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프랑스 오페라 발전의 초석&&조선조 시조문학의 대가 윤선도&&근대 한국화의 산증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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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0. 6. 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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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오페라 발전의 초석 프랑스의 작곡가. C.글루크의 영향을 받아 극적인 표현과 관현악의 효과를 잘 살린 오페라와 오페라코미크를 작곡하여 이름을 떨친 메월(Etienne-Nicolas Mehul, 1763.6.22~1817.10.18)은 프랑스 지베에서 출생했다. 그는 풍부한 자질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케루비니와 르쉬외르와 함께 베를리오즈를 미리 예견한 작곡가였다. 뛰어난 대본작가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대담한 화성감각을 지녔으며, 극적 요소와 관현악을 다루는 천부적 재능을 타고났다. 오페라에 있어 관현악의 역할을 강조해 음악 주제를 극내용의 전개에 따라 교향곡적으로 발전시켰으며, 피아노소나타 실내악곡, 관현악곡 등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외프로진과 코라댕 혹은 교화된 폭군(1790)', '이성의 찬가(1793)', '출정의 노래(1794)'등이 있다. ※ 오페라코미크 : '익살스러운 오페라'라는 뜻으로 프랑스의 희가극을 총칭. 조선조 시조문학의 대가 윤선도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 1587~1671)는 조선중기에 호남이 낳은 대시인이며, 조선조 시조문학의 대미를 장식한 대가로 전해지는 인물이다. 그는 학문 뿐만아니라 철학을 위시하여 경사서(經史書) 제자백가(諸子百家)에 통달하여 정치, 학문, 예술 전반에 조예가 깊었으며, 음양지리, 의약, 천문 등 다방면에 능통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산은 정치의 격랑 속에서 이십 년 가까이 귀양살이를 했으나 가산이 넉넉하여 보길도에서 화려한 은거생활을 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시조들은 벼슬살이를 그만두고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선비의 생활과 서정을 이상화해서 절제된 표현으로 한껏 멋을 부렸다. ‘어부사시사’, ‘다섯 벗의 노래(五友歌)’ 같은 작품들은 선비 시조의 최고이며 산수 미학의 절정이라는 평을 받는다. 박인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이 되어 전쟁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전쟁터에서 겪은 일을 바탕으로 ‘태평사’, ‘선상탄’을 썼다. 무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가서 ‘누항사’와 ‘밭갈이 노래’, ‘가난의 노래’ 들을 썼는데 농민들의 가난한 현실을 잘 담고 있다. 그의 시조는 일반적 주제인 자연과의 화합을 주제로 담았으며, 우리말을 쉽고 간소하며 자연스럽게 구사하여 한국어의 예술적 가치를 발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는 2000년 우표로 발행된 바 있다. 근대 한국화의 산증인 전통적인 문인화의 격조를 현대적으로 변용 시켜 새로운 한국화의 경지를 개척해 온 한국화의 대원로(大元老)였던 장우성(張遇聖, 1912년 6월 22일 - 2005년 2월 28일). 그는 18세 때 이당 김은호 문하로 한국화에 입문한 이후, 평생을 한국화에 헌신한 근대 한국화의 산증인이다. 그의 예술의 기본은 고고하고 격조 높은 문인정신과 회화적인 감각과 기술을 이상적으로 조화시킨 정신과 형식의 일치에 있다. 간략한 대상의 설정과 여백의 공간 구성을 통한 그의 화면에는 정(靜)과 동(動)의 세계가 함축된 놀라운 직관의 세계가 자리한다. 또한 문인화의 정신세계를 다루되, 현실과 사회상황으로부터 다양한 소재를 채택하여 자칫 빠지기 쉬운 관념의 함몰로부터 의연하였다. 결국 그는 한국적 전통의 현대적 변용이라는 우리 한국화의 제 1 과제를 자신의 화폭 안에서 개척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주요 작품으로 국회의사당의 벽화'백두산 천지'와 아산 현충사 및 정읍 충렬사에 봉안된 '이충무공영정(李忠武公影幀)', 바티칸궁전에 소장된 '성모자상(聖母子像)' 등 다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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