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약용 해배 및 목민심서 저술 200주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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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표번호 | 3339 |
| 종수 | 1 |
| 발행량 | 총 700,800장 |
| 디자인 | 여유당과 목민심서 |
| 인쇄 및 색수 | 평판, 5도 |
| 전지구성 | 4 × 4 (200mm × 160mm) |
| 디자이너 | 유지형 |
| 발행일 | 2018. 9. 14. |
| 액면가격 | 330 |
| 우표크기 | 36.5 x 34.7 |
| 인면 | 36.5 x 33.2 |
| 천공 | 13 × 13¼ |
| 용지 | 평판원지 |
| 인쇄처 | POSA(Cartor) |

우정사업본부는 다산 정약용 선생 해배 및 목민심서 저술 200주년을 맞이해 기념우표를 발행합니다. 우표는 여유당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제공받은 목민심서 필사본으로 디자인 되었습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대표 실학자이자, 개방과 개혁을 통한 부국강병을 주장한 개혁가입니다. 1762년 지금의 남양주에서 태어난 그는 실학자 이익의 서적을 통해 실학을 배웠으며, 22세에 문과에 장원급제 한 후 규장각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수원화성을 건설할 때 거중기를 개발해 공사기간을 대폭 줄였고, 정조의 화성 행차 시 배다리를 설계해 한강을 건너게 했습니다. 이렇게 선진 기술과 새로운 사상에 관심 많았던 그는 정조의 남자라 불릴만큼 깊은 신임과 총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조가 세상을 떠난 1801년(순조 1년), 천주교를 믿었다는 죄로 강진에서 18년간 유배 생활을 하게됩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동서고금의 학문을 정리하고 실학을 집대성해 최고의 실학자로서의 입지를 다집니다. 정전론·여전론 등 파격적인 토지 개혁론이나 마을 단위 공동 노동체 건설을 주장했고, 형법, 기술, 의학, 경제, 정치, 국방,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500여 권에 달하는 책을 썼습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부강한 조선을 만들기 위한 중앙 정치 제도의 개혁안을 담은 경세유표 , 공정한 사법제도의 개혁방안을 담은 흠흠신서 , 그리고 지방 정치제도의 개혁안을 담은 목민심서 가 있습니다. 목민심서 는 1818년 3월 완성되었습니다.
남양주시는 해배 및 목민심서 저술 200주년을 맞이해2018 남양주 정약용의 해로 선포하고, 정약용의 인본주의와 애민사상, 실사구시 정신을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