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7일
왜 나는 태양이 만들어 낸 장관을…
프랑스 후기인상파 화가이자, 20세기 회화 출현의 근원을 제시한 고갱(Paul Gauguin, 1848.6.7~1903.5.8)은 1848년 6월 7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고갱은 그의 나이 35세가 되어서야 전업 작가의 길로 뛰어들었다.
얼마 후 빈센트 반 고흐와의 만남이 시작되고 프랑스 남부의 아를에서 함께 지내기도 했으나, 1888년 12월 어느 날 고흐는 고갱과 다툰 뒤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잘라 버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은 결별했다. 파리로 돌아온 고갱은 정치적 혼란 속에서 문명에 대한 혐오감을 견디지 못하고 1891년 타히티행 배에 홀로 올랐다.
타히티에 간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유럽인 우월주의의 발로라고 지적하는 비판이 적잖은 것도 사실이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그가 타히티에서 인류 미술사에 길이 남는 걸작들을 창조해 냈다는 사실이다.
고갱은 타히티에서 ‘왜 나는 태양이 만들어 낸 장관을 캔버스에 그리는 걸 주저했을까’ 하고 반성했다. 고갱 그림의 생명력은 태양의 세례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상징성과 내면성, 그리고 비(非)자연주의적 경향은 20세기 회화가 출현하는 데 원초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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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력을 제정한 그레고리오 13세
이탈리아의 그리스도교 철학자이자 신학자였던 교황 그레고리오 13세(Gregorius XIII, 1502.6.7~1585.4.10)는 가톨릭교회의 내부개혁과 반종교 개혁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온건한 유명론(唯名論)을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에게 영향을 받은 그는 사람에게는 신의 은총없이 오직 자유의지만으로 도덕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강조했으며 의인들을 값없이 선택하고 그들에게 영원한 영광을 주기로 예정한 하느님의 자율은 초월적인 원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펠라기우스주의와는 반대로 그리스도교인이 열망하는 하느님을 만나는 데 필요한 완전한 사랑을 얻으려면 선한 의지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주장했으며, 더 나아가 세례를 받지 않고 죽는 유아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여 '유아 고문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동양 선교에도 노력한 것으로 알려지며, 1582년에는 율리우스력을 수정하여 그레고리력(曆)을 제정하였다.
X-선 산란에 대한 연구, 바클라
런던 대학교 및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교수직을 떠나지 않았던 영국의 물리학자 바클라(Charles Glover Barkla, 1877.6.7~1944.10.25).
그는 특성(特性) X선에 관한 발견과 연구, 2차 X선이 산란선(散亂線)과 형광선(螢光線)으로 이루어진다는 지적, X선의 편광현상(偏光現象)의 발견, 흡수(吸收) 및 사진작용, X선 산란에 의한 원자(原子) 내 전자수(電子數)의 추정, X선에 대한 양자론(量子論)의 적용 가능성과 한계 등에 대한 연구로 191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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