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벼 품종은 자포니카(Japonica), 인디카(Indica), 자바니카(Javanica)의 세 가지로 분류 되는데, 자바니카는 인디카와 비슷하여 편의상 같은 종으로 본다. 자포니카는 쌀알이 짧고 둥글면서 끈기가 있는 계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에서 재배되고, 인디카는 인도와 파키스탄 등 동남아사아에서 주로 재배되는 것으로 쌀알이 길고 찰기가 없다. 세계 생산량으로 보면 자포니카는 10%, 인디카는 90%다.
지금 우리나라의 쌀 생산량은 자급자족의 단계를 넘어서 과잉생산으로 문제가 되고 있으나, 1960년대는 우선 먹는 것이 너무 급했다. 전 세계의 다수확 품종 벼를 들여와 시범 재배를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에 정부에서는 벼 품종 개선에 눈을 돌리고 1964년 필리핀의 ‘국제 미작(米作)연구소’(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에 연수를 다녀온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교수 허문회에게 다수확 벼 품종 개발을 맡겼다.
남방계와 동북아 벼는 교배가 안 된다는 것이 그 당시의 정설이었다. 허문회 교수는 두 품종 교배를 수백 번 한 끝에 드디어 꿈의 벼인 ‘통일벼’(IR667)를 개발한다. 한국인이 먹는 자포니카와 다수확 품종인 인디카를 교배한 것으로 국제미작연구소의 667번째 개발 품종이라는의미로 IR667이라 했다. IR667은 다수확성이 확인되면서 ‘기적의 쌀’로 주목받았다. 절체절명의 혼이 담긴 치열한 연구결과의 산물이다.
시험 품종인 통일벼를 만경평야에 심고는 그 낱알 수를 세었다. 이삭마다 80~90알 열리던 낱알이 통일벼는 무려 120~140알이 나왔다. 50% 증가한 다수확 품종인 것이다. 그러나 통일벼는 남방계를 닮아서 우리에겐 맛이 없었으나, 당시는 그것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1972년부터 전국적으로 확대·보급되었다 정부는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쌀을 수매하여 신품종 재배를 촉진시켰다. 1977년 쌀생산량이 ha당 4.94t(일본 4.78t)으로 세계최고의 기록을 세웠으며, 쌀의 완전 자급자족을 실현하여 녹색혁명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에 정부는 ‘쌀 자급자족’을 선언했다. 쌀 수요 억제책도 완화되었고, 쌀막걸리 제조를 금지한 지 14년만에 허가되었다. 이는 그 해 10대 뉴스에도 포함되었다.
통일벼는 재래 품종보다 내랭성이 낮아 보온못자리가 필요했고, 충분한 양의 비료와 물이 공급되어야 했다. 줄기의 키가 작아서 볏짚이 짧아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만들기는 어려웠다. 겨우 1년 뒤인 1978년 ‘노풍 파동’이 터진다. 새로 개발한 통일벼 신품종 ‘노풍’의 66%가
도열병에 걸리고 말았다. 부실한 사전대책과 무리한 재배, 유신정권의 정치적 혼란 속에 벌어
진 사건이다.
연구자들은 통일벼가 지닌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후속 품종개발을 추진했는데, 밥맛을 개선한 ‘유신벼’가 대표적이었다. 통일벼는 맛 좋은 신품종 벼에 그 임무를 넘겨주고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우정사업본부에서는 12월 27일 <한국을 이끈 과학기술> 8종의 우표를 발행하면서, 그중에 녹색혁명을 이끈 ‘통일벼’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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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 통일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의 녹색혁명: 벼 신품종의 개발과 보급, 1978, 김인환, 농촌진흥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