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7일
‘동방의 등불’을 노래한 아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타고르
1913년 “기탄잘리”라는 시집을 통하여 아시아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타고르( 1861.5.7~1941.8.7 )는 근대 인도의 시인 이자 철학자, 극작가로 유명하다.
타고르는 세계 각국을 순방하면서 동서문화의 융합에 힘썼고, 캘커타 근교에 평화학당을 창설하여 교육에 헌신하였으며 벵골분할 반대투쟁 때에는 벵골 스와라지 운동의 이념적 지도자가 되는 등 독립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그가 세운 학당은 1921년에 국제적인 비스바바라티대학으로 발전하였고, 오늘날에는 인도의 국립대학이 되었다.
한국인에게는 그는 1920년 “동아일보”창간에 맞추어 기고한 [동방의 등불]이라는 시로 나라를 빼앗긴 한국민에게 큰 감동을 안겨 주어, 더욱 친근감 있는 인물로 비춰지고 있다.
고전발레 음악의 최고봉(最高峰), 차이코프스키
40여년의 세월을 창작에 전념하여 러시아 고전주의 음악의 완성을 가져온 차이코프스키(Pyotr Il'ich Tchaikovskii, 1840.5.7~1893.11.6)는 19세기 후반 러시아악파의 중요한 일익을 도맡은 인물로 평가된다.
연주 주법상 피아노/바이올린에서 대단한 진보를 보였음은 물론, 고전적인 작품과 작용 하여 그의 음악에 신선하고 쉬운 영상(影像)을 심어줌으로써 차이코프스키음악의 독특한 매력을 지탱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그의 작품에는 표제음악적(標題音樂的)인 색채가 짙다.
우리에게 친근한 그의 발레곡 '백조의 호수(1876)', '잠자는 숲 속의 미녀(1889)', '호두까기 인형(1892)'은 장대한 짜임새와 다채로운 음악으로 현대에도 갈채를 받으며 공연되고 있다.
베토벤/브람스/멘델스존과 함께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는 칭호를 받는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는 그 화려함과 애절한 멜로디로 인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19세기 최후의 고전적인 작곡가로 추앙받는 브람스
고전 형식에 신선한 예술미와 뛰어난 새로운 기교를 융합하여 절대음악에 정진한 브람스는 온후하고 독실한 인격을 지닌 작곡가였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우기 시작한 브람스는 코셀과 마르크스젠으로부터는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다.
바하와 베토벤에게서는 고전적인 형식을 이어 받았고, 바하에게서는 다성적인 요소를 배워 고금에 비할 수 없는 명작들을 남겼다.
브람스는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하여 20세 때에는 헝가리의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정치적 망명으로 독일에 있었다) 와 연주회를 가졌었다.
브람스는 레메니와 여행하면서 유명한 음악가들과 접촉할 수 있었는데 하노버에서는 오아힘을 만났고, 바이마르에서는 리스트를 방문했으나 실망했으며, 뒤셀도르프에서는 슈만과 교우를 맺었다.
슈만은 그가 발간하는 음악잡지에 브람스를 크게 소개하여 브람스의 음악적인 천분을 인정하여 결과적으로는 슈만의 가장 훌륭한 후계자가 되었다.
1860년에 그는 선배들이 활약하던 빈으로 가서 본격적으로 작곡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신고전악파"라 불리울 만큼 절대음악에 온갖 힘을 경주한 작곡가였다. 그야말로 19세기에 있어서 최후의 고전적인 작곡가로 추앙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4개의 교향곡은 그의 작품 중 가장 비중이 크다. 그 외에도 오페라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그의 가곡은 슈만의 뒤를 계승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가곡은 철두철미하게 낭만적인 작품이었다.
그는 낭만음악 시대의 인물인 만큼 기악곡에 있어서도 뼈대는 고전형식을 취했지만 낭만적인 정서가 풍부하게 깃들여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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