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세기 고려청자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동물이나 식물, 인물을 표현한
상형(象形)청자가 많이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상형청자의 모티프는 크게 자연적 소재와 종교적 소재로 나누어진다. 자연적 소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상, 고려 시대 사람들이 친근하게 대했을 거라고 짐작되는 동·식물이 대부분
이다. 원앙·오리·참외·죽순·표주박 등의 모양으로 병, 주자, 연적, 향로 등이 만들어졌다.
종교적 소재는 고려 시대 국교였던 불교와 관련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불상과 보살상, 나한상이 청자로
만들어졌고, 연꽃은 연판(蓮瓣)의 형태로 그릇의 내·외면을 뒤덮거나 몸체 밑동을 장식했다. 연판은 향로나
향완 뿐 아니라 대접·접시와 같이 윗부분이 벌어지는 일상 용기에 빈번히 사용되었으며 연꽃잎이 활짝
벌어진 듯한 효과를 냈다. 도교는 불교처럼 교단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예종대(睿宗代, 1105~1122)를
중심으로 고려 왕실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음을 『고려사』 「잡사조」의 기록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배경 때문인지 복숭아가 담긴 쟁반을 받쳐 든 인물 모양의 주자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복숭아
·원숭이·기린·봉황 등 도교와 관련한 소재가 향로, 연적 등으로 제작되었다.
‘청자 귀룡모양 주자’는 연꽃 받침 위에 앉은 거북이의 모습을 나타내었다. 거북이의 머리와 목은 용머리
처럼 생겼고, 등에 새겨진 거북이 등껍질무늬[龜甲文] 안에는 각각 ‘왕(王)’ 자가 음각되어 있다. 품격 있는
연꽃 대좌 위에 모셔진 귀룡은 고려 시대 비석의 귀부(龜趺)에서 볼 수 있는 거북과 같은 형태인데, 청자의
발달 배경에 고려 불교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던 사실로 미루어 보면 이 주자 역시 불교의 상징적인
의미를 깊게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피어오른 연꽃 위에 올려진 귀룡에서는 연꽃을 통해 새로
태어나는 ‘연화화생(蓮花化生)’의 상징을 읽어낼 수 있으며, 등껍질 면마다 가늘게 음각된 글자에는 ‘왕즉불
(王卽佛)’의 고려 왕실의 불교 사상이 융합되어 있는 듯하다. 이렇듯 용이나 어룡(魚龍)·귀룡(龜龍)·구룡
(九龍) 등은 초자연적이고 신성한 존재로서 왕실의 권위를 드러냈을 것이다.
졌다는 것이다. 상형청자의 모티프는 크게 자연적 소재와 종교적 소재로 나누어진다. 자연적 소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상, 고려 시대 사람들이 친근하게 대했을 거라고 짐작되는 동·식물이 대부분
이다. 원앙·오리·참외·죽순·표주박 등의 모양으로 병, 주자, 연적, 향로 등이 만들어졌다.
종교적 소재는 고려 시대 국교였던 불교와 관련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불상과 보살상, 나한상이 청자로
만들어졌고, 연꽃은 연판(蓮瓣)의 형태로 그릇의 내·외면을 뒤덮거나 몸체 밑동을 장식했다. 연판은 향로나
향완 뿐 아니라 대접·접시와 같이 윗부분이 벌어지는 일상 용기에 빈번히 사용되었으며 연꽃잎이 활짝
벌어진 듯한 효과를 냈다. 도교는 불교처럼 교단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예종대(睿宗代, 1105~1122)를
중심으로 고려 왕실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음을 『고려사』 「잡사조」의 기록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배경 때문인지 복숭아가 담긴 쟁반을 받쳐 든 인물 모양의 주자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복숭아
·원숭이·기린·봉황 등 도교와 관련한 소재가 향로, 연적 등으로 제작되었다.
‘청자 귀룡모양 주자’는 연꽃 받침 위에 앉은 거북이의 모습을 나타내었다. 거북이의 머리와 목은 용머리
처럼 생겼고, 등에 새겨진 거북이 등껍질무늬[龜甲文] 안에는 각각 ‘왕(王)’ 자가 음각되어 있다. 품격 있는
연꽃 대좌 위에 모셔진 귀룡은 고려 시대 비석의 귀부(龜趺)에서 볼 수 있는 거북과 같은 형태인데, 청자의
발달 배경에 고려 불교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던 사실로 미루어 보면 이 주자 역시 불교의 상징적인
의미를 깊게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피어오른 연꽃 위에 올려진 귀룡에서는 연꽃을 통해 새로
태어나는 ‘연화화생(蓮花化生)’의 상징을 읽어낼 수 있으며, 등껍질 면마다 가늘게 음각된 글자에는 ‘왕즉불
(王卽佛)’의 고려 왕실의 불교 사상이 융합되어 있는 듯하다. 이렇듯 용이나 어룡(魚龍)·귀룡(龜龍)·구룡
(九龍) 등은 초자연적이고 신성한 존재로서 왕실의 권위를 드러냈을 것이다.
한편 사람들은 저마다 같거나 혹은 다른 소망을 담아 이상적인 삶을 기원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소망과
기원은 고대종교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일종의 상징으로 표현되었으며, 이 상징은 생활 곳곳에서 주요 장식
소재로 나타나게 되었다. ‘운수(運數)가 좋을 조짐’을 의미하는 길상(吉祥)을 담은 상징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주로 동·식물의 특징이나 한자의 발음이 비슷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예가 많다.
이러한 예는 고려청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상징적인 문양이나 형태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바라는
다양한 이상향에 다가설 수 있는데, 집안의 많은 자손을 기원하는 것은 곧 풍요를 의미한다. 이를 기원하는
상징은 주로 포도·석류·물고기·동자 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고려의 상형청자는 사물의 대표적인 특징을 간결하게 묘사하고 입체적인 형상을 본떠 만들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실제 사물보다 강한 느낌을 준다. 또한, 전체 형태를 손으로 빚어 만든 점에서 주로 도범(陶範)을
사용하여 찍어냈던 중국 청자와 차이를 보인다. 그리하여 보다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묘사가 가능
하였으며, 비색의 맑고 투명함으로 인해 세부 표현의 정교함과 입체감이 더욱 잘 드러날 수 있었다.
이처럼 12~13세기에 상형청자가 많이 만들어진 것은 청자 제작의 기술 수준이 정점에 올랐음을 의미하기
도 하지만, 무늬보다는 색(色)과 형(形)에 관심을 쏟던 시대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즉 고려청자의
가장 큰 성과에 속하는 ‘비색’의 완성은 당시 고려 사람들의 미적 가치가 ‘색’에 머물렀다고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당시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대부분의 명품 청자들
이 화려한 장식보다는 색을 느끼고 감상하는 데 지장이 없는 조형에 치중하거나 무문일색(無文一色), 혹은
음·양각의 장식이 있더라도 그 오묘한 색을 더욱 강조한다는 점은 매우 의미 있다고 하겠다.
기원은 고대종교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일종의 상징으로 표현되었으며, 이 상징은 생활 곳곳에서 주요 장식
소재로 나타나게 되었다. ‘운수(運數)가 좋을 조짐’을 의미하는 길상(吉祥)을 담은 상징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주로 동·식물의 특징이나 한자의 발음이 비슷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예가 많다.
이러한 예는 고려청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상징적인 문양이나 형태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바라는
다양한 이상향에 다가설 수 있는데, 집안의 많은 자손을 기원하는 것은 곧 풍요를 의미한다. 이를 기원하는
상징은 주로 포도·석류·물고기·동자 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고려의 상형청자는 사물의 대표적인 특징을 간결하게 묘사하고 입체적인 형상을 본떠 만들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실제 사물보다 강한 느낌을 준다. 또한, 전체 형태를 손으로 빚어 만든 점에서 주로 도범(陶範)을
사용하여 찍어냈던 중국 청자와 차이를 보인다. 그리하여 보다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묘사가 가능
하였으며, 비색의 맑고 투명함으로 인해 세부 표현의 정교함과 입체감이 더욱 잘 드러날 수 있었다.
이처럼 12~13세기에 상형청자가 많이 만들어진 것은 청자 제작의 기술 수준이 정점에 올랐음을 의미하기
도 하지만, 무늬보다는 색(色)과 형(形)에 관심을 쏟던 시대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즉 고려청자의
가장 큰 성과에 속하는 ‘비색’의 완성은 당시 고려 사람들의 미적 가치가 ‘색’에 머물렀다고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당시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대부분의 명품 청자들
이 화려한 장식보다는 색을 느끼고 감상하는 데 지장이 없는 조형에 치중하거나 무문일색(無文一色), 혹은
음·양각의 장식이 있더라도 그 오묘한 색을 더욱 강조한다는 점은 매우 의미 있다고 하겠다.
출처 : 우표취미생활인의 교양지 월간 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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