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8일
핼리혜성의 궤도를 밝힌 영국천문학자 핼리
거상(巨商)의 아들로 태어나 17세에 옥스퍼드대학에 입학한 핼리(Edmund Halley, 1656.11.8 ~ 1742.1.14)는 1676년 대학을 중퇴하고 세인트헬레나섬에서 천체를 관측하고 거기서 수성(水星)의 일면경과(日面經過) 관측 및 진자실험(振子實驗)을 하였다.
1678년 귀국과 동시에 '행성의 궤도에 대하여'라는 논문으로 대학 졸업자격을 인정받았고, 왕립협회 회원으로 천거되었다.
1682년 출현한 대혜성(大彗星)을 관찰, 그것을 1531년과 1607년에도 출현하였던 혜성의 회귀(回歸)라 주장하였고, 1705년 I.뉴턴의 역학을 적용하여 그 궤도를 산정하여 《혜성 천문학 총론》을 간행하였다.
그 후 그 대혜성을 핼리혜성이라고 불렀다. 14년 연상인 뉴턴과는 20년의 교우관계였고,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출판할때 자료의 제공과 출판비 부담, 교정을 보아주는 등 많은 협력을 하였다.
1693년 달의 운동에서 영년가속(永年加速)을 발견하였고, 1698년 조석관측(潮汐觀測)을 시도하였다.
1703년 옥스퍼드대학의 천문학 교수에 취임,1716년 금성(金星)의 태양면 통과 관측에 의한 태양시차 결정법을 시도하였고, 1720년 그리니치천문대 대장에 취임하였다.
프랑스 비행술 선구자, 에스노펠트리
소르본대학교에서 공학을 공부한 에스노펠트리(Robert Esnault-Pelterie, 1881.11.8~1957)는 라이트 형제의 1902년형 글라이더 복제품의 제작및 활공을 시험하면서 비행술에 도전하였다.
비행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라이트 형제의 비행원리를 비난하던 가운데 보조날개(가동 날개부)를 발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907년에는 최초의 단엽기(單葉機) 가운데 하나이며 혁신적인 7기통 성형기관(星形機關)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동력 항공기를 제작했으며, 이 항공기로 비행한 최장거리는 600m였다. 또한 새로운 형태의 연료 펌프를 발명했다.
에스노 펠트리는 우주탐사에 흥미를 가지고 로켓의 고공비행에 대한 이론을 연구했다.
이를 통해 '우주비행술'(astronautics)이라는 말을 만들어냈고, 이 분야의 업적에 대하여 매년 주어지는 상(펠 허시 상)을 제정하는 데도 기여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 마가렛미첼 출생
마가렛 미첼(Margaret Mitchell, 1900.11.8~1949.8.16)의 유일한 작품으로 집필기간이 무려 10년(1926~36)에 이르고, 천페이지가 넘는 대작으로 평가받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는 총 5부작으로 이루어진 대하드라마다.
남북전쟁(1861~65)과 패전, 재건시대의 급변하는 사회상을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아름답고 강인한 스칼렛 오하라의 인생과 파란만장한 사랑이야기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에 비해 연약한 이상주의자 애슐리 윌크스에 대한 스칼렛 오하라의 사랑, 물질주의적이며 행동가인 레트 버틀러와의 애증 등을 한데 엮은, 간결한 문체와 정교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발행 후 1년 동안에 150만 부가 팔렸으며 10여개 국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1936년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1939년 빅터 프레밍 감독이 비비안 리(스칼렛 역), 클라크 게이블(레트 역) 주연으로 영화화되어 아카데미상 10개 부문을 휩쓸기도 하였다.
한편 1991년 미국 소설가 A.리플리가 속편격인 '스칼렛'을 써서 40여 개국에서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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