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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지난 시간여행
제목 시간여행 제123호
등록일 2009. 7. 9.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태조 이성계 즉위, 조선왕조 건국 상세정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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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시작고려의 우군 도통사를 맡았던 이성계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1392년 7월 17일 고려의 마지막 왕이었던 공양왕의 왕위를 물려받아 새 왕조를 건국하였다. 그 왕조의 이름이 조선이다. 말의 어원에 '동방'과 '광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땅이 동쪽에 있어 해 뜨는 곳, 또는 아침의 나라라고도 하였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단군왕검이 세운 나라의 국호도 조선이라고 해서 이를 구분하기 위해, 이를 고조선(古

朝鮮)이라 하고, 1392년 이성계가 신진사대부와 협력하여 고려(高麗)에 이어 세운 왕조를 조선이라고 했다. 조선(朝鮮)은 1392년부터 1910년까지 한반도 지역을 통치하였던 왕국으로 통상 조선 왕조(朝鮮王朝)라고 하며, 조선 내부적으로 대조선국(大朝鮮國)이라는 명칭을 어보(御寶), 국서(國書) 등에 사용하였다. 1897년에 제국이 되면서 대한제국이 되었으며 1910년 8

월까지 존속했다. 태조 이성계 이후 500여년동안 존속되었던 조선은 유교에 의한 통치 이념을 기본으로 임금과 신하에 의한 법치를 중요시 여겼다. 조선 시대 동안 한반도에서는 한글의 창제와 과학 기술 및 농업 기술의 발달 등이 이루어졌으며 임진왜란을 비롯한 여러 외침을 극복하고 현재의 한국 문화의 직접적 전통의 기반이 되는 문화를 형성하였다.

사회
대한민국 4대 국경일 중 하나, 제헌절

내용시작1948년 7월 17일에 제정, 공포된 대한민국 '헌법'의 제정을 기념하는 날인 제헌절은 우리나라 4대국경일의 하나로 매년 7월 17일로서 국경일로 지정되어 있다. (2008년부터는 법정공휴일에서 제외됨). 제헌절은 조선왕조 건국일인 7월 17일에 맞추어 공포하였다.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한 헌법의 제정을 경축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헌법수호를 다짐하는 기념행사를 거행하며, 가정에 국기를 게양하여 이날의 뜻을 높이고 있다.

제25주년 제헌절 기념 상세정보보기

1회 월드컵 개막

내용시작프로나 아마추어를 불문하고 선수 개인의 국적에 의해 출전하여 국가간 기량을 가늠하는 월드컵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올림픽 중간 연도를 택해 4년마다 한 번씩 개최하는 세계선수권대회를 말한다. FIFA의 주관 아래 처음으로 개최된 월드컵축구대회는 1930년 7월 13일 13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우루과이에서 열렸다. 1929년 5월 18일 바르셀로나총회에서의 결정에 의해

개최된 1회 월드컵은 FIFA 회장인 프랑스의 줄 리메(Jules Rimet)의 노력으로 유럽 4개국, 남·북아메리카 9개국 등이 지역별 예선전 없이 초청형식으로 출전하게 되었다. 프랑스와 멕시코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7월 30일까지 18일간 펼쳐진 첫 월드컵은 예상과는 달리 수준 높은 경기내용을 펼치며 개최국인 우루과이가 우승, 아르헨티나 준우승,

미국이 3위를 차지하며 성공적인 대회로 마무리 되었다. 우승컵은 당시 회장이던 줄리 메(Jules Rimet)가 제공한 줄리메컵(Jules Rimet Cup)이 수여되었으며 이후 대회 규정상 3번 우승한 브라질에게 영구히 넘어가게 될 때까지 줄리메컵 세계선수권대회라고 불렸다. 1971년 FIFA에서 우승컵을 제공한 뒤부터 FIFA 월드컵이라고 불린다.

2001년 도미니카 발행

조선체육회, 올림픽대책위원회를 설치

내용시작올림픽 위원회는 올림픽정신을 국내에 보급/발전시키고 한국의 체육 및 스포츠 활동을 국제무대로 확산하여 인류평화에 기여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 : Korean Olympic Committee)는 1946년 조선올림픽대책위원회라는 명칭으로 창설되어, 1947년에 제41차 IOC(IOC : 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국제올림픽위원회)총회에서 IOC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였다. KOC는 대한민국 정부가 채 수립되기 전인 48년 1월 30일에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린 제 5회 동계올림픽에 태극기를 앞세우고 출전, 올림픽 가족이 되었다. 48년 런던올림픽은 KOC가 선수단을 파견한 첫 하계올림픽이다. KOC는 2차례의 올림픽(제6회, 22

회)을 제외하고는 모든 올림픽에 참가, 전세계 올림피안들과 평화와 우정을 함께 나누었다. 특히 1952년 핀란드 헬싱키하계올림픽은 전쟁중에도 참가하여 올림피즘의 숭고한 이상을 앞서 실천한 나라로 찬사를 받았다. KOC는 올림픽운동 증진을 위해 '86년의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와 '88년의 서울올림픽을 유치해 성공적으로 치뤄 냈으며 특히, '88서울올림픽은 올림픽대회 사상 최고의 대회로 아직까지도 국제스포츠계의 찬사를 받고 있다. KOC는 지난 '84년 LA올림픽부터 ‘06토리노올림픽대회까지 동,하계올림픽 대회에서 세계 10위권의 성적을 굳건히 지키며 스포츠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으며, 올림픽을 비롯한 9개 국제종합경기

대회 남북한 공동입장으로 전 세계에 올림픽운동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30여일 앞으로 다가온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남북단일팀 구성을 통한 올림픽의 평화이념을 구현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IOC 창립90주년 기념 상세정보보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유원지

1987년 도미니카공화국 발행

내용시작 미국의 영화감독이며 TV 연출가인 월트 디즈니의 창조력이 만들어낸 세계 최초의 테마 파크 '디즈니랜드'가 1955년 7월 1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서 개원했다. 모험의 나라, 환상의 나라, 개척의 나라 등으로 구분되어 있는 상상의 나라, 디즈니랜드는 방문자들에게 놀라움과 즐거움을 선물하고 있다. 어린이에게는 꿈과 모험과 미래를 안겨주고, 어른들에게는 지난날의 향수와 동심의 세계를 선사해 온 이곳은 오늘날까지도 대표적인 명소로 꼽히고 있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다. (개장이후 총 입장자 수는 2억 명을 넘어섰으며 연간 입장자가 1,00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됨). 1971년 플로리다주(州) 올랜도에 디즈니랜드의 100배가 넘는 넓은 부지에 월트 디즈니월드를 개설했고 1983년에는 일본의 지바현 우라야스시(市)에 총 넓이 820.6㎢의 도쿄디즈니랜드를 개장했다.

경주 천마총 천마도장니 출토

내용시작천마도장니는 말의 안장 양쪽에 달아 늘어뜨리는 장니에 그려진 말그림이다. 가로 75㎝, 세로 53㎝, 두께는 약 6㎜로 1973년 경주 황남동고분 155호분(천마총)에서 발견되었다. 천마도가 그려져 있는 채화판은 자작나무껍질을 여러 겹 겹치고 맨 위에 고운 껍질로 누빈 후, 가장자리에 가죽을 대어 만든 것이다. 중앙에는 흰색으로 천마가 그려져 있으며, 테두리는 흰색·붉은색·갈색·검정색의 덩굴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천마는 꼬리를 세우고 하늘을 달리는 모습으로, 다리 앞뒤에 고리모양의 돌기가 나와 있고 혀를 내민 듯한 입의 모습은 신의

한국미술 5천년 특별 상세정보보기

기운을 보여준다. 이는 흰색의 천마가 동물의 신으로, 죽은 사람을 하늘 세계로 실어 나르는 역할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5∼6

세기의 신라시대에 그려진 천마도의 천마의 모습 및 테두리의 덩굴무늬는 고구려 무용총이나 고분벽화의 무늬와 같은 양식으로, 신라

회화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그림이다. 또한 신라회화로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작품으로 그 가치가 크다.

코마네치, 올림픽 체조 첫 만점

1976년 루마니아 발행

내용시작 올림픽 체조부문에서 사상 첫 10점 만점을 기록한 선수가 배출되었다. 그 주인공은 루마니아의 체조선수 코마네치(Nadia Comaneci, 1961.11.12 ~ )로 그녀는 1967년 루마니아의 체조 국가대표 선수단의 코치인 벨라 카롤리의 눈에 띄어 6세 때부터 체조를 시작했다. 코마네치는 1976년 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개최된 제21회 올림픽경기대회의 이단평행봉에서 체조역사상 처음으로 10점 만점을 기록하였고, 이 대회에서 7차례나 10점 연기를 펼치며 개인종합과 평균대, 이단평행봉 등 3관왕에 올랐고 단체전에

서 은메달, 마루운동에서 동메달 등 5개의 메달을 획득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로써 그녀는 루마니아의 국민적 영웅이 되어 “사회주의의 영웅(Hero of Socialist Labour)”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녀의 연기는 힘차면서도 부드럽고, 과감하면서도 우아하여 인간 육체 표현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4년 선수생활을 그만 둔 그녀는 1996년 미국 체조선수 출신인 버트 코너와 결혼하여 미국에서 남편과 함께 체조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모델과 자선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최초 고아원 설립자, 원두우

내용시작미국의 장로교 선교사, 교육자, 성서번역가였던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7.19~1916)의 한국명은 원두우(元杜尤)이다. 그는 1884년 7월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의 임명에 따라 이듬해 감리교 목사인 H. G. 아펜젤러와 함께 한국에 입국했다. 1886년 한국 최초의 고아학교(고아원)를 설립했는데 이 학교가 경신학교의 전신이 되었으며, 1887년 9월에는 새문안교회를 설립했다. 또한 1889년 한국예수교성교서회를 창설하여 문서를 통한 선교실무를 관장했으며 '한국어문법'을 편찬·간행했다.

1951년 불가리아 발행

1900년 기독교청년회(YMCA)의 조직 및 1915년 경신학교에 대학부를 설치하여 연희전문학교의 설립에 바탕이 되었다. 그밖에 세브란

스 의학교, 피어선 성경학원, 평양 장로교신학교 등의 설립에 주도 역할을 했으며, 성서번역사업에도 커다란 기여를 하여 한국 최초로 찬

송가를 간행했다. 이와같이 언더우드는 한국 개화기에 종교/정치/교육/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공적을 남긴 인물이었다.

정치
 초대 국제연합 사무총장, 노르웨이의 외교관 리

1987년 UN 발행

내용시작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난 정치가이자 외교관이었던 리(Trygve Halvdan Lie, 1896.7.16~1968.12.30)는 크리스티아니아대학교를 졸업한 뒤 변호사로 일하다가 노동당에 입당하여 1919~1922년 당서기로 활약했다. 1922~1940년 노동당의 법률고문과 전국집행위원을 지냈으며, 1935년 국회의원이 되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법무장관 ·상무장관 ·선박장관 ·공급장관(供給長官) 등을 역임하였다. 1940년 독일군이 침입하자 국내에 남아 저항운동을 하다가 런던으로 망명하여, 망명정권의 외무장관이 되었다. 1945년 귀국하여 신정부의 외무장관이 되고, 그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1차 국제연합총회, 기타 국제회의의 노르웨이 대표로 활약하였다. 1946년 초대 국제연합 사무총장에 선출되어 세계평화 20개년 계획을 제창하였으며, 1950년 6·25전쟁 때는 국제연합군 파병 등 한국을 도왔다.

 보불전쟁(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발발

내용시작보불전쟁이라고도 불리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Franco-Prussian War, 1870. 7. 19~1871. 5. 10)은 유럽대륙에서 프랑스의 주도권에 종지부를 찍고 독일 제국을 성립시킨 전쟁이라 할 수 있다. 보불전쟁의 직접적인 계기는 에스파냐 국왕 선출문제를 둘러싼 양국간의

분쟁으로, 그 과정에서 일어난 엠스전보(電報)사건은 프랑스와 프로이센 양 국민을 격앙케 하여 1870년 7월 19일 프랑스가 선전포고를 하였다. 전세는 북독일 연방제국과 남독일의 지지를 얻은 프로이센 독일군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여 전쟁 돌입 후 2달여 만에 나폴레옹 3세

가 독일군에게 행복하였다. 프랑스 파리를 포위한 독일군에 대항하던 프랑스는 결국 1870년 9월에는 스트라스부르를, 10월에는 메츠요새가 함락됨으로써 1871년 1월 마침내 파리의 성문을 열어주게 되었다. 파리 함락 직전에 베르사유에서 독일제국의 성립이 선포되었으

1970년 프랑스 발행

며, 1871년 2월 베르사유에서 평화협정을 5월에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강화조약이 체결되어 프랑스는 독일에 배상금 50억 프랑을 지불하고 알자스-로렌 지방 대부분을 할양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에 의한 교황청의 세속 권력이 붕괴되고 이탈리아와 러시아의 군사력이 강해짐에 따라 1차세계대전까지 불안정한 유럽정세를 가지게 되었다.

독일정부 `단종법(斷種法)` 공포

내용시작단종법은 우생학적 입장에서 유전성 정신박약자 등의 생식(生殖) 능력을 없애는 일에 대하여 규정한 법률로, 미국에서 최초로 입법화되었고 그 후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등지에서도 제정되었다. 우생학이란 1883년 영국의 F.골턴이 처음으로 창시한 학문으로 원래 유전학 ·의학 ·통계학 등을 기초로 한다. 이 학문은 우수 또는 건전한 소질을 가진 인구의 증가를 꾀하고 열악한 유전소질을 가진 인구의 증가를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며, 이를 위하

1995년 캐나다 발행

여 육체적 또는 정신적 결함을 가진 사람의 발생에 관한 모든 조건과 인자가 연구의 중심이 된다. 이것을 기초로 악성유전성 질환의 예방을 목적으로 하여 유전성 정신병(정신분열증 ·조울증 등), 백치 등의 정신박약, 유전성 기형, 혈우병

등의 환자를 강제 또는 임의로 단종 시키는 우생법안이 제안되어 부분적으로는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으나 그 운용에서는 아직도 논의가 반복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단종법(斷種法)에서 볼 수 있듯이 범죄자나 알코올중독 환자까지도

그 범위 내에 포함하고 있으며, 또 강제법으로 하고 있는 주(州)도 있다. 독일의 나치스 때 시행했던 극단적인 우생정책(나치가 유대인·흑인·동성연애자들의 몰살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한 정책)은 인권을 침해했던 대표적인 예이다.

문화
체코의 판화가 홀라르

내용시작평생 약 3,000점의 판화를 남긴 홀라르(Wenceslaus Hollar 1607. 7. 13~1677)는 세밀한 묘사와 더불어 사실성 있는 작품들을 선보이며 동시대 생활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 뛰어난 판화가로서 평가받고 있다.

1627년 부터 프랑크푸르트에서 판화가이자 출판업자인 마테우스 메리안에게 판화를 배웠다. 1633년 쾰른을 거쳐 영국에 정착한 홀라르는 1666년의 대화재 이후의 런던의 풍경(Views of London)을 비롯해

17세기 영국사회의 생활상을 수많은 책의 지면을 빌어 남겼으며 오늘날 그가 남긴 기록들은 중요한 사료로서 전문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1965년 영국 발행

러시아 태생의 프랑스 조각가 자킨

내용시작러시아의 스몰렌스크 출생의 프랑스 조각가 자킨(Ossip Zadkine, 1890.7.14~1967.11.25)은 파리파(派)에 속하는 인물로 그의 작품은 매우 독창적이고 자유분방한 형태를 특징으로 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편이다는 평을 받는다. 일찍이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으나, 니그로 조각이 갖는 단순성과 활력있는 작품에 영향을 받아 러시아인 본연의 환상미와 원시성을 변형한 작품에 주력하기도 하였다. 독학으로 조각을 공부한 끝에 현대 조각에 독자적인 지위를 확보한 그는 오르페(1949), 파괴된 도시(1951), 폐허 로테르담을 위한 기념상(1953), 고흐상(1961) 등의 작품을 남겼다.
※ 파리파 : 에콜드파리라 일컬어지며, 제1차 세계대전 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파리의 몽파르나스를 중심으로 모인 외국인 화가들을 가리키는 말.

1693년 프랑스 발행

재봉사의 아들 사르토, 르네상스 전성기를 대표하다

2003년 터크스케이커스제도 발행

내용시작이탈리아 피렌체 출생인 사르토는 전성기 르네상스의 피렌체파(派)의 대표적 화가이다. 본명은 Andrea d' Agnolo이다. 피에로 디 코시모의 제자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프라바르톨로메오, 미켈란젤로 등의 작품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1518∼1519년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의 초청을 받아 프랑스로 간 일과 로마 ·베네치아의 단기간의 여행을 제외하고는 그는 거의 피렌체에서 제작에 몰두하여 피렌체의 산티시마 아눈치아타성당의 전정(前庭) 회랑의 벽화, 특히 '마리아의 탄생, (1514)'과 키오스트로 델로 스칼초(Chiostro dello Scalzo)수도원의 '세례자 요한의 탄생, (1511∼1526)'의 단색조 벽화들, 우피치미술관의 '하르피에스의 마돈나, (1517)'와 같은 걸작을 남겼다. 그의 소묘들은 구도와 기교에서 각각의 그림을 바로 전의 것보다 더 완전하게 만들려는 오직 하나의 야망을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다.

과학
한국 최초의 원자로 기공식

내용시작한국 최초의 원자로인 트리가는 'Training, Research, Isotope Production, General Atomic'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미국의 제너럴아토믹사(社)가 공급한 한국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이다. 1959년 7월 14일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있던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孔陵洞)에서 기공해 1962년 3월 첫 임계에 도달하면서 가동을 시작하였다. 정식 명칭은 트리가마크 Ⅱ로, 열출력은 처음에는 100㎾였으나, 1979년에 250㎾로 증강하였다. 원자력 관련 교육훈련, 중성자 빔을 이용한 물성 연구, 방사성동위원소 생산, 방

하나로연구용 원자로 준공 기념 상세정보보기

사화 분석, 방사선 응용연구, 육종개량, 중성자 회절연구 등 원자력 이용기술 개발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주로 활용되었다. 트리가마크

Ⅱ는 1996년 5월에 가동이 중지된 뒤 7월에 폐지되어 공릉동 옛 한국원자력연구소 부지에 기념관이 있다. 트리가마크 Ⅱ가 우리나라 최

초의 연구용 원자로였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는 고리 1호기로 1978년에 상업운전을 시작하며 원자력시대에 발을 내딛었다.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

1964년 UN 발행

내용시작 atom bomb이라 불리는 원자폭탄(原子爆彈)은 플루토늄이나 우라늄처럼 원자번호가 큰 중원소의 원자핵이 분열할 때 갑자기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을 이용해 엄청난 폭발력을 내는 무기이다. 최초의 원자폭탄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에서 이른바 맨해튼 계획(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이루어진 미국의 원자폭탄제조계획)에 따라 만들어졌다. 플루토늄을 이용한 원자폭탄 1개를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 주의 앨버커키에서 남쪽으로 193㎞ 떨어진 지점에서 실험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전쟁에 실제로 사용된 최초의 원자폭탄은 우라늄으로 만든 것이었다. 미국은 이 폭탄을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떨어뜨렸다. TNT 2만t의 위력과 맞먹는다고 발표된 이 원자폭탄은 34만 3,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이 도시의 심장부 10.36㎢를 순식간에 완전히 폐허로 만들었다.

 미국최초, 지구궤도 선회 글렌

내용시작 atom bomb이라 불리는 원자폭탄(原子爆彈)은 플루토늄이나 우라늄처럼 원자번호가 큰 중원소의 원자핵이 분열할 때 갑자기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을 이용해 엄청난 폭발력을 내는 무기이다. 최초의 원자폭탄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에서 이른바 맨해튼 계획(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이루어진 미국의 원자폭탄제조계획)에 따라 만들어졌다. 플루토늄을 이용한 원자폭탄 1개를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 주의 앨버커키에서 남쪽으로 193㎞ 떨어진 지점에서 실험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전쟁에 실제로 사용된

1962년 헝가리 발행

최초의 원자폭탄은 우라늄으로 만든 것이었다. 미국은 이 폭탄을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廣島]

에 떨어뜨렸다. TNT 2만t의 위력과 맞먹는다고 발표된 이 원자폭탄은 34만 3,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이 도시의 심장부 10.36㎢를 순식간에 완전히 폐허로 만들었다.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교육자 바그너

1934년 오스트리아 발행

내용시작이론과 설계면에서 근대 건축을 주도한 인물인 바그너(Otto Wagner, 1841~1918)는 실용적인 양식을 제창한 유럽 근대건축운동의 창시자이며 지도자로 꼽힌다. 아르 누보 양식의 빈 고가전철, 지하철 철도역(1894~97)과 우편저축은행(1904~06) 등 주요작품에는 건축의 양식은 실용목적 ·재료 ·구조 ·미적 입장에서 규정된다는 그의 견해가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우편저축은

행 중앙 홀의 곡선 유리지붕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대 건축사에서 하나의 이정표로 인정받고 있다. 1895년 그의 강의내용을 담은 ‘현대 건축(Moderne Architektur)’이 출판되었으며 그의 건축관은 J.올브리히, J.호프만 등의 후계자에 의하여 근대 건축사상 중요한 혁신적 예술운동인 제체시온(Sezession: 分離派) 운동으로 발전해 나갔다.

금주의 노벨상

노벨평화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남아공 민권운동가 만델라

1995년 가나 발행내용시작 템부족(族) 족장의 아들로 태어난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 1918.7.18~)는 1940년 포트헤어대학 재학 중 시위를 주동하다 퇴학당한 뒤 1944년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청년연맹을 창설하였다. 1952년 비백인(非白人)으로서는 처음으로 요하네스버그에 법률상담소를 열고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인종격리정책을 뜻하는 아프리칸스어) 반대운동에 나서는 등 본격적으로 흑인인권운동에 참가하였다. 1952년과 1956년 두 차례에 걸쳐 체포되었으며, 1960년 3월 샤프빌흑인학살사건을 계기로 평화시위운동을 중단하고 무장투쟁을 지도하다가 1962년 다시 체포되어 5년형을 선고받았으며, 1963∼1964년 범죄혐의 추가로 재판을 받고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1979년 옥중에서 자와할랄네루상(賞), 1981년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1983년 유네스코의 시몬 볼리바 국제상을 받았으며, 1990년 2월 석방 때까지 27여 년 간을 복역하면서 세계인권운동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1991년 7월 ANC 의장으로 선출된 뒤 실용주의 노선으로 선회하여 드 클레르크의 백인정부와 협상을 벌여 350여 년에 걸친 인종분규를 종식시켰다. 이러한 공로로 1993년 드 클레르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며, 1994년 5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참여 자유총선거에 의하여 구성된 다인종 의회에서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온라인미술관
빛과 영혼을 그리는 화가 렘브란트
1938년 네델란드 발행
1976년 러시아 발행

내용시작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7.15~1669.10.4)은 레이덴의 부유한 제분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26살의 나이에 네덜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만인의 가슴에 감동을 안겨주는 화가로 기억된다. 신생 독립국 네덜란드 공화국의 번영을 이끄는 중심 도시이자, 상인과 작가와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무역왕국의 중심지였던 암스테르담에서 렘브란트는 명성을 떨쳤다. 유화, 소묘, 에칭 등에 통달했던 렘브란트는 초기 시절부터 천재란 칭호를 들었던 그의 그림은 화려한 붓놀림, 풍부한 색채, 하늘에서 쏟아지는 듯한 빛과 어두움이 특징이다. 초상화와 자화상을 즐겨 그린 렘트란트는 캔버스에 그 사람의 성격을 꿰뚫어 옮기는 놀라운 통찰력의 소유자로 불렸다. 400여년의 기간동안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는 100여점에 가까운 자화상과 성서화를 통하여 자신의 관찰력을 확인하려 하였고, 인간 얼굴의 표현가능성에 대하여 탐구하는 시험의 장으로 활용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튈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 (1632년)”, “돌다리가 있는 풍경 (1637년)”, “야경 (1642년)”, “세 개의 십자가 (1653년)” 등이 있다.

움직이는 인체를 그리는 화가, 드가
1970년 프랑스 발행
1984년 그레나다 발행

내용시작부유한 은행가 집안의 장남이었던 드가(Edgar Degas, 1834.7.19~1917.9.17)는 한때 가업계승을 위해 법률하기도 하였으나, 1855년 미술학교에 입학하면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고전파에 대한 경의 및 르네상스 작품에 심취하는 등 고전연구에 힘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그 후, 파리의 근대적인 생활에서 주제를 찾게 되자 더욱 재능을 발휘하여 정확한 소묘능력 위에 신선하고 화려한 색채감이 넘치는 근대적 감각을 표현하였다. 인물동작을 잡아 순간적인 포즈를 교묘하게 묘사하여 새로운 각도에서 부분적으로 부각시키는 수법을 강조해왔다. 경마나 무희, 욕탕에 들어가거나 나오려는 여성의 한 순간의 동작을 즐겨 그렸다. 이러한 그의 눈과 기량은 파스텔이나 판화에도 많은 수작을 남겼을 뿐 아니라, 만년에 시력이 극도로 떨어진 뒤에 손댄 조각에까지 더없는 걸작을 만들어냈다. 선천적으로 자의식(自意識)이 강한 성격 때문에 독신으로 보냈고, 그의 인간혐오증은 늙어갈수록 더하여 고독한 가운데 파리에서 83년의 생애를 마쳤다. 주요 작품으로, '카뮈 부인, Madame Camus(1869~70)', '뉴올리언스 목화 거래소, New Orleans Cotton Office(1873)', '압생트, The Absinthe Drinker(1876)'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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