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수(石獸)는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로 우리나라 고분에서는 처음 발견되었다. 높이 30cm, 길이 47.3cm, 너비 22cm의 응회암으로 만든 석수는 뭉뚝한 입을 벌리고 있고 코는 크지만 콧구멍이 없다. 높은 콧등 날이 등 뒤까지 연결되어 있는데, 그 좌우에 눈과 귀가 부착되어 있다. 등에는 네 개의 융기가 있고 머리 위 융기 상면의 패인 홈에는 나뭇가지 모양의 철제 뿔이 꽂혀 있다. 몸통 좌우에는 앞뒤로 날개 모양의 갈기가 부각(浮刻)되어 있다. 네 개의 짧은 다리가 있으며 발톱의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는 많이 지워졌지만 아직도 희미하게 입술에 발랐던 붉은색이 남아 있다.
석수를 무덤에 넣는 풍습은 중국에서 비롯되었다. 전국시대 초(楚)나라에서 나무로 만든 사슴뿔 달린 기괴한 석수를 무덤에 부장하는 풍습이 성행하였는데, 이는 석수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무덤 내부를 지켜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묘수(鎭墓獸)의 관념은 점차 지역적으로 확산되어 머리에 하나의 예리한 뿔이 달린 동물의 형태로 정리되어 갔다. 재질은 다양해서 때로는 조각품으로, 벽화로, 그리고 벽돌의 그림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장례 풍습은 한대(漢代)까지는 거대한 무덤에 많은 부장품을 넣는 후장(厚葬)을 유지하였으나 삼국 시대의 혼란기를 겪으면서 조위(曹魏)와 진(晋)에서는 박장(薄葬)을 국가의 정책으로 강력히 추진하였다. 황제들도 모범을 보이면서 호화스러운 부장품 대신 흙으로 구운 작은 모형을 넣을 것을 권하였고 진묘수는 이러한 명기(名器)들 중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남조(南朝) 무덤에서 발견된 석수는 무령왕릉의 것과 크기는 비슷한데 재질은 돌 이외에도 흙으로 만든 것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형태는 물소를 모델로 삼은 것과 돼지나 악어를 변형시킨 것도 있다. 무령왕릉의 석수는 전체적으로 돼지 형태인데, 남경 지역의 남조 무덤에서 발견된 돼지와 악어 모양의 진묘수를 합성한다면 아마 무령왕릉의 진묘수와 비슷해질 것이다.
석수의 기능은 무덤을 지키는 것이었지만 점차 죽은 자를 저승으로 인도하여 영혼의 승선(昇仙)을 도와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겸하게 된다.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석수는 뿔의 형태나 세부적인 표현에서는 중국의 석수와 닮았으나 백제인의 뛰어난 감각 역시 잘 표현되어 있다. 석수는 묘지석과 매지권에서 보듯이 백제 왕실이 중국의 도교적 저승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