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대사는 625년(진평왕 47년)에 경주에서 타어나 644년(선덕여왕 13년)에 출가해 승려가 되었다. 650년 원효대사와 당으로 유학길을 오르려던중 첩자로 몰려 실패하고 신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후 다시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화엄사상을 배워 추후에 화엄사상의 핵심을 화엄일승법계도라는 저서를 남겼다. 부석사는 의상대사가 화엄의 대교를 펴던 곳으로, 창건에 얽힌 의상과 선묘와의 애틋한 사랑의 설화는 유명하다.
전해오는 설화
<삼국유사>에 따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 유학에서 어떤 불교신도 집에서 묵게되었다. 그 집의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선묘였다고 한다. 사랑의 인연을 맺었지만 의상의 불법 정진을 위해 선묘를 멀리하면서 헤어지게 되었다.
의상을 흠모하던 선묘는 의상이 공부를 마치고 신라로 건너갈 때 손수 지은 법복을 전해주려 하였으나 만나지못하여 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의상이 떠나자 선묘가 용으로 변해 귀향을 돕겠다며 의상이 신라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왔고, 절터까지 따라와서 절을 세우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본래 이 절터에는 사교의 무리가 모여 있었는데, 의상이 이 곳에 절을 세우려고 하자 선묘가 무거운 바위를 사교의 무리들의 머리 위로 띄워 이곳에 절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무량수전 옆에 큰 바위가 있는데,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선묘가 띄웠던 바위이며 아직도 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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