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화된 명칭은 아니지만 '공동우표'라는 것이 있다. 두 나라가 똑같은 디자인을 가지고 동시에 발행하는 우표를 공동우표라 한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공동발행우표'라 하겠다. 어느 한 나라의 우표를 가지고 두 나라가 동시에 발행할 수 없기에 같은 테마로 선정한 두 나라의 각기 다른 우표를 하나로 묶어 발행하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동우표는 2002년 11월 20일에 발행한 '한ㆍ중 국민교류의 해 기념우표'였다. 이 우표는 한국의 국기인 태권도와 중국의 국기인 우슈(武術)를 도안으로 하여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발행하여 화제가 되었다. 그 우표를 발행한 뒤 우리나라는 이따금 다른 나라와 공동우표를 발행했는데, 주로 그들 나라와의 수교를 기념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2009년 6월 12일에는 한국과 몽골, 카자흐스탄 세 나라가 동시에 공동우표를 발행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두 나라가 하나의 디자인을 가지고 동시에 발행하는 것을 공동우표라 한다면 한국은 이전에도 공동우표를 발행한 적이 있었다. 1999년 8월 12일에 발행한 괴테 탄생 250주년 기념우표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 우표는 세계적인 문호인 괴테 탄생 250주년을 맞아 독일에서 디자인한 괴테의 초상화를 독일과 함께 발행했으므로 공동우표임에는 틀림없으나, 두 나라가 동시에 발행하면서 단일 소재의 디자인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공동우표라 하긴 어렵다.
중국과의 공동우표의 발행은 중국의 제의로 시작되었다. 그 우표를 발행한 2002년은 우리나라가 중국과 수교한 지 10년이 되는 해였다. 수교 이후 한국과 중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관광 등 각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관계 개선을 이룩했기에 수교 10주년을 맞아 두 나라는 2002년을 '한ㆍ중 국민 교류의 해'로 정하고 양국 국민간의 교류를 보다 활발히 전개하기로 했던 바, 그 행사의 일환으로 공동우표를 발행했던 것이다.
공동우표를 발행하자는 중국의 제의는 외교통상부를 통해 우정사업본부에 전달되었다. 그 동안 중국은 여러 나라와 공동우표를 발행한 경험이 있어 한ㆍ중 수교 10주년을 맞아 자연스럽게 그런 제의를 해 왔다. 우정사업본부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디자인의 소재를 무엇으로 할 것이냐를 검토한 끝에 건축, 전통 문화, 스포츠 등 몇 개 분야에서 소재를 선정하여 중국으로 보냈다.
2002년 1월 중국 우정국 발행처부처장 판윈차오 등 실무자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공동우표의 발행 방안을 논의했다. 한국 측에서는 우표실장 오충근, 우표디자인실장 이기석 등이 참석했다. 양국 대표 간에 논의해야 할 사항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표 디자인의 소재를 무엇으로 할 것이냐였는데, 한국 측의 제의로 한국의 태권도와 중국의 우슈로 낙착되었다.
그 해 1월 30일 대한민국 우정사업본부 우표실장 오충근과 중화인민공화국 우정국 발행처부처장 판윈차오가 공동우표 발행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그 협정에 따라 양국은 우표 초고를 2매씩 디자인하여 5월 15일경 베이징에서 만나 심사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제출한 초고 중 1매와 중국에서 제출한 초고 중 1매를 선정하고, 양국 디자이너 중에서 1명씩을 뽑아 선정된 초고를 수정하기로 했다. 수정 디자이너는 원 디자인의 의도를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초고를 수정하여 우표 원도를 완성한 뒤 CD와 컬러 사진으로 복제하여 상대국으로 보내기로 했다. 그리하여 그 중에서 잘된 작품 하나를 골라 우표 원도를 확정하기로 했다.
중국과 디자인을 놓고 경쟁해야 하기에 우표디자인실은 바짝 긴장했다. 디자인의 소재가 스포츠이고 스포츠 동작에 맞는 그림을 그려야 하기에 원화를 그리는 작업은 일러스트레이션 작가 김동성에게 맡겼다. 국기원에서 얻은 태권도 관련 자료와 중국에서 보낸 우슈 관련 자료를 제공하며 소신껏 그리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원화를 우표의 크기에 맞추어 재구성하는 작업은 우표디자인실장 이기석이 맡았다.
우표 원도를 선정하는 과정은 협정서의 내용처럼 복잡하지 않았다. 디자인이 완성되자 양국 실무자들은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잘된 작품을 고르는 작업을 했다. 한국 측에서는 우표발행계장 김재홍과 우표디자인실장 이기석이 참석했다. 한국 측은 약속한 대로 2종의 원도를 준비했는데, 중국 측에서는 6종이나 되는 원도를 내놓았다. 한국 작품은 전통화 기법으로 작성된 것임에 비해 중국 작품은 만화 형식으로 작성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었다.
드디어 양국에서 내놓은 작품 가운데 하나를 선정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양국 실무자들이 마주보고 앉아 있는 회의장에 침묵이 흘렀다. 잠시 뒤 중국 측의 발행 담당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양국의 원도를 비교해 보니 디자인이 너무 훌륭해 우열을 가리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슈의 역동적인 동작이 중국 작품보다 한국 작품이 더 생동감 있게 표현된 것 같습니다. 표현기법이 양국의 정서와 잘 맞기도 하구요. 따라서 공동우표의 디자인으로는 한국 작품을 채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우슈와 태권도의 배경 디자인은 중국 측에서 새롭게 진행하여 공동우표의 발행과 디자인 의의를 극대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조선족 통역이 중국 대표의 말을 우리말로 옮겼다.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우표디자인실장 이기석은 즉석에서 좋다고 찬성했다.
중국과의 디자인 경쟁에서 승리한 것은 우표디자이너 이기석에게 매우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타국의 작품을 선뜻 받아들이는 중국인의 아량에 내심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양국 작품의 장단점에 대해 한동안 갑론을박하다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런 과정을 생략한 채 대뜸 양보하는 모습을 보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은 반드시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인데, 상대방이 그처럼 디자인의 장단점을 지적하며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자 부끄럽기까지 했다. 실제로 중국 측의 디자인이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중국 대표들은 그 동안 다른 나라와 여러 차례 공동우표를 발행한 경험이 있어 선뜻 양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중국으로 떠나기에 앞서 한국 대표들은 우편사업단장 이재륜에게 출국 인사를 했다.
"이번에 중국하고 디자인 경쟁을 하게 되었는데, 중국을 이길 수 있겠어요?"
이재륜이 웃는 얼굴로 디자인에 관심을 보였다.
"그럼요, 우리 디자인이 반드시 선정되도록 하겠습니다."
이기석은 자신있게 대답했다. 괜히 호기를 부린 것이 아니었다. 태권도와 우슈의 경기 동작이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디자이너로서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동우표는 똑같이 디자인한 우표를 양국에서 각기 인쇄하여 발행했다. 인쇄 방식은 같은 그라비어인쇄였기에 큰 차이가 날 수 없었으나, 인쇄술에는 차이가 날 수 있어 우표 디자인에 이어 우표 인쇄에서 두 번째 경쟁이 불가피했다. 일반인이 보기에 양국에서 인쇄한 공동우표에는 큰 차이가 나지 않았으나, 전문가의 눈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한국 우표는 그라비어의 특징을 최대한 살려 농담이 짙게 인쇄되었다면 중국 우표는 육안으로도 쉽게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색감의 풍부함이 미흡했다. 그만큼 한국 우표의 색상 표현이 돋보였던 것이다.
공동우표를 발행할 때마다 중국에서는 그 의미에 맞는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그 때 상대국 관원을 초청하고, 중국 관원을 상대국의 기념행사에 파견했다. 공동우표의 발행이 상대국과의 우호를 증진하고 문화를 교류하자는데 있기에 의미 있는 행사라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우표를 발행할 때 기념행사를 갖지 않기에 약식으로 처리했다.
공동우표는 그 뒤 1년에 한두 차례 발행되었다. 주로 다른 나라와의 수교 기념으로 발행했기에 건너뛰는 해도 있었다. 그 때부터 2014년까지 우리나라와 공동우표를 발행한 나라는 베트남, 인도, 태국, 필리핀, 페루, 브라질, 포르투갈, 독일, 호주 등 21개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