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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화로 보는 우편 130년

일화로 보는 우편 130년 콘텐츠는 한국 우편에 대한 역사를 소소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일화로 보는 우편 130년
제목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발행된 나만의 우표
등록일 2015. 5. 19.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발행된나만의 우표

  2002년 5월 우정국 우표실장 오충근은 ‘나만의우표’를 발행하여 우정 세입을 올린 공로로 기획예산처장관으로부터 3000만 원의 상금을 받았다. 당시 국가의 예산 편성 및 집행 업무를 맡고 있던 기획예산처는 공무원의 사기 앙양을 위해 매년 각 부처에서 세입을 많이 올리거나 세출을 절감하는데 공헌한 공무원에게 상금을 주었는데, 정보통신부에서는 우표실장 오충근이 나만의우표제도를 실시하여 세입을 증대한 공로로 상금을 받았던 것이다.
  2001년은 나만의우표를 발행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우표 발행의 역사에서 특기할 만한 해였다. 나만의우표는 이름 없는 개인의 사진을 도안의 소재로 삼아 발행한 새로운 개념의 우표였다. 그때까지 발행된 우표는 국가적으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역사적인 인물을 도안의 소재로 삼았다. 따라서 이렇다 할 업적을 쌓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 우표에 등장하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나만의우표라는 제도가 실시되면서 국가나 사회에 기여한 바 없는 보통사람도 우표의 주인공으로 대접받을 수 있게 되었다. 국민 개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민주주의 사회가 활짝 꽃피면서 우표의 개념이 달라졌던 것이다.
  나만의우표는 고객의 주문을 받아 고객이 원하는 양만큼 발행했다. 따라서 고객이 제공하는 사진이나 로고 따위를 우표 도안의 소재로 삼았다. 그처럼 주문자의 개인적인 취향을 담은 사진을 도안의 소재로 삼았기에 우표는 전량 주문자가 구입했다.

  
호주의 제도를 본받아 나만의우표 발행을 추진하다

  우정국 우표실에 나만의우표에 관한 정보를 맨 처음 제공한 사람은 호주에 유학 중인 사무관 정지찬이었다. 1999년 2월 호주에 유학해 호주우정공사에서 1년 동안 직무연수 과정을 밟고 있던 정지찬은 그 나라에서 그 해 3월부터 서비스하기 시작한 나만의우표(personalised stamp)를 보고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발행된 적이 없는 나만의우표를 보는 순간 평등을 당연시하고 개성을 중시하는 대중화시대에 딱 들어맞는 우표라 판단하고 우리나라에서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우정국 우표실로 보냈다.

1999년 3월 사무관 정지찬이 호주에서 자신의 사진으로 만든 나만의 우표

보다 실감나는 자료를 만들기 위해 그 나라에서 개최한 세계우표전시회 현장에서 자신을 모델로 하여 찍은 사진으로 나만의우표를 만들어 첨부했다.
정지찬이 보낸 자료는 우표실장 이성식과 발행계장 오충근에게 전달되었다. 그들은 그 내용을 우정국 간부들에게 보고하는 한편, 호주우정공사와 연락해 구체적인 자료를 입수하며 나만의우표 발행에 관한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주위에서는 신기한 우표라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나만의우표를 발행함에 있어서는 결정적인 흠이 있었다. 우표란 어느 개인의 전유물이 될 수 없는데, 이렇다 할 특징도 없는 개인의 사진을 넣어 만든 우표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일부 우표수집가들이 그처럼 원론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며 강하게 반대했다. 자칫 기업의 광고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우표실 간부들은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뭉그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해가 바뀌어 2000년이 열리면서 우표실 간부들이 교체되었다. 우표실장 김익환과 우표발행계장 박인환이 그 업무를 이어받았다.
  ‘뉴 밀레니엄(New Millennium)’이라는 말로 칭송하던 2000년은 우리나라 우정 116년의 역사에서 특별한 해였다. 오랜 기간 정부가 직접 운영하던 우정사업을 우정사업본부라는 독립기관으로 하여금 독자적으로 운영하도록 하는 경영체제의 변화가 있었다. 그처럼 우정사업본부가 우정사업을 전담하는 기구로 발족함에 따라 우정사업을 보다 자율적이고 탄력성 있게 운영하게 되었다.
  2000년 7월 1일 우정사업본부가 출범하자, 본부장 이교용이 각 부서에 새로이 추진할 사업계획을 수립하여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때 우표실에서 신규사업으로 내놓은 안건이 나만의우표의 발행이었다. 본부장에게 보고한 사항이었기에 나만의우표는 새롭게 출범하는 우정사업본부의 신규사업으로 그 명단을 올리게 되었는데, 그때 그 업무를 담당한 사람이 사무관 박인환이었다.

호주의 제도를 본받아 나만의우표 발행을 추진하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우정개발과에서 신규사업의 개발 업무를 맡고 있던 박인환은 우표실로 자리를 옮기자 나만의우표 발행 문제를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나만의우표라는 제도를 실시하는 데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째, 우표는 국가의 상징인데 아무런 공로도 없는 평범한 사람의 얼굴을 우표에 넣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우표수집가들의 의견을 들어봐도 반대하는 편이 훨씬 많았다. 둘째, 나만의우표의 경우 호주우정공사가 우리나라 특허청에 특허출원 신청을 했기에 섣불리 발행할 수 없었다. 자칫하면 국가가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어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허변리사를 찾아가 나만의우표 발행으로 호주우정공사와 특허 문제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며 상의했다. 변리사는 호주우정공사에서 소송을 제기한다 해서 그들이 무조건 승소하는 것은 아니며, 한국 특허청이 그것이 보호받아야 할 권리인지의 여부를 판정하는 것은 별개문제라고 했다. 따라서 호주우정공사가 가지고 있는 특허권이 반드시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아님을 입증하는 자료를 확보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만의우표라는 색다른 우표를 만들기 위해 준비 작업을 서두르고 있는 또 하나의 회사는 우표 인쇄업무를 맡고 있는 한국조폐공사였다. 나만의우표는 일반 우표에 고객이 원하는 사진을 첨가해야 하기에 특수한 인쇄 기술과 촬영 장비가 필요했다. 때문에 조폐공사 우표인쇄팀은 디지털 카메라와 사진출력기 등 특수 장비를 갖추고 나만의우표 제작에 대비했다. 이에 앞서 1999년 10월 조폐공사 사진제판부장 주도식은 ‘주문형 개인우표 제작 방법’이라는 제목의 특허출원을 신청하여 경쟁업체의 등장에 대비하고자 했다.
    수개월에 걸친 검토 끝에 박인환은 나만의우표의 발행을 추진하기로 하고, 1단계 작업으로 한국조폐공사의 협조를 얻어 우표전시장에서 시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기로 했다. 특허 문제는 호주와는 인쇄 방식을 달리 하기로 했기에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하여 2000년 8월 2일 한국종합전시장(KOEX)에서 개최한 대한민국 우표전시회에서 보통우표 전지의 우측 여백에 개인의 사진을 컬러복사기로 인쇄한 나만의우표를 선보였다. 우표전시장에 인쇄 장비를 갖추어 놓고 그 자리에서 주문형 우표를 만들어 판매했다. 우표 제작에 필요한 사진은 신청자가 가져온 사진이나 그 자리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을 사용했다. 당시 나만의우표 제작용으로 사용한 우표는 멸종위기종 새인 알락꼬리마도요를 도안으로 한 보통우표였다. 그처럼 나만의우표는 이미 인쇄되어 있는 보통우표에 개인의 사진을 컬러복사기로 덧씌우는 방식으로 인쇄했다. 당시는 ‘나만의우표’ 대신 ‘주문형 우표’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나만의우표 코너에 몰려든 관객들

  나만의우표를 구경한 관객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평범한 사람들의 사진이 우표 속에 담겨진 모습이 신기했던지 많은 관객들이 긴 줄을 만들며 나만의우표를 신청했다. 그 모습을 보자 박인환은 나만의우표를 발행해도 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고객들의 반응을 통해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타진했기에 계획대로 프로젝트를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그리하여 주문형 우표 발행의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인쇄 방식, 판촉 방안 등을 검토하며 착실히 준비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그러는 동안 또다시 인사이동이 있어 우표실의 주인이 바뀌었다. 이듬해 2월 실장 오충근, 발행계장 김재홍 팀이 그 업무를 이어 받았다. 오랫동안 준비한 프로젝트인 데다 인기를 끌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업무 추진력이 강한 오충근은 곧바로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2001년 4월 30일 서울중앙우체국에서 많은 시민이 모인 가운데 우정사업본부장 이교용이 탤런트 김지호와 함께 테이프 커팅을 함으로써 주문형 우표의 발매 서비스를 개시했다.

(재) 체성회와 한국조폐공사가 나누어 제작하다

  우리나라 우표의 인쇄는 1952년 9월 제2대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를 발행한 이래 한국조폐공사가 단독으로 맡았다. 오랜 기간 한 회사가 독점적으로 맡다 보니 인쇄 단가가 높고 인쇄 품질이 저하되는 등 몇 가지 폐단이 있었다. 게다가 노조의 파업으로 우표를 적기에 공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1999년에는 그라비어인쇄기를 도입하면서 인쇄 단가가 더욱 높아졌다. 그 같은 문제점이 누적되자 우정사업본부는 우표 인쇄에도 경쟁을 도입하기로 했는데, 때마침 나만의우표 제작 문제가 대두되었던 것이다.
  정보통신부는 관련 규정을 개정하여 우편엽서 등을 인쇄하고 있는 재단법인 체성회도 우표 인쇄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으나, 체성회에서 우표 인쇄에 참여하지 않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그런데 나만의우표의 발행 문제가 대두되자 체성회가 참여 의지를 밝히면서 한국조폐공사와 경쟁하게 되었다.
  “한국조폐공사가 우표 인쇄를 전담함에 따른 폐해가 컸기 때문에 관련 규정을 개정해 체성회도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 놨는데, 체성회장이 참여하지 않겠다며 사양하는 바람에 성사되지 않았어요. 우표 인쇄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려면 엄청난 시설투자비가 소요되는데, 투자비에 비해 남는 게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만의우표만큼은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인쇄업무를 조폐공사와 분담해 맡겼던 거죠.” 우정국 우표실의 실무자 백용운의 말이었다.
  나만의우표의 제작 업무는 그처럼 이원화되어 우표 원본의 인쇄는 한국조폐공사가 맡고, 원본 우표에 주문자가 제공하는 사진을 첨부하여 실제로 나만의우표를 제작하는 작업은 체성회가 맡도록 했다. 우표 원본에 고객의 사진을 넣는 2차 제작의 경우 전지 5만 매 이상의 다량 인쇄는 한국조폐공사가 맡고, 그 이하인 우표는 체성회가 맡도록 했다.
  나만의우표는 전국 3000여개 우체국에서 주문을 받았다. 주문자가 우체국을 찾아가 나만의우표의 발행을 신청하면, 우체국에서는 주문자가 제공하는 사진이나 로고 등의 자료를 봉투에 담아 제작회사인 체성회로 보냈다. 한국조폐공사는 5만 매 이상인 다량 우표의 인쇄만을 맡기로 했기에 개인이 신청하는 나만의우표는 대부분 체성회에서 제작했다.

알락꼬리마도요를 도안으로 한 나만의우표

  전국 우체국에서 보낸 사진을 접수한 체성회는 그것을 스캔하여 디지털 파일로 변환한 뒤, 고속 프린터기로 인쇄하여 나만의우표를 완성했다. 그처럼 우표의 인쇄 방식이 기존 우표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는 나만의우표를 ‘IT 기술을 활용한 신 개념의 우표’라고 자랑했던 것이다. 고객이 원할 경우 사진을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하여 사용하기도 했는데, 촬영 장소는 서울중앙우체국이었다.
  고객이 선호하는 나만의우표의 소재로 초기에는 아이들의 사진이 많이 이용되었다. 많은 고객이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을 우표 속에 담아 기념하고 싶어했다. 결혼사진도 못지않게 선호하는 대상이었다. 나만의우표가 널리 보급되면서 활용 범위가 넓어졌다. 어 떤 가족은 이미 고인이 된 할아버지를 비롯한 온 가족의 사진을 한데 모아 가족 사진첩을 만들었다. 어떤 화가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모아 우표 전지 한 장에 담기도 했다.
  나만의우표의 이용자는 대부분 이름 없는 보통사람이었다. 기업이 발행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인기를 생명으로 하는 연예인도 기대한 만큼 많지 않았다. 그렇게 본다면 나만의우표가 개성을 중시하는 대중화시대에 맞는 우표라는 원래의 취지에 부합한 우표로 발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표수집가들은 나만의우표를 평가절하했다. 이름도 없는 사람의 사진을 넣어 만든 우표가 어떻게 진정한 의미의 우표가 될 수 있느냐며 처음부터 반대했고, 아직도 그 같은 우표의 발행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일부 우표수집가의 의견이다.

대박이 쪽박으로 변하다

  첫해의 나만의우표사업은 속된 말로 대박이었다. 전국 3000여개 우체국을 통해 주문이 쏟아져 들어왔다. 제작 업무를 담당한 체성회는 맞춤우표팀이라는 부서를 신설해 그 업무를 전담시켰는데 폭주하는 업무를 처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때는 정규 직원 13명으로 부족해 비정규 직원을 86명까지 늘리기도 했다. 그래도 일손이 부족하자, 퇴근시간이면 다른 부서의 직원을 전원 집합시켜 맞춤우표팀의 업무를 돕도록 했다.
  그만큼 나만의우표 제작에는 잔손질이 많이 소요되었다. 주문자가 보낸 자료가 들어 있는 행낭을 풀어 그 속에 들어 있는 봉투들을 꺼내고, 코드번호를 입력하고, 각각의 봉투를 뜯어 사진과 주문서를 정리하고, 사진을 스캔하여 디지털 파일로 만들고, 각각의 사진을 주문자가 원하는 칸에 넣어 고속 프린터기로 인쇄하고, 완성된 나만의우표를 주문자에게 등기우편으로 보내는 작업을 매 건마다 되풀이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면 밤샘작업을 하기 일쑤였다.
  스마트폰이 발달하지 못한 초기에는 대부분의 사진 자료가 오프라인으로 보내지기 때문에 그들 사진을 디지털 파일로 만드는데 많은 일손이 필요했다.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찍어 파일로 보내므로 작업 공정이 대폭 간소화되었다.
  그처럼 주문이 몰려들자 나만의우표에 대한 사업 전망은 장밋빛 일색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쇄도하자 대박을 칠 것으로 예상했다. 주문 기간이 8개월에 불과한 2001년 한 해 동안에 체성회가 올린 매출액이 26억 8600만 원이었다. 개인이 흔히 주문하는 전지 한 장의 판매가가 7000원에 불과했는데, 그러한 돈이 쌓이고 쌓여 그 많은 액수가 되었으니 부푼 꿈에 젖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이대로만 간다면 빌딩 한 채 사는 것은 시간문제라 생각했어요. 전국 3000개 우체국에서 하루에 1건씩만 접수해도 3000건이요 10건씩 접수하면 3만 건이 되기에 그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 생각했던 거죠.”
  체성회 맞춤우표팀 실무자 방형수의 말이었다.
  그러나 그 같은 장밋빛 예상은 환상에 불과했다. 이듬해에는 주문이 급감했다. 첫해에 26억 원을 상회하던 체성회의 매출액이 이듬해인 2002년에는 7억 9800만 원으로 70%나 뚝 떨어졌다. 다음해에는 15억 2000만 원으로 2배 가까이 올라갔는데, 이는 나만의우표 판매 실적을 우체국 경영평가에 반영한 결과였다. 그 뒤 2006년에는 다시 9억 6000만 원으로 떨어졌는데, 10여년이 지난 현재는 연간 3~4억 원 수준을 맴돌고 있다.
  나만의우표의 주문이 그처럼 급감한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우체국의 경영평가에서 가점을 주지 않은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라 생각합니다. 나만의 우표의 실질적인 판촉 활동은 우체국 직원이 했으며, 그들이 실적을 올리면 우체국의 경영평가를 할 때 가점을 주어야 하는데, 그와 같은 인센티브가 없자 열기가 식어 버렸던 거죠.”
  나만의우표에는 액면이 붙어 있어 우편물 발송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주문자는 그 우표를 우편용으로 사용하지 않고 책상이나 서랍에 보관해 두었다. 인기를 생명으로 삼는 연예인의 경우 우표가 발행되는 대로 사용했으나, 인기와 상관없는 보통사람은 대부분 그 우표를 보관용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일수록 다시 나만의우표를 만들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나만의우표의 발행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이유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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