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프랑스 파리 지하철 개통&&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피사로&&이탈리아의 화가 키리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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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0. 7.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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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지하철 개통 1863년 런던에서 최초의 지하철도가 개통된 뒤 1896년 부다페스트, 1898년 빈에 이어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1900년 파리지하철 1호가 7월 10일 오후 1시 개통됐다. 최초의 런던 지하철도는 증기로 운행되었으나 1890년부터 전기의 힘을 이용하게 되었고 파리의 지하철 역시 전기를 동력으로 운행되었다. 파리 서쪽 포트 마이요에서 시작해 총 16개의 정차역을 지나 동쪽의 포트 드 반센누를 연결하는 파리지하철 1호는 3량의 객차로 약 30여 분간 파리의 시민들을 지하세계로 안내하였다. 오늘날 파리의 지하철은 메트로(Metro)라 불리며 거미줄 같은 교통망으로 파리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피사로 인상파 특유의 기법을 바탕으로 수수하면서도 견실성을 보여주는 그의 작풍은 오히려 모네나 시슬레보다 구성적인 면에서 독특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천성이 성실한 화가였던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7.10~1903)는 1855년 만국박람회 이후 풍경화에 몰입하며 열심히 정진하였다. 천부적인 소질보다 노력파에 가까웠던 피사로는 보불전쟁당시 피난 생활 속에서 모네와의 만남 이후 꾸준히 작품을 출품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주로 소박한 전원풍경을 그리며 인상주의의 목표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았던 피사로는 만년에 심한 눈병에도 불구하고 생에 가장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탈리아의 화가 키리코 형이상학적이고 몽환적인 화풍으로 '피투라 메타피시카'(pittura metafisica) 화풍을 창시하며 초현실주의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키리코(Giorgio de Chirico, 1888.7.10~1978). 그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화가중의 한 사람으로서 미래파 이후의 이탈리아 화단의 중심에 있었다. 독일의 뮌헨 미술 아카데미시절 형이상학적 회화에 눈뜨기 시작한 키리코는 자신만의 미술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1911년부터 파리에 머무는 동안 피카소 등과 교류하며 입체파로의 시각을 넓혔던 키리코는 이후 연관성 없는 대상물을 주관적으로 끼워 맞춰 재구성하여 몽환적인 분위기의 독특한 작품들을 발표하며 그 영향력을 점차 넓혀가기 시작하였다. 1918년 로마로 이주하여 자신의 첫 개인전시회 열며 왕성한 활동을 보였던 키리코는 시공을 초월한 환상적인 분위기와 절대적인 적막감을 통해 초현실주의의 태동을 알렸고 이후 달리, 마그리트, 막스 에른스트를 비롯한 후대의 초현실주의 대가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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