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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지난시간여행
제목 벨, 전화기 발명&&프랑스 곤충학자 파브르&&금동용봉봉래산 향로 공개
등록일 2010. 12. 22.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2010년 12월 22일

벨, 전화기 발명

벨, 전화기 발명 내용시작1876년 2월 14일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3.3~1922.8.2)이 전화 발명 특허를 신청하자, 일라이셔 그레이는 특허권에 대한 일시정지 조치를 요청했다. 벨은 전화선을 통해 인간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전달할 때, 그레이가 먼저 발명했던 마이크로폰 타입의 부드러운 송화기를 사용했다. 그리고 그가 쓴 전자기식 금속진동판 수화기는 그 몇 달 전에 그레이에 의해 만들어져 널리 쓰이던 것이었다. 특허신청서에 적힌 내용과 다르게 벨이 그레이의 기술을 사용했다는 혐의를 받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그해 12월 22일 벨은 그레이보다 먼저 전화기를 완성했다. 그레이는 특허권을 놓고 벨과 법정투쟁을 벌였으나 패소했고, 결국 특허권은 벨에게로 돌아갔다. 벨의 전화기 발명은 오늘날의 통신 혁명을 예고하는 극적인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 곤충학자 파브르

프랑스 곤충학자 파브르 내용시작파브르는 1823년 남프랑스 상레옹 마을에서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집안사정으로 조부모의 집에 맡겨졌다. 이 조부모의 집에서는 많은 동물을 길렀는데 어린 파브르의 좋은 놀이 친구가 되었다. 동물이나 곤충에 관한 풍부한 관찰력은 이 무렵부터 자연스럽게 마음 속에서 자라난 것으로 보인다. 가난 속에서도 파브르는 열심히 공부하여 16세때 아비뇽 사범학교의 급비생 시험을 치러 1등으로 입학하였고, 아비뇽 사범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그는 카르팡트라스의 국민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러나 카르팡스트라 시의 재정이 차츰 약화되어 국민학교의 문을 닫아야 했기 때문에 코르시카 섬에 교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 그는 식물과 조개의 채집에 몰두하였다. 그 후 코르시카섬에서 열병에 걸린 파브르는 아내와 함께 프랑스로 돌아와아비뇽 중학교 교사가 되었다. 생활은 여전히 편하지는 않았지만 파브르는 학문에 정열을 결코 잃는 일이 없었다 . 실직자가 된 파브르는 어린이를 위한 과학보급서를 써서 그 인세로 생계를 꾸려나가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이름을 영원히 빛나게 한 '곤충기'의 집필도 계속하였다. 그는 20년 동안의 친구인 식물학자 드라쿠르의 도움을 받아 세리니앙에 식물과 곤충의 낙원을 세웠다. 이 낙원은 현재 프랑스의 사적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파브르의 '곤충기' 제 1권은 1879년에, 마지막 제 10권은 1907년에 출판되었다. 그것은 약 30년이나 걸린 필생의 역작이었다. 그가 '곤충의 시인'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다. 1915년 제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다음 해, 파브르는 92세의 긴 생애를 마쳤다. '곤충기'는 세계 각국어로 옮겨져 현재도 널리 애독되고 있다.

금동용봉봉래산 향로 공개

금동용봉봉래산 향로 공개 내용시작충남 부여군 능산리 고분군에서 1천4백여년전 백제 장인의 솜씨가 한껏 발휘된 국보급 금동제 향로인 금동용봉봉래산향로(일명 박산로/博山香爐)가 완벽한 모습으로 발굴됐다. 국립부여박물관이 1993년 12월 22일 공개한 이 향로는 사적 14호인 능산리 왕릉묘역에서 서쪽으로 2백m쯤 떨어진 논에서 출토되었다. 높이는 64cm에 달하는데 받침대에는 용(龍)을 조각하였고 몸체는 연꽃과 그 위에 중첩되어 있는 산으로 구성하였으며 맨 꼭대기에는 봉황이 날개를 편 형상을 취하고 있으며, 향로 뚜껑부분에는 불로장생의 신선들과 상서로운 동물들이 조각되어있어 지상의 이상향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향로에 조각되어 있는 용(음,陰)과 봉황(양,陽)은 동양의 전통사상인 음양사상이 나타나 있으며, 전체적인 구성이나 문양은 선조들의 독창성과 탁월한 예술적 감각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조각은 신선사상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며 몸체 바깥은 연꽃으로 감싸 당시 백제왕실에는 도교와 불교사상이 혼재했음을 짐작케 했다. 이 향로는 국내에서 발굴된 것 가운데 가장 크면서도 조각이 화려하고 정교할 뿐 아니라 왕실에서 사용한 것이어서 고고-미술학사상 획기적인 발굴로 백제유물 가운데 단일출토품으로는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상세정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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