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모자의 왕국이다. 세계 어디서도 이렇게 다양한 모자를 지니고 있는 나라를 본 적이 없다. 공기와 빛이 알맞게 통하고 여러 용도에 따라 제작되는 한국의 모자 패션은 파리인들이 꼭 알아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 시를르 비리, <뜨르 두 몽드>, 1892 -
우리나라 복식의 역사에서 모자는 의복의 한 부분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이에 어울리는 모자를 갖추어 쓸 줄 아는 멋스러운 민족이었다.
‘한국은 모자의 왕국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모자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평안감사환영도에서 거리에 구경나온 사람들을 보면 흰색 두루마기와 검정색 갓만 보인다. 1904년 독일인 헤르만 산더가 촬영한 시장풍속 사진에서도 역시 흰색 한복과 갓[흑립, 黑 笠]이 가장 먼저 눈에 뜨인다. 여기서 보이는 갓은 어떤 모자였을까?
갓을 쓰고 있는 가장 오래된 모습은 경주 금령총에서 발굴된 기마인물형토기에 말 탄 사람이 쓴 모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작은 채양이 있고, 모자의 위가 약간 뾰족한 고깔 모양으로 지금의 갓과는 형태가 조금 다르지만, 이 모자를 갓의 원형으로 말하고 있다.
고려 시대에는 공민왕 16년(1367)에 관리와 백성의 의복에 관한 법을 정하면서 관리들은 품계에 따라서 모자의 정자(頂子) 장식에 차별을 두어 갓을 착용하게 하였다. 그 이후 관리가 입는 집무복에 갓을 쓴 차림새를 흑립을 쓰게 된 시초라고 한다. 그럼, 요즘 우리가 사극에서 많이 보는 일반적인 갓은 언제부터 생겨났으며, 어떤 재료로 만들었을까?
고려 시대에는 공민왕 16년(1367)에 관리와 백성의 의복에 관한 법을 정하면서 관리들은 품계에 따라서 모자의 정자(頂子) 장식에 차별을 두어 갓을 착용하게 하였다. 그 이후 관리가 입는 집무복에 갓을 쓴 차림새를 흑립을 쓰게 된 시초라고 한다. 그럼, 요즘 우리가 사극에서 많이 보는 일반적인 갓은 언제부터 생겨났으며, 어떤 재료로 만들었을까?
갓을 자세히 살펴보면 머리를 덮는 부분인 모자(帽子)와 얼굴을 가리는 차양 부분인 양태(?太)가 연결되어서 이루어졌다. 갓은 원래 햇볕이나 비와 바람을 가리기 위해서 만든 실용적인 모자였으나 재료와 형태, 만드는 방법이 다양하게 발전하면서 사회성을 가지는 의례용 모자로 변하게 되었다. 형태상으로 보면 차양과 모자(帽子)의 구별이 없는 방갓형[方笠型]과 양태와 모자의 구별이 뚜렷한 패랭이형[平凉子型]으로 구분된다. 방갓형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삿갓을 비롯하여 방갓·전모 등이 있고, 패랭이형은 패랭이·초립·흑립·전립·주립·백립 등이 있다. 보통 갓이라고 하면 좁은 의미의 갓, 즉 흑립을 말한다.
또한, 갓은 말꼬리털인 말총과 대나무가 주재료이지만, 갓의 겉면을 싸고 있는 재료는 직물· 말총· 돼지털· 실· 대나무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재료에 따라서 포립(布笠), 마미립(馬尾笠), 저모립(猪毛笠), 사립(絲笠·眞絲笠), 죽저모립(竹猪毛笠), 죽사립(竹絲笠)이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 남성의 대표 모자인 갓이 시대에 따라서 유행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현대 패션은 재킷의 칼라가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거나 통바지 또는 스키니가 유행하듯이 조선 시대는 갓모자의 높이와 양태의 넓이가 넓어졌다 좁아졌다, 모정의 높이가 높았다가 낮아졌다 하는 유행의 변화가 심하였다. 양태가 가장 넓었던 17세기에는 모자의 채양이 72cm가 되었으니 갓을 쓰고 방문을 드나들기가 어려웠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이다.
이후 성종 대에는 한때 작은 갓이 유행하였으나 영·정조대 18세기에는 다시 넓고 높아져서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보기 좋은 넓이의 갓이 되었다. 또한, 갓끈으로 밀화나 호박, 대모 등을 화려하게 장식하여 한층 멋을 부렸다. 마침내 흥선대원군은 사치를 금하고자 작은 갓으로 지정하여 사용하게 하였으며, 갓끈 장식도 금지하였다. 갑신개혁 이후에는 갓 대신 맥고모나 중절모자 등 현대 모자가 등장하게 되었다.
조선 시대는 갓이 성인(成人)의 상징이었다. 특히 유생이나 사대부는 항시 의관을 정제하고 사회 활동을 했으며, 외출할 때 뿐만 아니라 실내에서도 썼다. 이는 갓이 유교 사회에서 성인과 선비의 상징처럼 여겨졌음을 뜻한다. 갓의 주재료인 말총은 빳빳하고 곧으나 강철과는 달리 가볍고 부드러운 질감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비단처럼 섬세하면서도 엄격한 검은 빛을 가지고 있어서 유교의 선비 정신과도 통한다.
서양복이 들어오면서 이제 더 이상 양복에 갓을 쓰지는 않지만, 아직도 집안의 제사나 향교에서 이루어지는 의례, 전통 행사에서는 도포나 두루마기에 갓을 써야 제대로 갖추었다고 한다. 한복이 의례용 의복으로 자리 잡은 만큼 갓도 의례용으로만 사용되어 우리 전통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조선 시대는 성인 남자면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던 갓, 이제는 장롱 위에 얹어놓은 장식용 갓이 되어버렸지만, 설날 한복 두루마기에 잘 어울리는 갓으로 다시 유행되는 날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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