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스웨덴의 정치가 브란팅(노벨평화상)&&덴마크의 공학자 포울센(Poulsen, Valdemar, 1869∼1942) 출생&&리투아니아의 의민족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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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0. 11.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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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정치가 브란팅(노벨평화상)
20세기초 20여 년 간 융화적인 외교관계를 펼친 사회민주주의의 선구자로서 1921년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스웨덴의 정치가 브란팅(Karl Hjalmar Branting, 1860.11.23~1925.2.24)은 학생시절부터 급진민주주의적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덴마크의 공학자 포울센(Poulsen, Valdemar, 1869〜1942) 출생 덴마크 전기기술자·발명가. 코펜하겐대학을 마치고 코펜하겐전화회사에서 현재의 테이프 레코더의 선구인 <텔레그라폰(蓄音電信)>을 발명하였다. 그 뒤 계속 연구하여 지속전파(持續電波)를 발생하는 고주파용 아크를 발명, 1903년 무선전신용으로 실용화시켰다. 그 뒤 코펜하겐의 군항 및 기타 장소에 송신소를 건설하여 영국과 통신하였다. 리투아니아의 의민족운동 지도자 바사나비치우스
1873년 역사학과 고고학을 공부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갔으나 1년 뒤 의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1879년 졸업하고 그로부터 25년을 거의 불가리아에서 의사로 일하면서 보냈다. 리투아니아의 문화·정치를 다룬 중요한 잡지 〈아우슈라 Au ra〉(1883~86)의 창간호를 편집했다. 차르 체제가 리투아니아어 서적 출판을 금지했기 때문에 이 잡지는 동프로이센에서 인쇄되어 리투아니아로 몰래 반입되었으며, 리투아니아 민족운동의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05년부터 빌니우스에서 살았다. 리투아니아의 도덕적인 지도자로 대접받았고 1905년 리투아니아의 자치를 요구한 빌니우스 '대회의'의 의장을 맡았다. 1917년 리투아니아 의회(Lietuvos Taryba) 의원으로 뽑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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