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1일
국내최초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1호’발사
우리나라 첫 지구관측용 실용급 위성인 '아리랑 1호'가 1999년 12월 21일오후 4시 13분 26초(이하 한국시 각)미국 LA 인근 반덴버그공군기지에서 21세기 온국민의 꿈을 안고 성공리에 발사됐다.
아리랑 1호는 오는 2002년 말까지 3년간 고도 685㎞에서 98분 주기로 하루에 지구를 14바퀴 반을 돌며 한반도 및 해양관측, 과학실험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한국항공우주연구소와 미국 TRW사를 공동 주관기관으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과학기술원 인공위성센터와 대한항공 등 국내 7개 기업 연구진 121명이 참여, 총 개발비 2241억9000만원(정부 1999억4000만원, 민간 242억5000만원)을 투입해 개발한 아리랑 1호는 10m급 지구관측용 고해상도 카메라와 해상도 1㎞급 저해상도 카메라, 과학 실험용 이온측정기 등이 탑재되었다.
그리스도교 전도회, 구세군으로 개칭
구세군(救世軍, Salvation Army)은 1865년 7월 2일 런던에서 당시 감리교(監理敎) 목사이던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와 그의 부인 캐서린 부스(Catherine Booth)가 창시하였다.
그리스도교 전도회(Christian Mission)라는 명칭으로 서민층을 상대로 동부지역 빈민가 등을 찾아가 노방(路蒡)전도를 한데서 시작하였다.
그리스도 신앙의 전통을 따르는 교리를 가지고 선도와 교육, 가난구제, 기타 자선 및 사회사업을 통해 전인적 구원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1878년 12월 21일 '구세군'으로 개칭하였다.
조직은 군대식 제도를 모방하고 교회를 국제적인 단일조직으로 하여 부스가 초대 대장이 되었다.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 독일 역사가 랑케
새로운 연구방법과 교수법으로 서유럽 역사서술에 큰 영향을 끼친 독일의 역사기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2.21~1886.5.23).
그는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신학 및 언어학을 수학하고, 1818년 랑크푸르트안데어오데르의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 처녀작 '라틴 및 게르만 제(諸)민족의 역사 1494〜1514(1824)'를 저술하였는데, 이것이 학계에서 인정을 받아 25년 베를린대학에 초빙되었다.
그 후 이곳에서 50년에 걸쳐 강의를 담당하면서 많은 저작을 남겼다. 1841년 프로이센 국사편수관, 1859년 바이에른 학사원 사학위원회 회장 등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의 역사서술은 원사료(原史料)에 충실하면서 사실(史實)의 개성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특징으로, 그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할 것을 강조하고, 역사란 많은 사상(事象)이 상호 관련되어 발전된 그대로를 기술해야 하며, 또 각 시대에 존재하는 독자적인 개성가치를 간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주장하는 객관주의적 역사학은 현실의 철학 및 정책에서 해방시켜 역사학 독자의 연구시야를 개척하였다는 점에서 공적이 크며, 이러한 연유로 그를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 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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