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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화로 보는 우편 130년

일화로 보는 우편 130년 콘텐츠는 한국 우편에 대한 역사를 소소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일화로 보는 우편 130년
제목 우정총국 청사의 주인은 어떻게 바뀌었나(2)
등록일 2014. 3. 6.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1961년 5월 5ㆍ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군사정부가 들어섰다. 자유당 시절 체신부차관을 지낸 바 있는
최재호는 장관 고문에 이어 차관으로 발탁되면서 다시 체신사업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우정총국 건물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궁금해 장관 배덕진을 모시고 찾아갔다. 관리자가 주택 삼아 살고 있을 뿐 방치
되어 있었다. 건물과 담은 오히려 더 헐어 있었다.
최재호는 장관에게 그 건물을 확보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그것을 활용할 방책을 강구하자고 건의했다.
배덕진은 그 말에 공감했으나, 혁명정부가 안고 있는 과제가 산적해 있었기에 뒷날로 미루었다. 최재호는
우선 그 건물을 국보로 지정받는 것이 시급한 일이라 판단하고, 1962년 여름 문교부에 국보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문화재관리위원회에서 심의했으나 원형이 변형되었음을 이유로 부결되었다. 문교부
차관 윤태림이 격을 낮추어 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받으라고 권했다. 그러나 건물을 활용할, 마땅한 방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뒷날로 미루고 말았다.
1963년 7월 체신부는 그 건물을 체신문화협회에 무상으로 임대했다. 체신문화협회는 체신부 기관지인
‘체신문화’를 발간하기 위해 설립한 단체였는데, 1946년 10월 창간호를 발간한 뒤 월간이네 계간이네
하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2~3개월에 한 호씩 잡지를 내놓았다. 독자인 체신공무원들로부터 회비를
받아 운영했으나, 회비가 너무 저렴한 탓에 적자 운영을 면할 수 없었다. 체신부의 재정 지원이 불가피한
이유였다. 그렇게 볼 때, 우정총국 청사는 체신문화협회 사무실로 안성맞춤인 셈이었다.
1970년 4월 체신문화협회가 해산되면서 ‘체신문화’지는 통권 161호로 막을 내리고, 발행처가 재단법인
체성회로 이관되었다. 그때 잡지의 제호가 ‘체신’으로 바뀌었다. 아무튼 체신문화협회가 해산되면서
우정총국 건물은 주인을 잃게 되었다.
다시 빈 집이 되자, 체신부는 이 건물을 문화재로 보존하기로 하고 문화공보부에 문화재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 해 10월 문화공보부는 이 건물을 사적 제213호로 지정해 주었다.
사적 문화재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체신부는 그 건물에 각종 사료를 전시하여 기념관으로 보존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건물 주변에 있는 자투리 땅 2필지 28.6평을 매입하여 경내를 확장하고 건물을 중수하는
한편, 체신 관련 사료들을 전시하여 ‘체신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1972년 12월 4일의 일이었다.
유실되었던 ‘우정총국(郵征總局)’의 현판은 대통령 박정희의 글씨로 새겨 복원했다.
2012년 8월 28일 체신기념관이 우정총국우체국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개관 당시의 전시품은 인장, 훈장, 표구, 간판, 고문서 등 문화재 237점과 문위우표 등 우표 1111종
이었다. 그곳에 전시된 문화재는 1966년에 체결된 한일문화협정에 의해 일본에서 반환받은 문화재와
1964년 초대 통신원 총판 민상호의 손자 민경식이 기증한 민상호 유품이 주종을 이루었다. 그 중에는
한일문화협정에 의해 일본에서 반환받은 태극기도 들어 있었다. 한일문화협정으로 체신부가 일본에서
돌려받은 태극기는 두 점이었는데, 그 중 하나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고 하나는 체신기념관에
전시했던 것이다. 그들 태극기는 1900년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의 통신기관인 통신원과 우체사에서
사용하던 것을 일본에서 가져갔기에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것이 통신원에서 사용한
것이며, 언제 일본으로 건너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체신기념관 개관을 계기로 체신부는 체신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는 사료들을 연중무휴로 전시함으로써
체신사업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이해를 높이는 작업을 계속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는 체신문화재를 발굴하는 작업을 동시에 전개하기로 했다. 또한 각종 기념우표와 특수 우표류를 판매
하는 작업도 병행하기로 했다.
체신문화재 발굴 작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사업의 하나가 집배원 이시중의 순직비 이전이었다. 1973년
3월 체신부는 전주우체국 후정에 세워져 있는 집배원 이시중의 순직비를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
체신기념관으로 옮겼는데, 그 같은 조치를 취한 사람은 장관 신상철이었다.
그 해 초, 현업관서 시찰에 나선 장관 신상철이 전주우체국을 순시하다 일제시대 장마철에 순직한 집배원
이시중의 순직비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아름다운 이야기에 감동한 신상철은 이시중의 유족을 찾아
도와주도록 지시하는 한편, 비석을 체신기념관으로 옮기도록 했다. 이시중의 순직 정신을 단순히 전주
우체국 직원들의 사표로 삼는 데 그치지 말고 전국 우체국 직원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는 뜻에서였다.
마침 체신기념관을 개관한 지 얼마 안 된 데다 체신문화재를 널리 발굴하고 있는 중이어서 추모비를
모시기에도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이시중 순직비는 1973년 3월 그렇게 체신기념관으로 옮겨졌는데,
2011년 3월 천안에 있는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에 순직 우정인을 위한 추모공원이 세워지면서 다시 그
곳으로 이전되었다.
2012년 8월 우정사업본부는 체신기념관의 명칭을 ‘우정총국우체국’으로 바꾸고 우체국 업무를 취급하도
록 했다. 우체국 업무라 해서 일반 우체국에서 취급하는, 모든 우체국 업무를 취급할 수는 없었다. 우표와
엽서를 판매하고 우편물을 접수하는 기본적인 업무만을 취급했다. 우편물 접수도 10통 이하로 제한했다.
물량이 많은 다량우편물은 접수하지 않았다. 또한 우편물의 집배 업무나 예금 업무도 취급하지 않았다.
그처럼 우체국 업무를 제한적으로 취급하게 된 것은 장소가 협소하기 때문이었다. 체신 사료의 전시는
그대로 하면서 전시장의 한쪽 구석에 우체국 창구를 마련했기에 장소가 비좁았다. 따라서 기본적인 우편
업무 외에 다른 업무를 취급할 공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8월 28일 우정총국우체국을 개국한 당일에는 탤런트 손현주를 명예 우정총판에,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기보배를 1일 명예우체국장으로 위촉했다. 명예 우체국장 기보배는 한복에 족두리를
쓰고 우체국장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많은 고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체신기념관에서 우체국 업무를 취급한다는 데 대한 반대 여론도 없지 않았다. 일반인의 출입이 잦을 경우
자칫 문화재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따라서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라는 과정을 거쳐 결정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큰 반대가 없었던 것이다.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양궁선수 기보배가 1일명예우정총국우체국장으로 위촉되어 국장 업무를 수행했다.
체신기념관을 우체국으로 개조하여 기본적인 우편 업무를 취급하도록 한다는 것은 지식경제부장관
홍석우의 아이디어였다. 그곳에서 우체국 업무를 취급함으로써 명동과 인사동, 그리고 우정총국을
연계한 우정 한류 벨트를 조성하여 내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만들겠다는 포부에서였다. 요즘
중국인이나 일본인 등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서울의 명소가 명동과 인사동이며, 그들이 인사동에서
바로 큰길 건너편에 있는 우정총국에 들러 한국 최초의 우체국을 구경하며 그 자리에서 편지를 써서
부치도록 한다는 게 의미 있는 일이 아니냐는 생각에서 그 같은 발상을 했던 것이다. 또한 일반인들이
그곳을 자주 찾고 우편의 역사를 이해함으로써 우편과 보다 친근해질 수 있도록 한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었다.
우정총국우체국 개국 행사는 서울중앙우체국 건물인 포스트타워 대회의실에서 개최되었다. 우정총국
건물을 제쳐두고 포스트타워에서 기념식을 거행한 까닭은 태풍 때문이었다. 기념식을 전후해 연일 대형
태풍이 몰려 왔기에 하는 수 없이 실내에서 행사를 거행했던 것이다. 130여 년 전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
에서 갑신정변이 발발했듯, 개국 행사에서도 이변이 일었으니 그곳도 웬만큼 드센 터가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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