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독일 폭격기가 영국의 중요 거점을 골고루 초토화시키기 위해서는 종심 깊숙히 내륙으로 진입해야만 하며, 그러자면 호위 전투기들이 공격부터 귀로까지 근접경호를 해야 되나 항속거리가 짧은 독일 전투기들은 그러한 임무를 감당할 수 있는 기술적 제조건이 구비되지 못했다. 거기다 이후에 전개되는 독소전에서는 독일 전투기 조종사들이 소련기들을 거의 파리잡듯이 격추시키면서 1941.6.22. 개전 이래 그해 말까지 무려 10,000기나 되는 소련 항공기들을 격파시킨데 비해, 영군 조종사들은 테크닉 측면에서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했다. 물론 전투기와 전투기간의 1 : 1 대결에서는 독일기에 뒤처지기는 했어도 독일 폭격기와 융커스 87 슈튜카와 같은 전폭기들은 영군의 슈퍼마린 스피트화이어와 호커 허리케인들의 분투 속에 차례차례 격파되어 나갔다. 거기다 당시로서는 독일보다 월등히 발달한 영국의 레이더 시스템과 방공망 정비는 궁극적으로 독일공군에 고배를 들이키게 하는 위대한 협업을 이루어 낸다. 동 전투에서 독일공군은 1,887대를, 영국공군은 1,547대의 항공기를 상실한다.
2차 세계대전 초기 천하무적으로 알려진 히틀러의 나치독일에게 최초의 패배를 안긴 건 영국공군(Royal Air Force)이었다. 1940년 세계를 경악시킨 전격전으로 프랑스와 서방 연합국들을 차례로 굴복시킨 독일은 그 다음 타겟으로 무차별 공습에 의해 영국의 항복을 받겠다는 의도로 대규모의 항공전을 준비하는바, 소위 Battle of Britain으로 알려진 영국본토항공전이 서방전격전에 이어 유럽전선의 주요 무대로 등장하게 된다. 1940.7월-1941.5월간 거의 1년 동안의 소모전(더 좁혀 말하면 결정적인 시기는 1940.7-10월 4개월간) 끝에 독일은 공습에 의한 영국점령을 포기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실전경험도 별로 많지 않았던 영군 조종사들의 불굴의 정신력이 투혼을 발휘하게 된다.
영본국이 금년에 발행한 Battle of Britain 기념우표는 동 전투의 다양한 양상들을 실제 흑백사진에 기초해 만든 것으로 6종 배합 소형쉬트 형식으로 제조되었다. 여백에는 영국공군에 대한 윈스턴 처칠 수상의 저 유명한 치하의 문장이 나타나 있는데, 우리말로 바꾸면 '인류사의 어떤 경우에도 그렇게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은 빚을 진적은 없다'(Never in the field of human conflict was so much owed by so may to so few)라는 뜻이 된다. 한데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미 당시 영국의 항공기 특히 전투기 양산체제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가 있어 독일기 생산보다 일단 생산속도면에서 앞섰다는 통계가 입증되었다고 한다. 결국 양적인 물량공세 측면에서도 영국이 독일을 능가했다는 분석이다. 치열한 전투 속에 살아남은 영웅들에게는 다소 맥 빠지는 뉴스가 될 수 있겠지만 20세기 초 국민총생산 순위를 미국과 독일에 빼앗기기는 했어도 대영제국의 내구력이 그리 떨어지지는 않았었다고 하는 방증이다.
Battle of Britain은 이제 영연방을 위시해 너무나 많은 나라들이 다투어 우표를 발행해 온 탓에 이것만으로도 독립된 콜렉션이 형성될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한 자료가 집적되어 있다. 그 때문인지 전투기 중에서는 영국을 구한 수호신으로 떠받들리는 스피트화이어기가 우표에 가장 많이 등장한 군용기 기종으로 집계되어 있는 것 같다.
그 많고 많은 분야 우표 중에 최초의 Battle of Britain 관련 우표는 영본국이 1965년 승전 25주년 기념으로 발행한 8종 세트이다. 기념일부인이 사용되지 않아 테마틱자료로서는 매력이 반감하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현재도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종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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