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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지난시간여행
제목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개관&&제3차 아시아·유럽 정상회의 개최&&북한, 김일성의 후계자로 김정
등록일 2010. 10. 20.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2010년 10월 20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개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개관 내용시작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1973년 오늘 문을 열었다. 개관을 기념하는 불꽃놀이와 함께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이 연주됐다.
엘라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참석한 이날 개관식은 텔레비전으로 생방송됐다.
조개 껍데기 모양의 독특한 구조 때문에 공사기간과 비용이 계획보다 훨씬 증가했다.
착공 14년 만에야 완공됐다.
당초 예상 건설비의 15배에 가까운 1억2백만 달러의 비용이 투입됐다.
건물 안에는 극장 5개, 리허설 스튜디오 5개, 그리고 레트토랑과 기념품가게 등 천여 개의 공간(room)이 들어서 있다.
이 곳에서 매년 3천여 건의 행사가 펼쳐지고 해마다 2백만여 명의 관람객이 찾아온다. 단순히 건물만 구경하러 오는 관광객도 매년 20만명이 넘는다.

제3차 아시아·유럽 정상회의 개최

제3차 아시아·유럽 정상회의 개최 내용시작`새 천년의 번영과 안보협력`을 주제로 한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가 의장국인 우리나라를 비롯해 26개국의 정상 또는 정상급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2000년 10월 20일 서울 COEX 컨벤션센터에서 개막됐다.
이틀 일정으로 열린 이번 회의에서 정상들은 두 대륙간 정치-안보-경제-정보통신 분야의 협력 강화방안을 모색했다.
회의는 `한반도 평화에 관한 서울선언`을 비롯, `2000 아시아-유럽협력체제(AECF 2000)` `의장 성명서` 등 3개 문건을 채택했다.
아셈 기간동안 사회, 시민단체, 학생과 `아셈 민간포럼` 참가자 1만5000여명은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하는 대규모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번 회의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국제적 제어장치`를 한층 더 강화했다는 점과 유라시아 초고속 통신망 사업을 비롯해 모두 23개 사업을 채택하는 등 구체적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한편, 화려한 외양과는 달리 내실이 미흡해 각국 정상들간의 `고급 사료장`이라는 지적과 북한의 인권과 대량 살상무기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는 점 등이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이번 회의가 한국정부 수립 후 최초의 다자간 정상회의였고, 최대 규모의 외교행사였다는 점에서 한국 외교역량이 한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북한, 김일성의 후계자로 김정일 공식발표

육영수 여사 저격범 문세광 사형선고 내용시작김정일이 조선노동당에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1973년부터 전개된 3대혁명 소조운동을 조직·지도하고 1975년에 '3대혁명 붉은기쟁취운동'을 발기하는 등 새로운 대중운동을 주도하면서 당내의 기반을 넓히는 한편 후계자로서의 위치를 다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1973년 9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기 7차 전원회의에서 비서국 비서로 선임되었으며, 이듬해인 1974년 2월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 정치국 정치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때부터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조선노동당의 실권자로서 북한사회 전반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후계자로서의 김정일의 위상이 공적으로 확인된 것은 1980년 10월에 열린 조선노동당 제6차 당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최초로 대중 앞에 자신의 모습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그의 당내 서열은 4위였지만 김일성을 빼고는 유일하게 당내 3대 권력기구라 할 수 있는 정치국(상무위원회 상무위원)·비서국(비서)·군사위원회(군사위원)에 모두 참여하게 됨으로써 사실상 2인자의 자리를 굳혔다.
조선노동당 6차 당대회가 끝난 직후 북한의 언론·출판물들에 의해서 '영광스러운 당중앙'이라는 익명으로 호칭되었다. 그러나 곧 북한의 언론·출판물들이 그를 '친애하는 지도자'로 호칭함으로써 후계자로서의 위치가 공식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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