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우정은 올해 2차 세계대전 당시에 활약했던 전투함 두 척을 묘사한 기념특인을 사용한다. 하나는 너무나 유명한 전함 비스마르크호(2016.5.28)이며 또 하나는 전함보다 작은 소위 포켓전함(pocket battleship)로 알려진 그라프 슈페(2016.8.20). 문제는 지금까지 독일은 나치의 군사력과 관련된 우표나 특인들은 원칙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으나 어떻게 이런 전투함들을 묘사한 자료가 나오게 되었는지 배경이 궁금하기까지 하다는 점이다.
물론 비스마르크호는 영국 해군에게 격침당한 75주년을 기념하는 것이며, 따라서 자신들의 승전 기록이 아닌 연합국에 대한 패배를 나타내는 것이기에 2차 대전 승전국들의 비위를 거슬리게 할 이유는 없다. 그라프 슈페를 위요한 전투 또한 나치의 전쟁범죄와는 관계없는 신사적인 해전의 한 사례로 인정되고 있어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키는 어두운 과거와는 무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무기를 직접적으로 나타낸 우취물들의 제조에 극도의 자제력을 발휘해 온 그간의 독일이 금번과 같은 시도를 한 것은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억측도 회자되고 있는 중이다.
전함 비스마르크호는 일본의 야마토, 사시 등을 뺀 대서양 전투에서만큼은 최대 규모의 전함(배수량 41,700톤)으로서 38cm 주포 4문, 15cm 연장부포 6문, 105mm 연장고각포 8문 등을 장착한 독일해군을 대표하는 전함이었다. 1941.5.17 오전 5시 58분 영국 최대의 전함 후드(Hood)호를 격침시킴으로써 대영제국의 자존심을 짓밟는 등 맹위를 떨치긴 했으나 결국 다수의 전투함들에게 포위되어 1941년 5월 27일 명을 다하고 말았다.
그라프 슈페는 1939년 개전 직전인 8월 21일에 대서양으로 진출하여 영국 상선 클레멘트호를 격침시킨 것을 시발로 다수의 상선을 포획하고 유조선을 파괴하는 등 통상파괴전의 중요한 일익을 담당했다. 그러나 3척의 영군 순양함에게 추격당해 중립국인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항에 정박했다가 1939.12.17 스스로 자침시키는 운명에 처했다. 그라프 슈페의 함장인 한스 랑스도르프 대령은 4개월 동안의 긴 여정에서 단 한 명의 포로도 사살하지 않고 철저하게 국제법을 준수한 것과 아예 포로를 선상에서 내리게 해 적국으로 돌려보내는 등의 신사도를 발휘한 결과, 처어칠 수상마저 랑스도르프 함장을 ‘제 1급의 군인’으로 추앙하는 일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영연방은 이 전투를 기리는 전후의 기념우표에도 당시 적군이었던 랑스도르프를 묘사해 각별한 경의를 표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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