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개국한 태조는 한양(서울)을 도읍지로 정한 후 한양 주위로 성곽을 쌓도록 하고 동서남북에 4대문을 두었다. 그 중 남쪽에 있는 문을 남대문 또는 숭례문(崇禮門)이라 하였다.
남쪽 문은 한 나라의 도성을 출입하는 상징적인 정문으로, 숭례문은 이러한 상징성과 문으로서의 일상적인 기능을 동시에 지닌 곳이었다. 또한 기우제(祈雨祭)와 기청제(祈晴祭)를 지내고 주요한 국가 행사를 열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했다.
태조 5년(1396년)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년)에 완성된 숭례문은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서울의 목조건축물로 돌을 쌓아 만든 석축과 2층으로 된 목조건물인 문루로 구성되어 있다. 6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숭례문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다.
세종 30년(1448년)과 성종 10년(1479년)에 크게 수리되었으며 일제 강점기 직전인 1907년부터 1909년 사이에 일제에 의해 좌우 성벽이 헐렸다. 한국전쟁 중에는 숭례문 석축 전면과 문루 등이 피해를 입었고 1961~1963년에 석축 일부와 문루 전체에 대한 해체수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2008년 2월 10일 토지보상에 불만을 품은 한 노인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방화에 의해 귀중한 보물인 숭례문의 문루 2층의 대부분과 문루 1층 일부가 소실되었다.
많은 이들이 분개했고 안타까워했다. 화재 이후 복구를 위한 많은 연구를 하고 최고의 장인들의 참여를 통해 전통기법에 따라 원형대로 복구되는데 중점을 두고 일제에 의해 헐렸던 좌우성벽 또한 조선후기의 모습으로 복원하기위해 약 5년 간의 긴 복구 작업을 통해 2013년 5월 4일 복구 기념식을 거행하고 시민들품에 돌아갔다.
다시 돌아온 숭례문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