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불타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미국 노동자들이 궐기한 날을 기념하는 날로, 1975년부터 매년 3월 8일 UN에 의하여 공식 지정되었다.
당시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은 먼지 자욱한 현장에서 하루 12~14시간씩 일해야 하였으나,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굶지 않기 위하여
일하면서도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받았다.
1908년 3월 8일, 1만 5천여 명의 미국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러트거스 광장에 모여 10시간 노동제와 작업환경 개선, 참정권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2차 여성운동가대회에서 독일의 노동운동 지도자 클라라 제트킨의 제창에 따라 결의하였다.
이후 여성들의 국제적인 연대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각국에서 여성들의 지위향상과 남녀차별 철폐 , 여성빈곤 타파 등 여성운동이 활기를 띠기 시작해 2001년 현재까지
매년 3월 8일을 기해 세계적으로 기념대회가 이어져 왔다.
한국에서는 1920년 일제 강점기에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 박인덕, 김활란 등 자유주의 계열과 허정숙, 정칠성 등 사회주의 계열이 각각 여성의 날 기념 행사를 시작하면서
조선에 정착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이들의 여성 행사를 감시하였지만 딱히 명분이 없어 탄압하지 못했고, 이는 1945년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그러나 해방 이후 여러가지 사회 운동에 대한 탄압적인 정책을 유지했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집권 시절에는 사회주의적 경향을 가진 세계 여성의 날은 공개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뜻있는 소수에 의해서만 치러지는 작은 행사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은 1985년에 가서야 일부 해소되었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개적으로 기념할 수 있었고 제1회 한국여성대회가 개최되었다. 이후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세계 여성의 날은 본격적인 정치색을 가지게 되었고,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전국여성노조, 민주노총 및 각종 여성주의 단체들이 주최 및 후원하는 전국적인 정치·문화 행사로 자리잡았다.
[위키백과 (국제 여성의 날)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