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프랑스의 왕 앙리4세&&독일의 서정시인 하이네&&독일의 전기기술자 지멘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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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0. 12. 13. |
첨부파일 | 첨부파일없음 |
프랑스의 왕 앙리4세 1598년 낭트칙령을 포고하여 30년간의 종교 전쟁을 끝내고 프랑스에 새로운 번영을 가져온 앙리4세. 부르봉왕조의 시조인 앙리4세는 16세기 종교개혁의 결과로 탄생한 프로테스탄트로서 위그노전쟁에 참가하여 활약하였다. 호쾌하고 활달한 성격으로 숱한 로맨스의 주인공이었던 앙리4세는 신교도의 수장으로서 앙리3세의 죽음과 함께 왕위에 올라 부르봉왕조를 열었다. 그러나 구교도와의 갈등이 끊이질 않았고 급기야 로마를 중심으로 뭉친 신성동맹과 전쟁을 벌였다. 왕위계승을 인정하지 않는 구교도들을 힘으로 굴복시킨 앙리4세는 평화를 위하여 왕 자신이 가톨릭으로 개종함과 동시에 1598년 4월 낭트칙령에 서명함으로써 신, 구교도 모두에게 인정받으며 기나긴 프랑스 종교내란을 종식 시켰다. 전쟁을 끝낸 앙리4세는 통일된 프랑스의 재건을 위해 힘썼으며 영구적이 평화를 장착시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왕은 끝내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한 미치광이 광신도의 칼에 찔려 1610년 5월 파리의 한 거리에서 사망하였다. 프랑스 국민들은 앙리4세의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앙리대왕이라는 칭호를 주었다. 독일의 서정시인 하이네 우리에게 로렐라이라는 시로 잘 알려진 하이네는 뒤셀도르프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호였던 숙부의 도움을 받아 가업인 상업을 시작하였으나 곧 그만두고 학교에 진학하여 법학을 전공하였다. 하이네의 대학생활은 문학가로서의 자질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고 호프만, 푸케, 그라베 등과 교류하였다. 실연의 경험을 토대로 첫 시집 ‘시집(Gedichte, 1822)’을 발표하였고 이후로 수많은 희곡과 기행문등을 남겼다. 1830년 일어난 프랑스혁명에 영향을 받은 하이네는 이듬해 파리로 이주하였다. 하이네는 당시 독일의 혁명적인 젊은 시인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문학운동단체인 청년 독일파에 가담하였다. 그로인해 하이네의 책이 독일연방회의의 금서로 지정되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었고 숙부의 도움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동시대 모든 독일 시인가운데 가장 많은 논란과 엇갈린 평가를 겪어왔다. 그러나 오늘날 독일 시인 중 가장 많이 애창되는 시를 남긴 위대한 시인으로서 또는 격동의 세기를 살아온 위대한 저널리스트로서 남아있다. 독일의 전기기술자 지멘스 전기기술 성립의 역사이자 전신산업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지멘스. 프로이센 렌테 출신인 그는 전기기술자이자 공업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자연과학에 많은 흥미를 가졌던 그는 포병학교 시절 교육받은 경험을 살려 병기개량에 많은 활약을 보여 주었다. 1847년 전신기 제작, 부설 회사를 설립한 그는 러시아와 영국에서의 대규모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확고한 기반을 마련한 지멘스는 1857년 발전기의 실용화, 1867년 자동발전 원리의 발견 등 유럽 전기기술계의 중심이 되었다. 1866년 프로이센 하원의원, 1888년 귀족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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