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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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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야기
제목 우정총국 탄생의 주역 "풍운아 홍영식"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각국과 통상한 이래 안팎의 관계와 교섭이 날로 늘어나고 관상(官商)의 신식(信息)이 번잡하여지니
진실로 그 뜻을 속히 체전(遞傳·차례로 여러 곳을 거쳐 소식과 편지를 전하여 보냄)하지 않으면 서로
연락하거나 멀고 가까운 곳이 일체로 될 수 없다. 이에 명하노니 우정총국을 설립해 각 항구에 왕래하는
신서를 맡아 전하고 내지(內地)의 우편도 점차 확장하여 공공의 이익을 거두도록 하라.”

123년 전인 1884년 4월 22일. 고종이 내린 칙령(勅令)에 의해 우정총국이 탄생했다. 정식 업무는 이보다
7개월 뒤인 11월 18일 개시했지만, 초대 총판이 임명되는 등 우정총국의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했다. 이날이
바로 한국 우정의 시발점인 것이다. 1994년 체신부가 정보통신부로 바뀌면서 이날을 기념하는
‘체신의 날’을 ‘정보통신의 날’로 개칭하긴 했으나, 우정인들 사이에 생일 떡을 돌려 먹으며 자축하는
관습은 지금도 변함없이 내려오고 있다.
우정의 날에 떠오르는 인물은 우정총국 초대 총판인 금석(琴石) 홍영식(洪英植)이다. 그는 헌종 때
영의정을 지낸 홍순목의 둘째로 태어나 16세에 칠석시(七夕試)에 급제한 명문가의 영재. 너무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해 2년간 사가독서(賜暇讀書·독서당에서 공부하는 것)를 했고, 1878년 교리(정 5품·지금의 5급
사무관)로 관료생활을 시작해 2년 만에 참의(參議·당상관·1급 관리관)로 승진하는 등 초고속 출세길을
달렸다.

10대 청소년 시절에 그는 연암 박지원의 손자로 우의정을 지낸 박규수의 가르침을 받아 개화사상에 눈을
떴다. 이때 역시 명문가 자제인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과 어울리면서 훗날의 혁명동지로 유대를
다져나갔다. 1881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갔을 때, 그 2년 뒤 전권대신 민영익과 함께 미국에
갔을 때 그는 무엇보다 우편 행정을 유심히 살피고 돌아왔다. 그러고는 고종에게 ‘우리나라에 우편 개설이
급선무’라고 설득, 우정총국 설치 칙령을 이끌어냈다. 이렇게 해서 우정총국이 탄생했으니 그가 수장이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는 당시 조선 최고의 우편전문가가 아닌가.



우정총국 총판이 되었을 때 그의 나이 고작 29세. 가정과 사회에
막 기반을 닦는다는 이립(而立)도 채 못 되어 지금의
정보통신부 장관이 되었으니, 그 젊은 위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매천 황현이 ‘매천야록’에서 홍영식을 가리켜 ‘경박하고
영민하다’고 혹평한 것만 보아도 짐작할 만하다.
홍영식의 기운은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그해 12월 우정총국
개국축제일을 디데이로 삼아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실패해
청나라 군사에 살해되고 나중에 노륙의 형을 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정변 직후 우의정이 되어 3일 만에 진압될 때 주변의
망명 권유를 뿌리치고 끝까지 임금을 호위했다는 기록이 그나마
그의 이름을 최후까지 높여준다.
홍영식이 대역 죄인으로 낙인찍히자 아버지 홍순목과 배다른 형
홍만식 등 일가 20여 명은 독약을 받고 집단 자살했다. 또 그가
세운 우정총국은 업무 개시 한 달도 안 되어 간판을 내려야
했다. 이후 근대 우정이 다시 시작되는 데 꼬박 1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홍영식 역시 우편업무가 재개되고
나서야 신원(伸寃·죄를 씻어주는 것)을 받았고, 1910년 규장각 대제학(정2품)으로 추증(追贈)됐다.
혜성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스러져간 풍운아 홍영식의 이름이 그래서 한국 우정사에 영원히 살아남게 된
것이다.

출처 : 이종탁(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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