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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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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국내 최초, 전차 개통식&&‘스크린의 요정’ 오드리햅번 출생&&신고전주의 학파, 화가 제라르
등록일 2010.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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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4일

국내 최초, 전차 개통식

국내 최초, 전차 개통식 내용시작 1899년 5월 4일 동대문 앞 전차 보관소에는 난생 처음 보는 신기한 것을 구경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이날 거행된 역사적인 첫 전차 개통식은 동대문과 경희궁 동쪽 흥화문 구간을 운행 하였고 이어 5월 20일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정식 운행에 들어갔다. 한성에서 전차, 전등, 전화 사업을 위해 1898년 설립된 한성전기회사가 운영하는 우리나라의 첫 전차 사업은 한성전기회사의 실제 운영을 맡은 미국인 콜브란의 주도하에 이루어 졌다. 당시 고종의 잦은 홍릉(명성황후의 릉)행차에 따른 막대한 행차비용의 절감과 백성들의 편리함을 들어 고종의 허락을 받아낸 콜브란은 선로의 부설과 전차의 운행에 대한 독점적인 지위를 행사하였고 지속적인 전차, 전기사업의 확장과 함께 훗날 대한제국 소유였던 한성전기회사를 동업자인 보스윅과 함께 자신들의 소유로 만들어버렸다. 당시 개통된 전차의 인기는 폭발적이었고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전차를 타기위해 몰려들었다고 한다. 전차가 정상 운행되고 며칠 지난 26일 파고다공원 앞에서 일어난 사고로 인해 흥분한 군중들로 인하여 3개월 여간 운행이 중단되기도 하였으나 이후 1968년까지 약 70여 년간 서울의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자립잡고 있었다.

‘스크린의 요정’ 오드리햅번 출생

‘스크린의 요정’ 오드리햅번 출생 할리우드 데뷔 첫 작품인 ‘로마의 휴일'을 통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과 함께 ‘헵번 스타일(Hepburn style)'이라는 명사를 만들어내며 일약 세계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미국의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Hepburn, Audrey, 1929.5.4~1993). 요정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은 당대의 패션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인기만큼 많은 영화에 출연하지는 않았지만 전쟁과 평화(1956),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 마이 페어 레이디(1964) 등 일련의 영화들을 통해 그녀만의 매력을 충분히 발휘하였다. 아이를 기르기 위해 수많은 대작들의 출연을 거부하기도 했던 그는 은퇴 후 유니세프 친선대사로서 인도나 소말리아등 세계각지의 열악한 환경 속에 처한 아이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현재 그의 헌신적인 노력과 1993년 암으로 사망한 그를 기리기 위해 2004년 국제연합과 민간단체가 공동 제정한 세계평화상이(오드리 헵번상)매년 수여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스크린의 요정’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신고전주의 학파, 화가 제라르

신고전주의 학파, 화가 제라르 내용시작 왕정복고시대 귀족들과 저명인사의 초상화로 유명한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화가인 제라르(Gerard, Francois, 1770.5.4~1837)는 당대 가장 저명한 화가였던 그의 스승 다비드의 초상화보다 더욱 우아하다는 평을 받았다. 조각가 오귀스탱 파주의 문하를 거쳐 다비드의 제자가 된 제라르는 ‘큐피드와 프시케(Cupid and Psyche)’로 살롱전에서 입상하여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인기 있던 화가 지로데(Girodet)와 라이벌이기도 하였던 그는 뛰어난 그림솜씨와 화술덕분에 많은 유력 인사들과 친분이 있었고 나폴레옹의 총애를 받는 화가로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나폴레옹의 몰락이후에도 루이 18세의 궁정화가로 계속 활약하였고 1819년 남작의 위치까지 올랐다. 섬세하고 매끄러운 화법을 이용해 마치 살아있는 대상을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뛰어난 그의 그림솜씨는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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