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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지난시간여행
제목 미국의 무인 화성탐사선, 패스파인더 발사&&갑신정변(甲申政變) 발발&&´독립신문´ 4년 만에 폐간
등록일 2010. 12. 4.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2010년 12월 4일

미국의 무인 화성탐사선, 패스파인더 발사

미국의 무인 화성탐사선, 패스파인더 발사 내용시작1996년 12월 4일 발사되어 1997년 7월 4일 약 1억 9100만 km를 비행한 끝에 화성에 도착한 미국의 무인 화성탐사선인 패스파인더호는 우주 로켓 발사 역사상 최초로 착륙에 에어백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활동기간은 1화성년(687일)이며, 내부에는 6개의 바퀴가 달린 탐사 로봇 소저너(Sojourner)가 탑재되어 있다. 소저너의 활동기간은 당초 1주일로 예상하였으나 6주 이상 활동하였다.
이 소저너가 탐사활동을 할 때 패스파인더는 초미니 기지 겸 지상관측소 역할을 하게되어 있다. 즉 지구로부터 받은 명령을 소저너에 전달하며, 소저너로부터 탐사자료를 전송받아 지구로 전송하도록 되어 있다.
활동기간 중 1만 장 이상의 화성표면사진과 4백만 가지 이상의 화성 대기, 기상 정보를 수집하였으며, 약 두 달 가량 활동하면서 착륙 지점인 아레스밸리스 평원이 3백만 년 전쯤 발생한 홍수로 인하여 침식작용을 받은 사실 을 통해 물이 존재하였다는 사실과, 소저너의 화학분석을 통하여 규산염을 다량 함유한 암석과 유황이 풍부한 암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과거 화산활동 또는 화성의 지각변동 가능성 예측을 제시하였다.

갑신정변(甲申政變) 발발

갑신정변(甲申政變) 발발 내용시작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 등 개화당이 일본의 힘을 이용해 청에 의존하려는 민씨 중심의 세력을 물리치고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1884년 12월 4일 정변을 일으켰다. 이른바 `갑신정변`이었다.
본래는 이날 열린 우정국의 개국 축하연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안국동 별궁에 방화한 후 척신들이 왕이 있는 궁궐로 급히 돌아갈 때에 이들을 모두 암살할 참이었다. 그러나 방화 계획이 실패하자, 김옥균 등은 즉시 궁궐로 들어가 고종에게 청국군이 변을 일으켰다고 하며, 일본군의 호위를 청해 경우궁으로 국왕을 모셨다.
이들은 이어 궁으로 들어오는 윤태준, 한규직, 이조연, 민영목, 민태호 등 사대당 일파를 살해하고, 다음날인 5일에 각국 공사-영사들에게 신정권의 성립을 통고했고 6일에는 새정부가 앞으로 단행할 개혁정치의 내용을 담은 14개조로 된 `신정강`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원세개가 이끄는 2천명의 청국군이 출동해 일본군을 패퇴시키자 정변은 실패하고 말았다.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은 일본으로 망명했으나 홍영식, 박영교 등은 청군에 의해 피살됐다. 이로 인해 청-일 양국의 한국쟁탈전이 더욱 격화됐다.

'독립신문' 4년 만에 폐간

'독립신문' 4년 만에 폐간 내용시작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이며 한국역사상 최초로 인쇄된 한글 전용신문이었던 ‘독립신문’이 창간 4년만인 1899년 12월 4일 폐간됐다.
독립신문은 한글전용으로 민중을 위해 알기 쉬운 신문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한국 신문사상 획기적인 위치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19세기 말 한국사회의 발전과 민중의 계몽을 위해 지대한 역할을 수행한 한 시대의 기념비적인 신문으로 평가받고 있다.
독립신문은 정부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아 미국에서 귀국한 서재필과 개화파가 합작하여 1896년 4월 7일 창간, 처음에는 가로 22cm, 세로 33cm의 국배판 정도 크기로 4면이 발행됐다.
독립신문은 19세기 말 한국사회의 시대상을 담아내고 민중계몽에 앞장섰던 대표적인 민간신문이었으나 정부의 탄압과 수구세력의 미움을 사게 되고 핵심인물이 바뀌는 등 혼란을 겪었다.
결국 이날 정부가 서재필에게 4천원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독립신문의 판권과 인쇄시설을 매수했고 이날부터 독립신문은 더 이상 발행되지 않았다.
언론계는 1957년 독립신문 창간일인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정해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의 탄생을 기념하고 신문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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