이번 우표는 6·10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대한독립을 향한 뜨거운 염원과 역사적 현장을 상징적으로 담은 기념우표입니다. 힘차게 휘날리는 태극기와 당시의 신문기사, 운동에 참여한 군중, 그리고 기념비를 함께 담아 역사적 현장감과 기념의 의미를 동시에 전달합니다.
6·10만세운동은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인산일에 일어난 만세운동으로, 제2의 3·1운동을 일으켜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널리 알리고자 한 항일독립운동입니다. 국내의 학생단체, 천도교, 고려공산청년회를 비롯해 국외의 조선공산당 임시상해부, 병인의용대 등 다양한 세력들이 정치 이념을 초월해 연대를 이루며 만세운동을 추진했습니다.
거사를 며칠 앞두고 일제의 삼엄한 경계 속에 주요 인사들이 사전에 체포되고, 준비한 격문 5만여 매가 압수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6월 10일 당일 거리에는 수많은 학생들이 나와 태극기를 흔들고 격문을 뿌리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현장에서 학생 200여 명이 체포되었고 이병립, 이선호, 이천진, 박두종, 박하균, 박용규, 곽대형, 김재문, 황정환, 이동환, 류면희 등 학생 11명, 6.10만세 사건을 사전에 기획한 권오설, 격문 인쇄에 참여한 박래원, 민창식, 백명천, 이용재 등 4명, 기타 관련자 십여 명도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전국 각지에서 55개 학교가 동맹휴학으로 호응하며 항거의 뜻을 이어 갔습니다.
6·10만세운동은 어느 한 계층이나 집단만의 움직임이 아니라 학생, 천도교인, 사회주의자 등이 사상과 세대를 뛰어넘어 대한독립을 위해 서로 뜻을 모아 이루어 낸 거사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 연대는 이후 국외의 민족유일당 촉성 운동과 국내 신간회 창립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침체된 민족운동과 학생운동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또한 1919년 3·1운동과 1929년 학생독립운동의 교량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지닙니다.
이번 100주년 기념우표를 통해 특정 이념이나 계층을 넘어 오직 독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뜻을 모았던 6·10만세운동의 역사적 의의가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