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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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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 뒷이야기상세보기
제목 아이티와 도미니카의 우표전쟁
등록일 2015. 11. 27.
첨부파일 up20151127195749696.JPG

우표뒷이야기No.53 아이티와 도미니카의 우표전쟁

아이티와 도미니카 국경 분재을 부른 지도우표(왼쪽)와 아이티가 적십자 모급을 위해 발행한 우표.

아이티의 지진 참사를 전하는 외신 가운데 도미니카 공화국이 아이티 지원에 발벗고 나섰다는 CNN 뉴스가 눈에 들어온다. 재난국에 구조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도미니카와 아이티는 이런 일반론을 얘기할 수 없는 특별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두 나라는 카리브해에서 두 번째로 큰 이스파니올라 섬을 공유하고 있다. 섬의 동쪽 3분의 2는 도미니카, 서쪽 3분의 1은 아이티 땅이다. 지리적으로는 가장 가깝지만 두 나라는 오랜 세월 동안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여와 원수지간이나 다름없다.

한국 우정의 어제와 오늘을 알리기 위해 정부가 세운 곳이 우정박물관이다. 충남 천안에 있는 이 박물관에 가면 석산이 평생 사재를 털어 수집한 172점의 우정 자료들이 주요 전시물로 전시돼 있다. 2005년에 그가 기증한 이들 자료가 없다면 우정박물관은 박물관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초라해진다.

요즘 아이티 현지 참상을 전하는 TV 뉴스를 보면 아이티 국민의 얼굴색이 한결같이 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저 나라 사람들은 흑인일까"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이 의문을 따라가다 보면 아이티 비극의 역사를 만나게 된다.

현재 아이티 국민은 95%가 흑인이다. 17세기 식민지 시대 설탕농장 일꾼으로 아프리카에서 집단 이주해 온 흑인 노예의 후손들이다. 이들이 1804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해 나라를 세웠다.

석산은 정보통신의 날(옛 체신의 날)을 바로잡은 주역이기도 하다. 1956년 체신의 날이 처음 정해질 때는 12월 4일이었다. 이날이 우정총국 청사 낙성식과 함께 갑신정변이 발생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졌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갑신정변으로 우정총국이 폐쇄된 만큼 이날은 한국 우정의 생일이 아니라 제삿날이라는 게 당시 서울중앙전신국장 진기홍의 생각이었다.

물론 이들이 이스파니올라 섬의 원주인은 아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인도를 찾아 항해하다가 '신대륙'인 줄 알고 상륙한 곳이 지금의 아이티다. 당시 이 섬에는 토착어를 쓰는 인디언이 100만명쯤 살고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과 프랑스가 번갈아 지배하는 과정에서 인디언은 몰살당하고, 바다를 건너온 흑인만 남게 된 것이다.

같은 섬에 살지만 도미니카 공화국의 인종은 아이티와 다르다. 이곳 국민은 대부분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물라토다. 아이티의 흑인들이 1791년 독립혁명을 일으켰을 때 아이티 땅에 있던 백인들이 도미니카 지역으로 피신해 가서 흑인과 결혼해 낳은 후손들이다.

흑인 독립국가가 된 아이티는 1822년 도미니카를 침공, 22년 동안 식민 통치한다. 이는 도미니카인에 깊은 반감을 남겼고, 100여 년이 지난 1937년 도미니카의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는 아이티를 도미니카의 '위협'이자 '정반대 국가'로 규정하는 적대관계로 이어진다. 트루히요는 국경 지역의 아이티인 2만5000명을 학살했고, 이후 정권들도 트루히요의 차별 정책을 이어받아 아이티인들을 학대했다.

아이티 내정 또한 안정된 적이 없다. 잦은 지진과 태풍 피해, 독립 이후 34번 일어난 쿠데타, 19년 동안의 미국 점령 통치, 여기에 '파파도크'로 불린 프랑수아 뒤발리에의 독재정권 치하에서 3만명이 학살되는 등 비극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국민 절반이 문맹이고, 먹을 것이 없어 진흙빵을 구워먹는 등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이런 불행한 역사의 그늘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이런 아이티가 세계 수준급의 우표를 발행해 왔다는 사실이다. 아이티가 우표를 처음 발행한 것은 1881년이다. 프랑스 식민지 영향을 받았다고는 해도 한국(1884년)보다 앞서 근대 우정을 도입한 것이다. 이후 정상 우표가 아니라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목적으로 다양한 특별 우표를 발행했다.

이처럼 우표를 중시하다 보니 우표 주권을 놓고 도미니카와 싸움을 벌인 적도 있다. 발단은 1900년 도미니카가 지도우표를 내면서 아이티 영토인 앵슈 지역을 자기네 땅에 포함시킨 데서 비롯됐다. 이 우표를 보고 격분한 아이티는 "결코 좌시할 수 없다"며 선전포고를 하고 도미니카 지역으로 쳐들어갔다. 아이티는 한걸음 더 나아가 1924년 도미니카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고 이스파니올라 섬 전체를 아이티 영토로 표시한 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장군멍군식의 우표 분쟁은 29년 동안 지속됐고, 1929년 미국의 중재로 겨우 수습됐다. 도미니카가 앵슈 지역을 자국 영토에서 뺀, 즉 양국 간 360㎞에 이르는 국경을 제대로 그린 지도우표를 다시 발행하면서 분쟁이 종결된 것이다.

출처 : 이종탁<경향신문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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