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1호 위성은 1995년 8월 3일 오후 8시 15분에서 9시 24분(한국시각) 발사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열대성 폭풍 에린 때문에
8월 5일 미국 남부 플로리다주 케이프케나베럴(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맥도널 더글러스사의 델타 로켓에 의해 주위성을 발사하여
8월 30일 정지궤도에 진입했다. 예비위성은 12월에 발사했다. 무궁화 1호 위성은 적도 상공 약 3만 6천km, 동경 116의 지구정지궤도상에
발사되어 국내 위성통신 및 운행차량·선박의 위치 등 각종 위성 데이터통신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나 주엔진에 부착된 보조로켓 중 하나가
분리시스템의 도화선 손상으로 제때에 분리되지 않아 목표궤도(원지점 3만 5786km)에 6351km나 못 미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래서 위성을
정지궤도에 진입시키기 위하여 위성자체가 가지고 있던 추진제를 사용하였는데 그 결과 위성의 수명이 당초 10년에서 4.5년으로 단축되었다.
그래서 무궁화 2호는 당초 무궁화 1호의 예비 위성으로 계획했다가 무궁화 1호가 계획했던 정상적인 궤도 위치로 오르지 못하는 사고로 인해
발사 시기가 앞당겨져 발사되었다. 무궁화 2호 위성은 1996년 1월 14일 성공적으로 발사됐고 1996년 7월부터 상용 방송통신위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무궁화 2호도 무궁화 1호와 마찬가지로 적도상공의 정지궤도(동경 113°)에서 활동하고 있다. 무궁화위성 2호의 제원은
무궁화위성 1호와 동일하며 주파수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 1호 위성과는 주파수 대역을 달리하여 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용 위성인 무궁화위성의 의미를 정리해 보면, 첫째 남북통일을 대비한 한반도 문화공동체 형성에 필요한 통신·방송을 위해
마련되었고, 둘째 국제적으로 확보경쟁이 치열한 우주자원(궤도·주파수)을 확보하였으며, 셋째 우주경쟁 대열에 본격적으로 진입하였다는 점 등
많은 역사적 의미를 지녔다. 또한 무궁화위성을 통해 방송·통신 복합위성인 무궁화위성의 서비스 영역이 한반도는 물론 중국의 산동반도와 일본의
오사카지역 등 주변 국가까지 확장되어 우리 문화를 해외로 전파시킬 수 있었다. 또한 고품질 영상채널 증가로 다양한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어 국내 어느 곳에서나 필요한 곳에 초고속정보통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기록으로 본 한국의 정보통신 역사 (무궁화위성 1·2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