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베이에서 한 집배원이 우편물을 숲에 버렸다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집배원은 "편지를 배달하는 게 귀찮아 근무시간에 차에서 잠을 잤다"면서 "잘못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우리 눈으로 보면 깜짝 놀랄 일이지만 미국에선 이런 사건이 심심찮게 발생한다. 우편물을 자기 집 다락방에 쌓아 두고 있다가 적발되는 집배원도 있고, 우표를 빼돌려 시중에 내다 팔다가 꼬리가 잡히는 우체국 직원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신문 사회면에 큼지막하게 보도될 게 틀림없다. 그러나 어제도 그제도 1년 전에도 이런 기사가 난 적이 없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국내에서도 우편물 보호는 법으로 규정돼 있다. 우편물을 훼손, 은닉 또는 방기하거나 고의로 수취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우편법에 규정돼 있다. 이런 행위를 한 사람이 집배원이라면 징역은 5년 이하, 벌금은 2000만원 이하로 높여 엄벌에 처하도록 돼 있다.
이런 범죄가 옛날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서울체신청이 기관 창설 100주년을 맞아 펴낸 서울체신청백년사에 보면 구한말기 우정사업과 관련해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갑신정변에 따른 10년간의 공백기가 지나고 1895년 근대 우정사업이 재개됐을 때 우체국에는 형틀과 곤장이 있었다고 한다. 게으른 집배원 등 범죄자를 현장에서 벌주기 위한 시설이다.
당시 우정규칙에 따르면 "요령 부리며 게으름을 피우다 우체물을 분실하는 자, 우체물을 전하면서 치사한 의물을 토색(억지로 달라고 하는 것)하는 자"에 대해 곤장 20대 또는 벌금 20냥을 물렸다. 이 규칙에 따라 곤장을 얻어맞은 사람이 실제 얼마나 있었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이렇게 살벌한 데 어느 누가 게으름을 피울 수 있었을까.
우정규칙이 집배원을 겨냥한 것만은 물론 아니다. 우편물의 수령을 거부하거나 배달중인 우편물을 함부로 꺼내 가져가는 경우에도 곤장 10대나 벌금 10냥을 부과한다고 돼 있다. 한 번 사용한 우표를 다시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곤장 60대 또는 벌금 60냥을 물리도록 돼 있다. 당시 한성(서울) 부자들이 사는 초가 7칸이 50냥, 보통 사람들이 사는 초가 3칸이 15냥, 빈민토담집 2칸이 2.5냥이었다고 한다. 쌀 1석은 5냥, 무명과 삼베 1필은 각 2냥이라는 비교자료도 있다. 우편물을 함부로 다뤘다가는 전 재산을 날릴 수도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규정이다. 우표값 250원을 아끼려고 한 번 쓴 우표를 다시 사용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설령 그런 일이 있다 해도 집값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린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러나 당시 사회상을 감안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도 있다. 한 예로 1896년 2월18일 관보에 실린 광고를 보자.
"올해 1월 9일, 15일, 16일, 17일 한성발 우편과 19, 20일 충주발 우편, 22일과 23일 안동을 출발해 대구로 가던 우편물이 안동~대구간 도로에서 도적들에게 약탈당했음을 광고함."
범죄자들이 무슨 목적에서인지는 몰라도 우편물을 탈취해 간 것이다. 우편물을 안전하게 배송하는 일이 이처럼 어려웠으니 우편물에 함부로 손대는 것을 막는 강력한 규정도 필요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배달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근대 우편제도를 우선 시행한 한성~인천의 배달시스템이 흥미롭다. 두 곳의 집배원은 매일 오전 9시 상대지역을 향해 출발, 시간당 10리(4km)의 속도로 걸어 중간지점인 오류동에서 만난다. 여기서 각자 가지고 온 우편물을 30분에 걸쳐 주고받은 뒤 오후 5시30분까지 출발지로 되돌아온다. 이때 집배원이 가져가고 가져오는 우편물이라고 해 봤자 하루 10통도 채 안됐지만 규정에는 25근(15kg)을 넘지 못한다고 돼 있었다. 집배원의 어깨는 이렇게 가볍게 시작했으나 10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요즘은 1인당 하루 평균 107kg의 우편물을 감당하는 것으로 변했다.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