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7일
핵분열 연구의 창시자, 마이트너
우라늄 분열을 발견한 오스트리아 출신 스웨덴의 물리학자 마이트너(Lise Meitner, 1878.11.7~1968.10.27)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첫 여학생으로 물리학을 전공하였다.
오토 한, 프리츠 슈트라스만 등과 협력하여 30여년 동안 방사능 연구에 몰두 하였다.
1968년 우라늄의 분열을 발견한 공로로 엔리코 페르미 상을 받았다.
그녀와 오토 한은 공동연구를 통해 프로트악티늄-231 동위원소(그들은 이를 프로트악티늄이라 불렀음)를 처음으로 분리했고, 핵이성질(核異性質)과 베타 붕괴를 연구해서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슈트라스만과 함께 우라늄에 중성자를 쏘았을 때 나오는 생성물을 연구했다.
유대인이었던 그녀는 1938년 나치 독일을 떠나 스웨덴으로 망명하였고, 1939년 1월 조카 오토 프리시와 함께 우라늄에 중성자를 쏘면 바륨이 생성되는 과정의 물리적 특성을 설명하였는데, 이 과정을 핵분열(fission)이라 하자고 제안했다.
[노벨문학상] 프랑스 소설가겸 극작가 카뮈
사르트르와의 친교관계로도 주목받으며, 시사평론을 하면서 청년층의 절대적인 인기를 얻었던 알버트 카뮈(Albert Camus, 1913.11.7~1960.1.4)는 1913년 알제리에서 태어난 카뮈는 이듬해 아버지를 여의고 빈곤하고 어두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결핵과도 싸워야 했던 그는 학업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문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특히 그의 스승 Jean 그르니에의 영향으로 철학에 깊이 눈뜨게 된다.
연극에도 심취하였던 그는 극단에 관계하기도 하였으며, 한때는 공산당에 가입하기도 하였다.
카뮈는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며 모랄리스트이자 정치이론가로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체, 나아가서는 전세계에서 그의 세대의 대변가이자 다음 세대의 스승으로 추앙되었다.
그의 글들은 주로 낯선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는 개인의 소외, 악의 문제, 그리고 죽음이라는 임박한 파국을 이야기함으로써 전후 지식인들의 소외 의식과 환멸을 정확하게 반영했다.
주요 작품으로 '이방인, 異邦人(1942)', '시지프의 신화(1942)', '페스트(1947)', '전락, 轉落(1956)' 등이 있다. 195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 자신이 노벨상평가위원이었다면 앙드레말로()에게 표를 던졌을 것이라며 겸손함을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3년후 그의 최초의 장편소설 '최초의 인간'을 집필하던 중,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노벨생리·의학상] 핵물리학의 어머니 퀴리
핵 물리학의 어머니 혹은 라듐의 어머니로 일컬어지는 폴란드 태생 프랑스의 물리학자 퀴리(Marie Curie, 1867.11.7~1934.7.4)는 H. 베크렐과 그녀의 남편인 피에르 퀴리와 함께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으며, 1911년 단독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는 등 노벨상을 2번 받은 여성으로 유명하다.
퀴리 부부는 방사능을 함유한 '라듐'을 발견하였다. 마리는 방사능의 성분을 연구하여 두 가지 성분을 발견하였는데, '라듐'과 '폴로니움'이다.
이 연구로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는데, 여성으로서는 최초에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다.
남편과 사별한 뒤에도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마리는 방사능의 성분 연구에 계속하였고, 1911년에는 두번째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한 사람이 두 번이나 노벨상을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1914년, 퀴리는 프랑스의 파리에 라듐 연구소를 설립하였고, 얼마 후 라듐 연구소는 그녀의 업적을 기려 '퀴리 연구소'로 명칭을 바꾸어 운영되었다.
1934년에 백혈병으로 생을 마감한 퀴리의 업적을 기려 여성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그녀의 남편과 함께 파리 팡테옹 신전으로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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