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 35㎝ 종이 위에 양반 다섯, 기생 둘, 상노(床奴) 하나, 악공 여섯 등 무려 열여섯 사람이 자리하였다. 그래서 펼친 돗자리도 일곱 개나 되는데 테두리를 푸른 띠로 돌린 고급품이 두 개 있고 그 위에는 각각 양반이 한 명씩 자리를 차지했다. 이 검무 잔치를 연 인물은 죽침(竹枕)에 기대어 왼손으로 부채를 잡은 양반인 듯하다. 앞에는 담뱃대, 담배합, 재떨이, 향로가 놓여 있고 옆에는 같은 연배로 보이는 양반이 갓끈을 풀고 무릎깍지를 낀 편안한 자세로 앉았다.
옆에는 앳된 얼굴을 한 아이가 갓과 도포를 갖춰 입고 청색 띠까지 두르고 부채는 반쯤 펼친 채 왼손으로 뒷머리를 만지는데 눈길은 칼춤을 향하지 않고 표정도 약간 골이 난 모습이어서 별로 재미없는 모임에 끌려와 억지로 앉아 있는 듯하다. 아마 앞에 앉은 두 선비 중 한 명의 아들일 것이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모임에 와 앉았지만 아직 칼춤의 멋을 알기엔 이른 나이가 아닌가 싶다. 일찌감치 장가를 들었지만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탓일것이다.
그런데 맨 오른쪽 초립 쓴 젊은이도 칼춤에는 관심이 없고 그 시선이 옆에 앉은 기생에 쏠려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립을 썼다는 것은 관례는 올렸지만 아직 장가를 들지는 않았다는 것이니, 여색(女色)에 얼마나 관심이 많겠는가. 진정 신윤복은 사람 마음을 꿰뚫는 데 대가이다. 이런 눈길을 아는지 모르는지 똑같이 차려 입은 기생 둘은 고개를 돌린 채, 칼춤에 정신이 팔려 있다. 왼쪽 기생에게는 담뱃대를 물려 변화를 주었다. 한편 맨 오른쪽 담뱃대 심부름을 하는 상노는 춤이 절정인 것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들어오다 멈춰 섰다.
뭐니 뭐니 해도 이 그림의 주인공은 칼춤 추는 두 기생이다. 두 기생 치마와 저고리색이 달라 벌써 옷 색부터 현란하다. 둘 모두 공작 깃털로 꾸민 전립(戰笠)을 쓰고 쾌자(快子)를 덧입었으며 푸른 띠를 매었다. 왼쪽 기생은 오른발을 들었고 오른쪽 기생은 왼발 뒤꿈치를 들어 동세가 펄떡인다. 이 오른쪽 여인은 왼손으로 잡은 칼을 오른쪽 겨드랑이 사이로 찔러 두 칼끝을 나란히 했으니, 아슬아슬한 순간이 딱 잡혔다.
신윤복의 날카로운 관찰력은 오른쪽 여인의 치마 끝이 묶여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치마에 걸려 넘어질 수 있어 칼춤을 추는 기녀 둘은 이처럼 치마 끝을 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왼쪽 여인은 전립 끈을 가체(加?)에 묶어 돌렸고 오른쪽 여인은 턱에 둘렀다. 이를 보면 이 당시 전립을 쓸 때 가지각색으로 멋을 부렸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두 기생 칼끝만큼이나 쾌자의 옷단 또한 펄럭이니 금속과 천 자락이 강약 조화를 이루며 사방으로 휘날린다.
아래에 자리를 두 개 깔고 악공(樂工) 여섯이 한 줄로 앉았으며 이들 왼쪽엔 나이가 지긋한 선비가 앉았다. 오른손엔 얼굴 가리개인 차면선(遮面扇)을 들고 왼손으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악공들을 바라보는데 위 두 선비와 떨어져 앉은 것이나 얼굴에 수염이 무성한 것으로 봐서 관직에서 물러난 이가 아닌가 한다. 이 선비 오른쪽에 앳된 얼굴을 한 해금 주자가고개를 돌렸다. 다음 둘은 얼굴을 정면으로 하고 두 손이 앞으로 똑같이 나간 것으로 봐서 피리 주자임에 틀림없고 다음이 고개를 돌려 대금 부는 악공이다. 그 옆은 장구재비이며 마지막이 북재비이다. 북재비만 전립과 전복을 입고 조금 떨어져 앉은 것으로 보아 악공들을 이끄는 우두머리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악공들이 입은 푸른 도포 자락 빛깔이 미묘하게 변하니 통일 속의 변화란 이런 것을 보고 하는 말일 것이다.
신윤복의 그림 안에는 200년 전의 의복, 춤, 음악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과장도 없고 생략도 없다. 따라서 오늘날 좋은 옷을 지어 입으려는 이, 잊힌 춤을 다시 살리려는 이, 옛 가락을 내일로 전하려는 모든 이들은 신윤복 그림에 의지하여 따르면 어긋나지 않는다. 또한 제대로 된 조선 사극을 만들려는 이 또한 신윤복 그림을 기준으로 고증하면 탄탄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월간 우표 2015.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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