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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지난 시간여행
제목 시간여행 제126호
등록일 2009. 7. 31.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필라코리아 2009 제24회 아시아국제우표전시회 개막 상세정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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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시작필라코리아 2009 제24회 아시아국제우표전시회가 7월 30일 오전 11시 화려한 식전공연과 함께 그 성대한 막을 올렸다. MBC 오상진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개막식은 한국의 전통악기와 다양한 서양악기가 접목된 퓨전국악오케스트라

를 준비하여 생동감과 활력이 넘치는 무대연출을 선보여 전시회를 축제의 분위기로 고조시켰다. 개막식은 지식경제부 임채민 차관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조직위원장(남궁 민 우정사업본부장)의 환영사, 수라짓 공바타나 FIAP회장의 축사와 테

이프 커팅, 전시장 관람 순으로 진행되었다. 7월 30일 저녁 7시 본부 호텔인 르네상스서울호텔에서 FIAP 회장단, 작품 수집·심사위원, 조직·집행위원회 위원, 국내외 우표상 및 동반자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 만찬을 개최하였다.

사회
독립기념관 화재

내용시작1986년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던 독립기념관에 대형 화재가 발생하였다. 한 무자격 전공의 실수로 일어난 이날 화재는 국민의 성금으로 지어진 겨레의 전당이라는 의미에 찬물을 끼얹진 사건이었다. 당초 독립기념관은 이듬해인 1987년 광복절에 개관 예정이었으나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와 당시 정권의 과

시욕이 맞물려 예정된 공기를 앞당기는 무리한 공사 끝에 어이없는 실수로 온 국민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안겨주었다. 그날의 화재로 인하여 결국 개관은 1년 연기되었고 보다 완벽한 복구ㆍ보완공사를 거쳐 드디어 예정된 개관일인 1987년 8월15일 준공ㆍ개관하게 되었다 상세정보보기

독립기념관 개관기념 상세정보보기

93대전엑스포 개막

대전엑스포 '93 BIE공인기념 상세정보보기

내용시작1893년 미국에서 열린 시카고 엑스포에 도자기, 갑옷 등을 8칸 기와집에 전시하여 참가한 이래 100년 만에 개발도상국에서는 처음으로 국제박람회기구(BIE)의 공인을 얻어 '새로운 도약에의 길'이란 주제와 '전통기술과 현대과학의 조화' 및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재활용'이란 부제로 1993. 8. 7∼11. 7까지 93일간 대전세계박람회가 개최되었다. 8월 6일 개막식과 더불어 7일부터 일반에게 공개되었으며, 전 세계 100여개 국가와 20여개 국제기구 및 연구소, 그리고 각국의 우량기업들이 참가하여 그들의 독자적인 전통기술과 문화를 전시하고 첨단과학기술과 산업사회의 부산물인 공해, 환경오염 등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였다. 엑스포는 한 시대가 달성한 성과를 확인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무대로 일반 상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무역전시회와는 달리 경제, 과학, 문화의 올림픽으로 불리며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발판으로 평가되는 세계인의 축제이다.

황영조 올림픽 마라톤 우승

내용시작8월 9일, 황영조선수가 일본선수를 앞지르고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서 높이 치켜든 두 팔은, 그동안 쌓였던 민족의 한을 말끔히 씻어냈으며, 동양인이 차지한 두 번의 월계관을 모두 한국인이 쓰게 됨으로서 민족의 자긍심을 한껏 높여 주었다. 또한 이 사실은, 동ㆍ서양의 문화교류지인 지중해연안의 카탈로냐에서, 그리고 종교나 인종의 차이를 초월한 올림픽에서 이루어졌기에 더욱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우리 한민족은, 1896년 인류의 화합을 위한 근대올림픽이 시작된 이래 국제정치의 조류에 따라 한때는 동서 이념대결의 장이 되기도 했던 인류의 대제전을,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화합의 장으로 전화시켰고,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그 시작과 끝을 사격의 우승과 무궁화 민족의 끈기를 입증하는 마라톤의 우승으로 장식함으로써 통일을 향한 우리의 자신감을 더해 주었다

올림픽대회 마라톤 제패기념 상세정보보기

손기정 올림픽 마라톤 우승

올림픽대회 마라톤 제패기념 상세정보보기

내용시작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에 출전한 손기정(孫基禎) 선수는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2시간 29분19초의 올림픽 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함으로써 한국 남아의 기상을 세계에 알렸다. 혜성처럼 나타난 동양의 선수에게 전 세계 언론이 집중된 이날의 쾌거는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한풀이를 대신하는 뜻 깊은 것이었다. 비록 손기정 옹은 일본 대표팀의 소속으

로 뛰었고 가슴에는 일장기가 달려 있었지만 인터뷰에서도 그는 자신의 모국이 한국이라고 당당히 밝혔고 상을 받을 때도 한국이 아닌 일본의 국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날의 회한은 56년 후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결승점을 우리선수가 제일먼저 통과하는 순간 손기정 선수는 진정한 미소를 찾게 되었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내용시작1945년 8월, 파란 하늘에 은빛 기체를 번뜩이며 날아온 폭격기는 청일전쟁 이래 군사중심도시로 발전한 일본의 히로시마 한 복판에 엄청난 위력의 폭탄을 떨어뜨렸다. 미군 폭격기 B-29가 TNT 2만 톤의 위력과 맞먹는 우라늄 235폭탄을 투하한 것이다.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에 이르러 일본 본토 상륙 직

전, 치열한 공방전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미국은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원자폭탄의 투하를 결정하였고 이날 인류 최초로 전무후무한 폭격을 감행한 것이다. 이 폭격으로 인해 당시 인구 34만3천여 명이었던 히로시마는 순식간에 도시 전체가 초토화되었으며 7만여 명이 즉사하고 이후 5년 안에

7만여 명이 추가로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폭격이후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종용하는 한편 일본이 전쟁수행 능력을 잃을 때까지 원폭 투하를 계속하겠다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위력적인 폭격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결사항전을 고집하였고 결국 사흘 뒤 또 한 번 비극은 되풀이 되었다.

일본 나가사키에 원폭투하

2003년 일본 발행

내용시작 사흘 전 히로시마에 행해진 원폭은 일본 전체를 공황상태로 몰아갔다. 섬광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시가지의 처참한 광경은 그 어떤 수식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발표된 미국의 강력한 항복 권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본 내각의 강경파는 오히려 결사항전을 주장하였고 이 같은 오만으로 인해 일본은 또 한 번의 참혹한 광경을 지켜보아야만 하였다. 8월 9일 나카사키[長崎]에 떨어진 또 한 발의 원자탄으로 인해 도시는 잿더미로 변하였고 7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결국 일본은 두 번의 처참한 희생의대가를 치르고서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게 되었다.

정치
제2공화국 민의원 참의원 합동개원

내용시작1960년 8월 대한민국 공화 헌정사상 최초의 의원내각제 국회가 탄 생되었다. 4.19혁명에 의해 부정부패에 찌들었던 제1공화국이 붕괴 된 후 1960년 6월 15일 통과된 개정헌법에 의해 영국식 의원내각제를 모방한 새로운 헌정체제를 출범시킨 것이다. 4·19혁명의 이념과 기본정신에 충실하며 정의사회의 실현이 보장되는 참다운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개원된 새로운 국회는 6월 23일 제정된 새 선거법에 의해 양원 합동회의에서 대통령에 윤보선(尹潽善), 국무총리에 장면(張勉)을 선출하고 제2공화국을 출범시

참의원 개원 기념 상세정보보기

켰다. 4·19혁명 후 과도국회(過渡國會)에서 압도적 지지와 함께 시

작된 최초의 의원내각제는 제2공화국과 더불어 1961년 5·16군사정

변에 의해 막을 내릴 때 까지 존속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932년 벨기에 발행

내용시작1914년 6월 현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인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총격사건을 기점으로 인류는 최초로 세계적 규모의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민족주의 청년에 의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부인 조피가 암살된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이 전쟁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 4년 4개월간 지속되며 대영제국, 프랑스 제3공화정, 러시아 제국 등의 주요 연합국과,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주요 동맹국이 양 진영의 중심이 되어 싸웠으며 신무기와 독가스가 난무하는 전장은 9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전쟁의 결과는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주요 동맹국의 패배로 끝이 났다. 특히 패전국 가운데 독일은 지독한 가난과 연합국에 대한 보복에 시달렸으며 훗날 인류 최대의 불행인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의 불씨를 지피게 되었다.

미 해병대 과달카날 섬에 상륙

내용시작과달카날 전투는 1942년 8월 7일부터 1943년 2월 9일까지 2차 세계 대전 중 태평양 전선에서 일어났던 전투로서 육해공 모든 영역에서

벌어진 2차 세계대전의 결정적인 전투였다. 일본에 대한 연합군의 첫 번째 공세인 이 전투는 연합군의 보급선을 지키기 위해 남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날 섬 근처에서 벌어졌다. 연합군의 공세에 대항한 일본군은 8월부터 11월 사이에 투라기와 과달카날의 핸더슨 비행장을

1992년 솔로몬군도 발행 상세정보보기

탈환하기 위한 몇 번의 시도를 하였다. 수 차례의 지상교전, 5번의 해전과 더불어 제공권 장악을 위한 항공전을 포함한 몇 번의 주요 교전들을 불러왔으며, 1942년 11월초 과달카날과 핸더슨 비행장을 탈환하려는 일본군의 시도는 과달카날 해전이 실패로 끝나며 일본의 패배로 매듭지어졌다. 1942년 12월 일본군은 과달카날 탈환을 위한 더 이상의 시도를 포기하였고, 1943년 2월 과달카날은 연합군에 의해 완전히 장악 되었다.

문화
재즈의 선구자 루이 암스트롱

내용시작재즈 연주에 있어 독주에 대한 중요성과 더불어 연주법을 확립하였고 스캣창법이라는 독특한 음색을 통해 가수로서도 뛰어난 자질을 보여주었다. 특히 재즈초기의 뉴올리언즈 스타일을 확립한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1901. 8. 4 ~1971)은 오늘날 재즈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1925년부터 자신의 악단을 이끌고 재즈 역사상 불후의 명연주로 꼽히는 음반들을 발표하였다. 대형 악단을 조직, 1932년부터 유럽여행 연주를 통해 재즈의 세계화를 이루었으며 뛰어난 음색, 탁월한 기교와 더불어 혼을 담은 연주를 통해 재즈의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947년부터 악단 '올스타즈'를 결성하여 재즈의 대중화에도 많은 기여를 하였다.

1995년 미국 발행

미국의 저널리스트 파일

내용시작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유명한 종군기자 중 하나였던 미국의 저널리스트 파일(Ernie Pyle, 1900.8.3~1945.4.18)은 인디애나 대학에서 신문학을 전공했다. 스크립스 하워드 계열 신문사에서 다양한 종류의 일을 맡으며 폭넓은 경험을 쌓았으며, 이런 경험들은 그에게 훌륭한 칼럼 소재를 제공해 주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 200여 신문에 게재된 것으로 기록된다. 파일은 2차 세계대전 중 시칠리아섬·북아프리카·이탈리아·프랑

스에서 특파원으로 활약하면서 현장감 넘치는 보도로 돋보이며 일약 스타기자로 자리매김 하였다. 1944년에는 그의 활동상이 인정되어 퓰리처상을 받았다. 파일은 오키나와 종군 중에 일본 군대의 사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그의 다양한 신문 기사는 '파일의 영국 체재기, Ernie Pyle in England(1941)', '임박한 전쟁, Here Is Your War(1943)', '용감한 사람들, Brave Men(1944)', '마지막장, Last Chapter(1946)' 등으로 정리, 출간 되었다.

1970년 미국 발행

프랑스의 작가 모파상

내용시작자연주의의 대표적 작가의 한 사람인 G.모파상(Maupassant, Guyde, 1850.8.5~1893) 은 어려서부터 어머니 밑에서 문학적 감화를 받으면서 성장하였다. 보불전쟁 참전 이후 잔인한 전쟁에 대한 실의에서 작가로의 길을 결심하였다. 1874년 프로베르의 소개로 에밀 졸라를 만나 6명의 젊은 작가들과 함께 쓴 단편집에 실린 ‘비계덩어리’를 통해 문단에 데뷔하며 커다란 호평을 받았다. 그 후 단편집 ‘메종 테리에(1881년)’, ‘피피양(1882년)’ 등으로 작가로서의 지위를 굳혔고 1883년에는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이 낳은 걸작으로 평가받는 일생일대의 걸작 장편소설 ‘여자의 일생’을 발표하였다.

1993년 프랑스 발행

미국의 건축가 불핀치

1979년 미국 발행

내용시작 건축가 불핀치는 미국 최고의 건축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1781년 하버드를 졸업한 불핀치(Bulfinch, Charles, 1763.8.8~1844)는 유럽으로 건너가 다양한 형식의 건축을 연구하였으며 미국에 돌아와 신고전주의 양식을 소개 하였다. 스코틀랜드 건축가 로버트 애덤의 신고전주의에 매료된 불빈치는 주로 관공서를 설계하며 절묘한 비례를 통한 품위 있고 실용적인 건축물들을 남겼다. ‘매사추세츠 주 청사(1788)’, ‘메인 주 의회의사당(1831)’등의 대표작이 있다.

과학
국내 최초 사용위성, 무궁화 1호 발사

내용시작우리나라 최초의 통신 및 방송 위성인 ‘무궁화1호’가 1995년 8월 5일, 미국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발사됐다. 무궁화1호는 직접 위성 방송과 영상 회의, 고속 팩시밀리, 섬이나 외딴 지역의 통신 문제 해결 등 다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으나, 발사 후 보조 로켓1개가 분리되지 않아 위성은 예정된 고도보다 6300㎞ 낮은 위치에서 멈췄다. 이 때문에 정상 궤도 이동을 위해 자체 추진기를 사용하면서 연료 소모가 많아졌고, 계획보다 25일 늦게 목표했던 지점

무궁화위성 발사 성공기념 상세정보보기

에 다다를 수 있었다. 과다한 연료 소모로 당초 10년 7개월로 예상했던 위성의 수명은 4년 3개월로 줄어 당초 임무는 완수하지 못하였으

나, 이후 6년간 외국 사업자 경사 궤도 운용용으로 임대되어 1600만 달러의 추가 수익을 올리기도 하였

으며 우리나라를 세계 22번째 위성 보유국으로 자리매김 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최초의 전기기계식 계산기 가동

1991년 영국 발행

내용시작 1944년 영국의 하버드에서는 인류 최초의 전기 기계식 계산기 'Mark-1'이 최초로 가동되었다. 현대의 컴퓨터처럼 일련의 명령을 해독하면서 자동으로 계산을 하는 기계는 19세기 초 영국의 수학자 배비지에 의해 최초로 고안 되었다. 기계식 작동을 통한 원시적 형태의 계산기는 태생적 한계에 머물렀으나, 이날 선보인 전기기계식 계산

기는 수 많은 공학도들에게 영감과 희망을 주었다. 이후 1945년 진공관(眞空管)을 사용한 전자식계산기 ENIAC(electronic numerical integrator and computer)의 성공을 발판 삼아 발전을 거듭해 1951년 스페리 랜드사의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 UNIVAC을 탄생시켰으며 오늘날 가정용 PC에서부터 슈퍼컴퓨터까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콜럼버스 1차 항해 출항

내용시작 이탈리아의 탐험가로, 에스파냐 여왕 이사벨의 후원을 받아 떠난 3차례에 걸친 항해 끝에 쿠바, 아이티, 트리니다드 등을 발견한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1451.8.26~1506.5.21). 콜럼버스는 페르난도 왕과 이사벨 여왕의 후원아래, 1492년 4월 항해를 허용한다는 산타페 협약 체결을 계기로 세습권으로서 제독의 지위를 획득하는 한편 종신직으로서 부왕의 지위에 버금가는 총독의 지위를 약속받음은 물론, 앞으로의 교역활동에 대해 자본참가권을 승인받았다. 첫 항해의 준비는 핀손 3형제의 협력을 얻어 진행되었는데 1492년 8월 3일, 산타마리아 호, 핀타 호, 니냐 호 3척에 120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마침내 파로스 항구로부터 그토록 꿈 꾸어오던 항해에 나서게 되었다. 카나리아 제도에 정박 후 9월 6일 고메라 섬을 떠나 북위 28˚선상에서 계속 서쪽으로 항해하면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자침편차와 사르갓소해의 불안을 극복했다. 10월 12일에는 구아나하니라고 불리는 바

1988년 코모로제도 발행

하마 제도의 한 섬(지금의 와틀링 섬)에 도착했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인도의 한 부분에 도착한 것으로 확신하고 신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시하기 위해 이 섬을 산살바도르(성스러운 구제자) 섬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곧 원주민인 인디오들로부터 황금과 향료가 나는 땅에 대한 정보를 캐면서 항해를 계속하였으나, 1492년 크리스마스 밤, 산타마리아 호가 좌초하여 난파했기 때문에 급히 나비다 거류구를 설치하여 약 40여 명의 인원을 잔류시킨 뒤 귀환길에 올라 1493년 3월 15일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탐

험에 성공한 콜럼버스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을 시기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했던 그의 말은 너무도 유명하다. "여러분, 누구든지 좋습니다. 이 달걀을 탁자 위에 세울 수 있습니까?" "이렇게 세우는 것은 남이 하고 난 다음에는 쉽습니다. 그러나 처음으로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가 탐험한 것도 이처럼 처음 한 일이라 쉽지 않습니다. 이제 대답이 되겠습니까?" '발상의 전환'을 의미하는 글귀에서 흔히 사용되는 '콜럼버스의 달걀'일화중 한 대목이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항해사. 남들이 다 알고 있지만 실

행에 옮기지 않았던 일을 처음으로 행했던 사람. 지구가 둥글다고 믿었기에 희망봉 항로를 버리고, 대서양을 넘어 신대륙을 발견한 남자이자 오늘날의 미국이 있게 한 남자.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인디언들의 재앙이기도 한 콜럼버스로 인해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은 길을 트게 되었지만 그것은 아메리카 대륙 인디언에게 있어서는 불행의 시작이었고 유럽인에게 있어서는 행운의 시작이었다는 문명사적 반론이 끊이지 않는 장본인으로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 인물이 되고 있다.

세계최초로 북극점 통과

내용시작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을 포함해 역사적으로 유명한 3척의 잠수함과 공상과학소설에 나오는 또 하나의 유명한 잠수함 이름인 노틸러스 호. 노틸러스란 영어로 ‘앵무조개’를 뜻하는데, 옛날부터 잠수함의 이름으로 쓰여 왔다. 최초의 노틸러스호는 1800년 미국의 공학자 R.풀턴이 프랑스에서 건조한 잠함정으로서, 목조 위에 철판을 깔고 잠항 중에는 수동식 스크루로

추진하였다. 그 후 1886년 영국인 A.캠벌과 J.애시가 축전지를 사용하여 전동기에 동력을 공급하는 전동잠수함 노틸러스호를 건조하였다. 특히 이 잠수함은 수중에서는 축전지로, 수면에서는 내연기관으로 동력을 공급하는 잠수함의 효시였다. 그 후 1954년 1월 21일에 진수된 미 해군함에 '노틸러스호'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장시간 잠수할 수 있는 최초의 진정한 잠수함

이었다. 이 잠수함은 원자로에서 만들어진 증기로 추진터빈을 돌려 동력을 공급받아 잠수상태에서 20노트 이상의 속력으로 항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속력을 거의 변함없이 유지할 수도 있었다. 노틸러스호는 길이 97m, 배수량 3,180t으로 이전 잠수함들보다 훨씬 크게 만들어졌다. 1958년 8월 1~5일 노틸러스호는 윌리엄R. 앤더슨 함장의 지휘 아래 알래스카의 배로 곶

1959년 미국 발행

을 출발하여 북극의 만년빙 밑을 지나 그린란드 해까지 가는 역사적인 잠수항해를 했다. 노틸러스호는 방사능 오염을 최대한 방지하고, 디젤-전기 동력을 보조동력으로 사용하는 등 여러 면에서 미래 핵잠수함의 표준이 되었다. 노틸러스호는 문학작품에도 등장하였는데, 1870년 J.베른은 잠수함 노틸러스호를 탄 네모 선장의 항해를 그린 고전 공상과학소설 '해저 2만리, Twenty Thousand Leagues Under the Sea'을 발표한 바 있다.  

금주의 노벨상

노벨생리의학상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

1980년 프랑스 발행내용시작 우연한 발견을 통해 인류를 구원한 생물학자 플레밍(Sir Alexander Fleming, 1881.8.6~1955). 제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야전병원에 근무하며 전장에서 군인이 걸리는 치명적인 감염증을 접한 후 감염증 치료를 개선시킬 수 있는 약제 탐색에 온 정력을 기울였다. 전후 대학에 복귀한 플레밍은 폐혈증 치료법을 찾던 도중 1922년 세균을 죽이는 리소자임을 발견 · 분리했으며 1928년에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관한 연구를 시작해 포도상구균 배양기에 발생한 푸른곰팡이를 연구하여 포도상구균의 증식을 방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우연히 포도상구균 배양기에 발생한 푸른곰팡이 주위가 무균 상태라는 사실을 발견한 플레밍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푸른곰팡이의 배양물을 800배로 묽게 하여 항균성물질을 얻어내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이 항균성 물질은 페니실린으로 명명되었으며 이후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에서 구할 수 있었다. 플레밍은 이 연구로 인하여 1945년 공동 연구자인 체인, 플로리와 함께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노벨물리학상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디랙

1982년 스웨덴 발행내용시작 1933년 에어빈 슈뢰딩거와 함께 '원자 이론의 새로운 형식의 발견'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디랙(Dirac, Paul, 1902.8.8~1984)은 양자 역학을 탄생시킨 사람 중의 하나이다. 1932년부터 1936년까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루카스 석좌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뛰어난 업적을 이룬 국제 이론 물리 센터(ICTP) 이론 물리학자들에게 그의 이름을 딴 디랙 메달이 수여되고 있다. 특수 상대성 이론을 고려한 기본 방정식인 디랙 방정식을 통해 파동방정식을 세워 상대론적 양자역학을 개척하였으며, 그밖에 전하 양자화를 설명할 수 있는 자기 홀극, 전자스핀 연구 등과 더불어 이론과 실제에 있어 이론물리학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온라인미술관
러시아 화가 레핀
Barge Pullers Along the Volga (1997년 러시아 발행)

Barge Pullers Along the Volga(1969년 러시아 발행, 부분확대)

Self-portrait (1969년 러시아 발행)

Cossacks Writing a Letter to the Turkish Sultan (1956년 러시아 발행)
내용시작진보적 그룹인 이동파의 중심인물 수리코프와 함께 19세기 후반 러시아 미술의 쌍벽을 이루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미술학교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졸업 후 유럽을 여행하며 다양한 서구의 화풍을 접하고 연구하였다. 청년시절 일찍이 실력을 인정받았던 레핀(Repin, Ilya Yefimovich, 1844.8.5~1930.9.29)은 극적 긴장감이 뛰어난 박력 있고 중량감 있는 역작들을 발표하였다. 특히 레핀의 작품들은 독특한 주제의 선택과 뛰어난 해석력으로 인물의 내면적 모순을 미묘하게 표현하였으며 사회악에 대한 풍자적 저항의식은 다수의 작품들에 녹아있다. 말년에는 후학 양성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대표작으로는 ‘볼가의 예선인부(曳船人夫)들(1883)’, ‘쿠르스크현(縣)의 십자가 행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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