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은 고려 희종 2년, 경상도 경산에서 태어났다. 칭기즈칸이 몽고족을 통일하고 제국을 건설한 해다. 속명은 김견명(金見明), 14세에 설악산 아래 강원도 양양의 진전사(陳田寺)로 가서 출가했고, 이 때 이름은 회연(晦然)이었다.
22세에 승과에 나가 합격한 일연은 이후 몽고 전란기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경상도 달성의 비슬산을 거처로 수행하였다. 44세에 경상도 남해의 정림사(定林社)
주지로 부임하였고, 55세에 바로 이 지역에서 『중편조동오위(重篇曺洞五位)』를 간행하였다.
일연은 1283년 그의 나이 78세에 국사(國師)가 되었고, 80세에 경상도 군위의 인각사(麟角寺)로 은퇴하여, 충렬왕 15년, 84세를 일기로 입적하였다.
이 시기에 『삼국유사』를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13세기 후반에 간행되었을 『삼국유사』 초간본은 그 전본(傳本)을 잃은 지 오래다. 실로 초간본의 간행 사실에 대한 단서조차 잡기 힘든 지금 상황에서 크게
두 종류의 원본을 상정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고판본(古板本)으로 불리는 조선시대 초기의 간본이요, 다른 하나는 중종 임신년(1512)에 간행된 이른바
정덕본(正德本)이다.
오늘날 삼국유사는 한국고대의 역사 · 지리 · 문학 · 종교 · 언어 · 민속 · 사상 · 미술 · 고고학 등 총체적인 문화유산의 원천적 보고로 평가되고 있다.
이 책에는 역사 · 불교 · 설화 등에 관한 서적과 문집류, 고기(古記) · 사지(寺誌) · 비갈(碑喝) · 안첩(按牒) 등의 고문적(古文籍)에 이르는 많은 문헌이 인용되었다.
특히, 지금은 전하지 않는 문헌들이 많이 인용되었기에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삼국유사는 신화와 설화의 보고이다. 또한 차자표기(借字表記)로 된 자료인 향가, 서기체(誓記體)의 기록, 이두(吏讀)로 된 비문류, 전적에 전하는 지명 및 인명의
표기 등은 한국고대어 연구의 귀한 자료가 된다. 이 책이 전해준 우리민족의 문화유산 중 최대로 꼽히는 것의 하나는 향가이다. 14수의 향가는 우리나라 고대문학연구의 값진 자료이다.
삼국유사는 또한 한국고대미술의 주류인 불교미술연구를 위한 가장 오래된 중요한 문헌이기도 하다. 탑상편의 기사는 탑 · 불상 · 사원건축 등에 관한 중요한 자료를 싣고 있다.
이 책은 역사고고학의 대상이 되는 유물 · 유적, 특히 불교의 유물 · 유적을 조사 · 연구함에 있어서 기본적인 문헌으로 꼽힌다. 삼국유사에는 풍류도(風流道)를 수행하던 화랑과
낭도들에 관한 자료를 상당히 전해주고 있다. 이 자료들은 종교적이고 풍류적인 성격을 많이 내포하고 있어서 주목된다. 삼국사기 화랑관계 기사와는 다른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국유사에는 저자 일연의 찬(讚)이 있어 그의 시문학이나 역사인식을 엿볼 수 있다.
[국어국문학자료사전 (삼국유사 일연)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