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문맹퇴치 공로상 ´세종대왕상´ 창설&&건축가, 네르비&&실존주의 대표 사상가 사르트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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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0. 6. 21. |
첨부파일 | 첨부파일없음 |
문맹퇴치 공로상 ´세종대왕상´ 창설 세종대왕상(世宗大王賞)은 한국 정부(외교통상부)의 지원으로 1989년 6월 21일에 제정되어 1990년부터 시상해오고 있는 상으로, 정식명칭은 세종대왕 문해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이다. 올해로 제 18회를 맞이하는 이 상은 문해(文解, 글을 읽고 이해함), 특히 개발도상국의 모어(母語) 발전 및 보급에 크게 기여한 개인/단체/기구 2명(곳)에게 매년(9월 8일 문해의 날) 시상한다. 세종대왕상의 후보는 유네스코 회원국 정부, 또는 유네스코와 공식 관계를 맺고 있는 국제 비정부기구들이 각 2명까지 추천할 수 있으며, 수상자는 국제심사위원단의 추천으로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선정한다. 각 수상자에게는 상금 미화 1만 5,000불과 상장, 세종대왕 은메달을 수여하며, 시상식은 매년 9월8일 세계 문해의 날에 열린다. 건축가, 네르비 이탈리아의 건축구조가인 네르비(Pier Luigi Nervi, 1891.6.21~1979.1.9)는 철근과 콘크리트 구조물을 사용한 장(長)스팬 구조에 기술적인 천재성과 극적인 디자인 감각을 펼쳐 명성을 얻었다. 1913년 볼로냐공과대학을 졸업하고 1946년 로마대학 건축학부 교수, 1957년에는 미국 미술 ·문학아카데미의 명예회원으로 추대되었다. 근대건축에서 철근/철골/콘크리트의 구조체가 지니고 있는 공학적 합리성과 미학적 가치를 강하게 표현함은 물론, 노출된 구조물 몸체의 역학적 표현력의 추구 및 건축물에 기술의 독창적 해석과 시각적으로 박력이 넘치는 디자인을 채용하였다. 주요작품으로 역학적 표현력이 돋보인 피렌체의 벨타경기장 이외에도 토리노 박람회 때 세운 103m 스팬의 조립식 아치(1949~50)와 공동작품인 이탈리아 최초의 마천루, 밀라노의 피렐리 빌딩(1955) 등이 있다. 실존주의 대표 사상가 사르트르 개별적 인간 존재의 자유를 주창하는 철학인 실존주의의 대표적 사상가이자 소설가였던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6.21~1980.4.15)는 노벨문학상을 거부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는 2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여의고, 외조부였던 C.슈바이처의 슬하에서 자랐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입장에서 전개한 존재론으로서 결정적인 작업이자, 세계적으로 보아도 제2차 세계대전의 전중부터 전후에 걸친 그 시대의 사조를 대표하는 웅대한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는 1943년작 “존재와 무”를 비롯하여 ‘레탕모데른’지(誌)를 창간하여 문학적 지도자로서의 활동도 단행하였다. 실존주의의 대표적 사상가였던만큼 사르트르는 “사회참여”사상에 일관된 작품활동을 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1946)'와 '자유에의 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그의 필력이 소갈된 무렵인 말년에는 "참여는 행위이지 말이 아니다"란 신념으로 폭동, 좌익 문학활동, 그밖에 '혁명'을 촉진한다고 생각한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자주 거리로 뛰쳐나갔던 급진적 사회주의자의 모습을 띄기도 하였다. 1964년 자서전적인 책 '말'을 출판할 준비를 했는데, 이 책이 1964년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 것을 알고는 수상을 거부하였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거부한 이유로는 노벨상이 '부르주아들의 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실존주의적 성향으로 일관하여온 그가 용납할 수 없었다는 견해와 그의 라이벌이었던 카뮈(Albert Camus, 1957년 노벨 문학상 수상)보다 늦게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데 불만을 품은 것이라는 의견도 전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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