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金冠)은 관모, 금허리띠 등과 함께 신라의 황금 문화와 최고의 금속
공예 기술을 보여주며 무덤
주인공의 정치적 · 사회적 신분을 짐작하게 한다. 지금까지 출토된 신라의 금관은 6점이며 모두 신라
마립간기, 즉 5세기에서 6세기 초기를 전후한 시기에 만들어졌다. 전형적인 신라 금관은 관테[臺輪],
세움장식[立飾裝飾], 달개장식[瓔珞, 曲玉]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테는 원형으로 돌려졌으며w 그 위에
는 나뭇가지 모양[樹枝形]과 사슴뿔 모 양 [ 鹿角形] 의 세움장식이 덧 붙 여 졌 다 . 세움장식에는 많은
비취 곱은옥[曲玉]과 금으로 만든 달개장식 등이 매달려 있어 신비함과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황남대총(皇南大塚)은 신라 무덤 중 가장 큰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 槨墳]으로, 경주시 황남동에 있는 큰
무덤이라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두 개의 무덤이 남북으로 서로 맞붙어 있는 표주박 모양 무덤
[瓢形墳]인데 그 길이는 120m에 달한다. 황남대총에 대한 발굴조사는 1973년부터 1975년까지 이루어
졌는데 남쪽 무덤[南墳]에서는 금동관, 장식대도[裝飾大刀] 등이 출토되어 왕의 무덤으로 추정한다. 북쪽
무덤[北墳]에서는 금관과 함께 ‘부인대(夫人帶)’라는 명문이 새겨진 은제 허리띠 끝장식이 출토되어,
무덤의 주인공이 여자임을 알 수 있다. 즉 금관의 주인공은 왕이 아니라 왕비였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외에도 무덤의 주인공이 어린 소년으로 추측되는 금령총에서 화려한 금관과 함께 많은 금제
장식품들이 출토되어 신라 금관은 초월적인 권력을 지닌 왕의 상징물이 아니라 왕이나 왕비, 왕자 등
왕족들이 자신들의 고귀한 신분을 배타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착용한 위세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황남대총
북분뿐만 아니라 천마총, 금령총, 서봉총 등의 금관이 출토된 상황을 살펴보면 고깔처럼 금관 상부 끝
부분을 묶어 무덤 주인공의 얼굴 전체를 덮고 있어 신라만의 독특한 장례법이 있었음을 추정케 한다.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금관은 지금까지 출토된 ‘出’ 자 모양 세움장식의 금관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3개의 나뭇가지 모양 장식과 2개의 사슴뿔 모양[鹿角] 장식을 관테의 안쪽에 덧대고 금못 3개를
세모꼴로 박아 고정하였다. 관테에는 상하의 가장자리에 2줄의 연속점무늬 [點列紋]와 물결무늬[波狀紋]
를 1줄씩 표현하고 그 가운데에는 한 줄의 곱은 옥을 달았다. 세움장식의 가장자리에는 1줄의 연속점
무늬가 새겨졌다. 세움 장식의 곁가지는 3단이며 세움장식의 전면과 곁가지에는 비취 곱은옥과 금으로
만든 달개장식을 매달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관테의 앞면에는 모두 6개의 굵은 고리 드리개가 드리워져
있는데 가운데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3개씩 대칭이 되도록 매달았다.
금관에 표현된 장식은 신성한 나무와 사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수백 년간의 시간차가 있지만
스키타이 왕국의 금관에도 생명수인 자작나무와 사슴이 표현되고 있어 신라 금관에 장식된 도안이 원래
무엇을 의미하였는지 추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황남대총 금관보다 빠른 시기에 제작된 부산 복천동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에서는 나뭇가지 모양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나뭇가지 모양 세움
장식의 변화과정을 알 수 있다. 금관에 표현된 나무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제사장인 왕을 상징하며,
사슴뿔 모양은 시베리아 지역 샤먼(Shaman)이 사용하는 모자에 주요한 요소로 등장하고 있어 이와 연관
지을 수 있다. 나뭇가지와 사슴뿔 모양 세움장식에는 비취의 열매와 황금 잎이 달린 듯 많은 곱은옥과
달개장식이 매달려 있어 신라의 아름다움을 한껏 보여 준다. 곱은옥과 달개장식은 외형적 화려함 뿐만
아니라 태아와 열매를 표현하여 통치자로서 왕의 역할과 권위를 상징한다. 금관은 얇은 금판을 오려서
만들었기 때문에 평상시 머리에 쓰고 활동하기에는 어려워 국가의 주요한 제사나 행사에 사용하거나 혹은
죽은 왕족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황남대총 금관은 1974년 10월에 출토되었으며 1978년 12월 국보 제191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중앙
박물관의 대표적 전시유물로서 선사고대관 신라실에 전시되고 있다.
주인공의 정치적 · 사회적 신분을 짐작하게 한다. 지금까지 출토된 신라의 금관은 6점이며 모두 신라
마립간기, 즉 5세기에서 6세기 초기를 전후한 시기에 만들어졌다. 전형적인 신라 금관은 관테[臺輪],
세움장식[立飾裝飾], 달개장식[瓔珞, 曲玉]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테는 원형으로 돌려졌으며w 그 위에
는 나뭇가지 모양[樹枝形]과 사슴뿔 모 양 [ 鹿角形] 의 세움장식이 덧 붙 여 졌 다 . 세움장식에는 많은
비취 곱은옥[曲玉]과 금으로 만든 달개장식 등이 매달려 있어 신비함과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황남대총(皇南大塚)은 신라 무덤 중 가장 큰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 槨墳]으로, 경주시 황남동에 있는 큰
무덤이라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두 개의 무덤이 남북으로 서로 맞붙어 있는 표주박 모양 무덤
[瓢形墳]인데 그 길이는 120m에 달한다. 황남대총에 대한 발굴조사는 1973년부터 1975년까지 이루어
졌는데 남쪽 무덤[南墳]에서는 금동관, 장식대도[裝飾大刀] 등이 출토되어 왕의 무덤으로 추정한다. 북쪽
무덤[北墳]에서는 금관과 함께 ‘부인대(夫人帶)’라는 명문이 새겨진 은제 허리띠 끝장식이 출토되어,
무덤의 주인공이 여자임을 알 수 있다. 즉 금관의 주인공은 왕이 아니라 왕비였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외에도 무덤의 주인공이 어린 소년으로 추측되는 금령총에서 화려한 금관과 함께 많은 금제
장식품들이 출토되어 신라 금관은 초월적인 권력을 지닌 왕의 상징물이 아니라 왕이나 왕비, 왕자 등
왕족들이 자신들의 고귀한 신분을 배타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착용한 위세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황남대총
북분뿐만 아니라 천마총, 금령총, 서봉총 등의 금관이 출토된 상황을 살펴보면 고깔처럼 금관 상부 끝
부분을 묶어 무덤 주인공의 얼굴 전체를 덮고 있어 신라만의 독특한 장례법이 있었음을 추정케 한다.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금관은 지금까지 출토된 ‘出’ 자 모양 세움장식의 금관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3개의 나뭇가지 모양 장식과 2개의 사슴뿔 모양[鹿角] 장식을 관테의 안쪽에 덧대고 금못 3개를
세모꼴로 박아 고정하였다. 관테에는 상하의 가장자리에 2줄의 연속점무늬 [點列紋]와 물결무늬[波狀紋]
를 1줄씩 표현하고 그 가운데에는 한 줄의 곱은 옥을 달았다. 세움장식의 가장자리에는 1줄의 연속점
무늬가 새겨졌다. 세움 장식의 곁가지는 3단이며 세움장식의 전면과 곁가지에는 비취 곱은옥과 금으로
만든 달개장식을 매달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관테의 앞면에는 모두 6개의 굵은 고리 드리개가 드리워져
있는데 가운데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3개씩 대칭이 되도록 매달았다.
금관에 표현된 장식은 신성한 나무와 사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수백 년간의 시간차가 있지만
스키타이 왕국의 금관에도 생명수인 자작나무와 사슴이 표현되고 있어 신라 금관에 장식된 도안이 원래
무엇을 의미하였는지 추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황남대총 금관보다 빠른 시기에 제작된 부산 복천동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에서는 나뭇가지 모양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나뭇가지 모양 세움
장식의 변화과정을 알 수 있다. 금관에 표현된 나무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제사장인 왕을 상징하며,
사슴뿔 모양은 시베리아 지역 샤먼(Shaman)이 사용하는 모자에 주요한 요소로 등장하고 있어 이와 연관
지을 수 있다. 나뭇가지와 사슴뿔 모양 세움장식에는 비취의 열매와 황금 잎이 달린 듯 많은 곱은옥과
달개장식이 매달려 있어 신라의 아름다움을 한껏 보여 준다. 곱은옥과 달개장식은 외형적 화려함 뿐만
아니라 태아와 열매를 표현하여 통치자로서 왕의 역할과 권위를 상징한다. 금관은 얇은 금판을 오려서
만들었기 때문에 평상시 머리에 쓰고 활동하기에는 어려워 국가의 주요한 제사나 행사에 사용하거나 혹은
죽은 왕족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황남대총 금관은 1974년 10월에 출토되었으며 1978년 12월 국보 제191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중앙
박물관의 대표적 전시유물로서 선사고대관 신라실에 전시되고 있다.
출처 : 우표취미생활인의 교양지 월간 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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