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여지도는 22첩으로 된 한국의 목판지도이다. 조선시대 최대, 최고의 과학적 지도로 평가되는 이 지도를 제작한 김정호는 70여 장의 목판에 새겨 22개 첩으로 만들어 펴냈다.
김정호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지리학자이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오직 지도를 만들고 지리지를 펴내는 데에만 정성을 기울였으나, 당시 개인이 지도를 만드는 것을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대동여지도는 그가 여러 해에 걸쳐 현지를 답사하고 고증을 통해 당시의 지리지를 집대성한 거작이라 할 수 있으며, 김정호는 이외에도 '청구도', '대동지지'등을 남겼다.
지도는 한반도를 북에서 남까지 동서로 끊어 22폭으로 나누어 담은 것이다.
이 지도는 각 층이 이어진 한 층의 긴 지도로 만들어 책으로 접어놓은 형식으로 각 층의 지도를 순서대로 22장을 맞추면 조선전도가 된다.
그 크기는 가로 3m, 세로 7m나 된다. 축적은 약 16만분의 1, 각 층을 척의 크기로 접은 판의 크기는 동서 80리, 남북 120리를 포괄하는 것이다.
또한 대동여지도는 한국에서 부분적으로 사용해오던 지도표를 명확하게 예시하고 도로를 나타낸 선상에 10리마다 점을 찍어 거리를 표시했으며, 지도책의 편찬목적과 지도작성의 원리를 서술한 '지도유설'이 붙어 있다.
김정호는 '지도유설'에서 먼저 중국에 있어서 지도와 지리지의 기원을 말하고 그것들이 가지는 중요성을 역사적으로 고찰하면서, 정치·경제·국방·학문연구의 모든 분야에서 지도와 지리지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그 편찬목적을 밝히고 지도제작에 있어 정확한 측정원리를 제시하였다. 대동여지도를 볼 때 먼저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은 그것이 묘사한 해안선과 지형의 정확성이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축소하여 하나로 만든 축적 90만분의 1의 대동여지전도 목판으로 인쇄하여 펴냈다. 대동여지도는 철종 12년(1861)에 처음 찍어낸 뒤 고종 1년(1864)에 다시금 재판되었다.
초판과 재판의 간행부수는 확실하지 않으나 전본은 5∼6부에 이른다.
대동여지도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가장 정확하고 정밀한 최대의 과학적 실측지도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문화유산채널, 한국문화재재단(22개의 책에 거대한 조선을 담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