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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지난 시간여행
제목 시간여행 제135호
등록일 2009. 9. 30.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가갸날’로 시작된 한글날 상세정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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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시작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세종대왕의 성덕과 위업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일인 한글날은 10월 9일이다. 한글날은 1926년 11월 4일(음력 9월 29일)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 반포 48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식을 가지고, 이날을 제1회 '가갸날'로 정하면서 시작되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 따르면, 1446년(세종 28) 음력 9월 훈민

정음이 반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당시 음력 9월의 마지막 날인 29일을 한글이 반포된 날로 추정하여 '가갸날'로 정하고, 신민사(新民社)와 공동 주최로 한글반포 8회갑(八回甲:480년)을 기념하였다. 이듬해인 1927년 조선어연구회 기관지 '한글'이 창간되고부터 이날을 '한글날'로 고치고 계속 음력으로 기념하다가, 1932년 양력 날짜로 환산, 10월 29일에 기념행사를 가

졌다. 다시 1934년 정확한 양력 환산법을 적용하여 10월 28일로 정정하였고, 1940년 7월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이 발견되어 정인지(鄭麟趾) 서문에 반포일이 9월 '상한(上澣)'으로 나타났으므로, 상순의 끝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을 한글날로 확정하였다. 한글날은 2006년부터 법정 공휴일이 아닌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사회
한국보이스카우트 운동의 모체인 대한소년단 조직

내용시작한국보이스카우트의 모체로 불리는 대한소년단은 ①하나님과 나라를 위하여 나의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②항상 다른 사람을 도와주겠습니다. ③덕성을 기르며 몸과 마음을 튼튼히 하며 대한소년단의 규율을 잘 지키겠습니다. 이상 3항의 선서를 좌우명으로 1922년 10월 5일에 고(故) 조철호 선생에 의해서 '조선소년군'이라는 이름으로 발족하였다. 일제의 탄압으로 1937년 9월에 해산되었으나 광복(光復)과 더불어 1946년 3월 1일에 '한국 보이 스카우트'로 재발족하였으며 1952년 9월 12일 '런던'에서 개최된 국제연맹위원회에서 대한소년단이 동 연맹에 가입 승인을 받고 다음 해 1월 31일에 정식으로 국제 '보이스카웃'의 일원으로 되었다.

한국 보이스카우트 창립 50주년 기념 상세정보보기

재향군인의 날

내용시작대한민국 재향군인회는 재향군인의 친목을 도모하고 국가발전과 사
제25주년 재향군인의 날 기념 상세정보보기

회 공익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1952년 2월 1일 부산에서 제대장병 3만여 명의 회원을 시작으로 창설되었다. 1961년 5월 8일 WVF(World Veterans Federation:세계재향군인연맹)에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이사국으로 선임되었다. 1961년 5월 10일에는 대한민국재향군인회법이 공포되었다.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해산되었으나, 같은해 12월 12일 재건총회를 열고 활동을 재개하였고, 1965년 6월 8일 제49차 국무회의에서는 대한민국재향군인회가 WVF에 가입한 5월 8일을 ‘재향군인의 날’로 정할 것을 의결하

였다. 그러나 5월 8일이 어버이날과 중복된다 하여 2003년부터 10월 8일로 변경되었다. 재향군인회는 조직활동으로 각급 회를 증설 및 조정하고 해외조직을 설치하며 체육대회 등 각종 행사를 개최하고, 안보활동으로는 향토예비군과 민방위대 창설에 중추적 역할을 하였으며 총력안보운동본부와 차량기동계도반, 특별안보계도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복지활동의 일환으로 복지기금을 조성하여 불우회원 생활보조, 장학금 지급, 국군장병위문 등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귀하고 소중한 자연, 후세에게 영원히~’ 자연보호헌장 선포

내용시작1978년 10월 5일 귀하고 소중한 자연자원을 영원히 후세에게 물려주자는 결의를 담은 자연보호헌장이 선포되었다. 전 세계 자원 및 자연보호를 목적으로 1948년 설립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취지 에 따라 자연보호에 관한 범국민적인 결의를 집약하여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를 거쳐 제정 선포된 이 헌장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와 더불어 자연보호의 필연성을 서술한 전문과, 자연보호에 대한 국가와 국민의 의무, 올바른 환경윤리관의 확립 등을 강조하는 7개항의 결의로 이루어져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곳곳에서는 갖가지 환경문제로 인하여 생태계의 위협은 물론 재앙으로 불릴 만큼 인간의 생활에도 심각한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심각성은 우리나라 또한 예외가 될 수

보통우표(자연보호) 상세정보보기

없으며, 국민 모두가 자연은 인간생명의 원천인 동시에 생활의 바탕으로서 인간이 생존하는 기본이 된

다는 진리를 깨달아 자연을 보호하고 현명하게 이용하여 우리의 생활환경을 보호하는데 총력을 기울여

야 할 것이다. 자연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풀어야 할 인류의 과제일 것이다.

 한반도가 새겨진 최초의 세계지도 - 곤여만국전도

내용시작 근대지도 제작술의 전환점이 마련된 이후 세계지도상에 우리나라를 표기한 최초의 서양 사람은 누구였을까? 16세기 말 유럽의 세계지도 제작술의 정점에 있었던 메르카토르와 오르텔리우스의 지도에 조차도 왜곡되어 표현되었던 동양의 지리적 정보는 이탈리아의 선교

사 마테오리치(Matteo Ricci, 1552.10.6 ~1610)에 의하여 비로소 구체적인 정보를 표현하게 되었다. 예수회 선교사로서 중국에 최초로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인물로 알려진 마테오리치는 1583년부터 중국에 머물며 선교활동과 더불어 서양의 문물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전하

는 일을 하고 있었다. 중국의 다양한 문물을 접하며 동서양의 문화교류와 선교활동에 집중했던 그는 또 다른 유교문화권인 조선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까지 그가 접했던 제한적인 지리적 정보와 왜곡된 형태로 나타난 중국과 동아시아 지역의

2002년 이탈리아 발행 상세정보보기

지도는 그로 하여금 보다 정확한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때마침 동방견문록 등을 통해 유럽에 카타이로 알려져 있던 곳이 자기가 머물고 있는 중국이라는 확신을 또 다른 선교사 고에스를 통해 얻은 마테오리치는 오르텔리우스의 지도책을 바탕으로 자신이 발견한 동아시아 지역의 지리적 정보를 첨가시킨 새로운 지도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각고의 노력 끝에 1602년 마테오리치에 의해 완성 공개된 ‘곤여만국전도’는 한반도의 포함은 물론 동시대 중국인들의 전통적 세계관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세계지도였다.

육림의 날 제정

내용시작국토의 7할(割)이 산지인 우리나라는 산림녹화가 우리의 살림과 국력을 부강하게 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산림자원의 효율적인 관리는 자원을 얻는 직접적인 효과 이외에도 홍수방지, 방풍, 눈사태 방지, 물고기와 산짐승의 거처 제공 등 인간과 자연생태계에 전반에 걸쳐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정부시책으로 애림녹화운동을 전개해 왔으

며 매년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하고 이날을 공휴일로 하여 애림사상(愛林思想)을 보급시키고 전국적으로 기념식수를 하여 산야(山野)를 녹화(綠化)하기에 힘써왔다. 이와 더불어 산림자원을 관리 육성하는 기술을 연구 개발, 체계적인 국토녹화(綠化)의 기틀을 마련함과 동시에 1977년 10월 7일(이후, 매년 11월 첫째 주 토요일)을 육림의 날로 지정하여 범국민적인 녹화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애림녹화 운동 상세정보보기

 우표문화장터”를 아시나요?

내용시작지난 1998년 우정사업본부(당시 정보통신부)는 세계 각국의 우표를 쉽게 사고 팔며 우표수집의 즐거움과 우표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우표문화거리'를 10월10일부터 서울중앙우체국 주변, 1백미터 공간에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우표문화거리는 매주 토요일

(오후1시∼7시)과 일요일(정오∼오후6 시)에, 동절기(11월∼2월)에는 폐장시간이 1시간 앞당겨진 오후 5시 였다. 이 곳, 우표문화거리에서는 각종 우표류는 물론 우취제품, 기념주화, 공중전화카드, 엽서·봉투류 등을 판매하고 또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해 매주 1회 우취강좌,

월1회 우표경매도 함께 열어 수집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돌아오는 10월 13일부터 17일까지 5일간은 서울중앙우체국 문화광장에서 “우표문화장터”가 열릴 계획이어서 다양한 볼거리 제공을 통한 우표류 벼룩시장이 도심 속, 마음의 휴식처가 되는 열린마당이 되기를 고대해 본다.

우표문화거리 개장 기념엽서 상세정보보기

정치
신성동맹 함대, 투르크 격파(레판토 해전)

내용시작1571년 오스만 함대는 레판토(Lepanto) 해전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패배를 맛보았다. 투르크 제국과 기독교 연합 함대 사이에 벌어진 이 전투는 지중해가 오스만제국 역사의 무대였던 기나긴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키프로스 섬의 영토권을 주장하던 투르크의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여기에 그동안 지중해의 해상권을 빼앗긴 채 많은 억압을 받아왔던 기독교세력의 불만이 겹쳐 결국 베네치아, 제노바, 에스파냐의 신성연합함대가 투르크 제국의 함대와 정면으로 충돌한

1972년 모나코발행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그려진 백색기를 단 기독교 연합 함대와 코란의 문구를 금색으로 장식한 백색기를 든 술탄의 군사들은1571년 10월 7일 그리스 앞바다에서 일전을 벌였다. 4시간여의 짧은

전투 끝에 시성동맹의 대형 범선들이 위력을 발휘했으며, 오스만 해군 전사자 2만 5천 명, 신성동맹해군 전사자 7천 명으로 연합함대측의 대승으로 막을 내렸다. 이 전투로 인하여 에스파냐 함대는 오스만

함대를 물리치고 지중해마저 제패하여 에스파냐 무적함대의 이름을 얻었으며, 서양 문명이 이제 물리력에서 세계 최강의 지위에 올랐음을 분명하게 입증하는 사건으로 알려지고 있다.

쌍십절, 중국 신해혁명(辛亥革命) 발발

내용시작중국역사상 20세기에 접어 들면서 청조의 몰락은 거역할 수 없는 대세였다. 1911년 10월 10일, 양쯔강 중류지역에 위치한 우창(武昌)에서 혁명파 군인들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즉, 신해혁명(辛亥革命)이 시작된 것이다. 이튿날 혁명군이 우창·한커우(漢口)·한양(漢陽)의 우한(武漢) 3진(鎭)까지 장악, 혁명의 봉화를 지피자 중국 전역은 혁명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1개월 만에 12개 성이 혁명진영에

가담하자 청조는 베이징 군벌 위안스카이(袁世凱)를 총리로 임명, 진압에 나섰다. 위안(袁)은 한커우와 한양을 탈환했으나 곧 혁명군과 타협을 모색했다. 임시대총통 자리를 내주겠다는 혁명군의 제의를 받은 마당에 굳이 승산도 불투명한 내전에 뛰어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혁명군도 힘의 열세를 느끼고 있었다. 1912년 1월 1일, 난징에서 중화민국 수립이 선포되고 쑨원이

임시대총통으로 취임했지만 쑨원은 3월 11일 위안에게 대총통직을 이양했다. 이미 2월 12일에 청조 마지막 황제 푸이가 황제직을 내놓아 286년간에 걸친 청조가 무너진 뒤였다. 그러나 신해혁명은 국민의 참여가 뒷받침되지 않은 미완의 혁명으로 기록된다. 신해혁명 발발일인 10월 10일은 일명 쌍십절(혹은 쌍십국경일)이라 불리며 중화민국의 건국 기념일이다.

조선 태조(太祖) 이성계 출생

내용시작고려의 우군 도통사를 맡았던 이성계(李成桂, 1335.10.11 ~ 1408.5.24)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1392년 7월 17일 고려의 마지막 왕이었던 공양왕의 왕위를 물려받아 새 왕조를 건국하였다. 그 왕조의 이름이 조선이다. 태조 이성계는 1932년 8월 13일 (음력 7월 17일) 즉위한 이래 국가 통치체제를 정비하고자 수도를 개경(현재의 개성)에서 새로운 곳으로 옮길 필요성을 느껴

고려왕조의 수도였던 개성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새로 옮겨 대한민국 서울의 기반을 마련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성계는 사대주의(事大主義), 배불숭유(排佛崇儒), 농본주의(農本主義)를 건국이념으로 삼아 조선 500년의 근본 정책이 되게 하였고 관제의 정비, 병제(兵制)와 전제(田制)의 재조정 등 초기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업적을 남겼다.

서울천도 600주년 기념 상세정보보기

문화
예술가들의 집합소, 물랭루즈 개장

1976년 그라나다 발행

내용시작파리의 몽마르트 근처에서는 일찍이 19세기에 전설적인 융성을 보인 샤·느와르(검은 고양이)로 불리는 카바레가 있어 에릭 사티나 피카소 등, 몽마르트에 사는 유명한 예술가들의 집합소가 되었다. 이중 프랑스 문화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고급 캬바레 물랭 루즈가 특히 유명하다. 카바레란, 본래는 댄스나 코미디 쇼 등 퍼포먼스를 하는 무대가 있는 레스토랑이나 나이트클럽을 말한다. 1889년 10월 6일 파리박람회 당시 문을 연 물랭 루즈는(불어로 ‘붉은 풍차’라는 의미의, 실제로 지붕 위에 붉은 풍차가 있다) 커다란 무대 위에서 노래와 댄스, 특히 매혹적인 ‘프렌치 캉캉’춤으로 많은 손님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후기 인상파 화가였던 툴루즈 로트렉이 작품의 소재로 삼기도 했던 이곳은 1914년 화재로 인하여 전소되었고 현재는 1818년 개축된 건물로 이어져 오고 있다. 프랭크 시나트라, 이베트 길베르, 잔느 아브릴, 에디뜨 피아프 등이 활동했으며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파리의 관광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20세기 음악 아이콘, 존 레논 출생

내용시작존 레논(John Ono Lennon, 본명 존 윈스턴 레논, John Winston Lennon, 1940.10.9 ~ 1980.12.8)은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나 영국의 세계적 4인조 록그룹인 비틀즈의 기타

리스트겸 싱어이자 작곡가로 활약 하였다. 그의 창조적인 이력은 솔로 음악인으로써 뿐만 아니라 또한 정치적 행동주의자, 화가, 배우 그리고 저자로서의 역할을 소화해 냈다. 전설적인 레논-매카트니 작곡

팀의 한 축으로써 그는 더 진지하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음악에 담음으로써 록 음악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실로 그의 음악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음악적 아이콘으로 불릴만 하였다.

1995년 버키나파소 발행

영국에서 활약한 미국 역사화가, 웨스트

내용시작미국 태생의 역사화가 웨스트(Benjamin West, 1738.10.10~1820.3.11)는 역사·종교·신화를 주제로 그림을 그려 영국의 역사화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왕립 아카데미(1768 창설)의 창설자인 조지 3세(1772~1801)의 역사화가였으며, 왕립 아카데미의 창립회원(1768)이었고 1792년에 조슈아 레이놀즈 경에 이어 그곳 원장이 되었다. 미국태생으로서 미국에 충성하는 입장이면서도 1801년까지 줄곧 영국 국왕의 총애와 후원을 받았다. 1802년에 파리를 방문하여 “창백한 말을 탄 죽음의 신, Death on the Pale Horse(1802경)”의 최종 스케치를 전시

1983년 미국 발행

했는데 이 작품은 프랑스 낭만파 회화의 도래를 예고했다. 미국에는 다시 돌아간 적이 없지만 워싱턴

올스턴, 길버트 스튜어트, 찰스 윌슨 필, 존 싱글턴 코플리 등을 통해

19세기 전반 미국 미술의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한국 언론사상 최장기 연재만화 '고바우 영감'을 그린 김성환

내용시작한국만화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만화가 김성환(1832.10.8 ~ )은 1951년 대구 피난지에서 나오던 〈만화신보〉에 처음으로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1955년 〈동아일보〉에 연재만화 '고바우 영감'을 통해 해방 후 처음으로 본격적인 신문연재만화를 실었다. 1950년대에서 1970년대의 암울한 시대적 분

위기를 서민의 애환과 더불어 코믹하게 묘사하여 신문연재만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1958년 유명한 '경무대사건' 등 몇 번의 필화를 통해 일부삭제 또는 전면삭제의 어려움을 겪었다. 2차례에 걸친 유화전·데생전을 포함한 4차례의 개인전을 가졌고 만화와 회화의 벽을 허무는 데도 이바지했다. 김성환의

'바우영감'은 한국 언론사상 최장기 연재 4컷 만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올해로 100주년을 맞아 ‘고바우영감’을 비롯한 ‘달려라하니’, ‘아기공룡둘리’, ‘맹꽁이서당’, ‘로봇찌빠’ 등의 만화를 소재로 한국만화100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하였다.

만화시리즈(두번째묶음) 상세정보보기

과학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지구의

내용시작 독일 바이에른(바바리아)주(州) 제2의 도시 뉘른베르크의 박물관에는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지구의가 하나있다. 1492년 독일의 항해가이자 지리학자인 베하임(Behaim, Martin, 1459.10.6 ~1507)이 만든 이 지구의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지구의로서 신대륙발견 이전의 세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동시대 유럽인이 가졌던 세계관은 그리스의 천문학자이며 지리학자인 프롤레마이오스에 의해 쓰인 ‘지리학’에 머물고 있었다. 이 세계관은 기독교 중심적인 신앙사상과 맞물려 몹시 왜곡된 형태의 모습을 창조하게 되었고 더불어 이에 영향을 받은 베하임의 지구의는 당시 포르투갈의 탐험영역에 비취서도 부정

1992년 독일 발행

확한 면이 많이 있었다. 일찍이 무역업에 종사하였던 베하임은 1485년경부터 포르투갈의 국왕 주앙2세의 항해 고문관으로서 아프리카 서해안을 두 차례에 걸쳐 탐험하였다. 1490년 독일로 돌아온 베하임은 화가의 도움을 받아 지구의를 제작하기 시작 하였는데, 당시의 경험과 함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

문록에 나타난 카타이(중국)와 지팡구(일본), 그리고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희망봉까지만 표시한 지구의를 제작한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콜럼버스가 서쪽항로를 개척하는데 베하임의 영향이 컸다는 것이다. 콜럼버스는 신대륙 항해 이전 여러 참고 서적과 더불어 베

하임의 지리적 정보를 참고하여 서쪽항로에 관한 확신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베하임은 유럽과 아프리카 서해안, 그리고 아시아의 동쪽 끝만 그려진 둥그런 지구의를 남겼고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발견한 신대륙을 인도의 일부로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금주의 노벨상

노벨평화상 폴란드의 자유노조 지도자 레흐 바웬사

내용시작 공산 폴란드 최초의 자유노조인 ‘연대’의 전국위원회 의장을 지낸 레흐 바웬사(Wałesa, Lech, 1943~ )가 1983년 10월 5일 폴란드의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비록 초등학교와 직업학교 교육만 받은 그였지만, 1967년 레닌 조선소 전기공 시절, 거리 시위를 하던 사람들이 총에 맞고 쓰러지는 것을 목격하고 폴란드의 참된 자유노조를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결국 바웬사는 1980년 파업을 주도하면서 동구공산권에서 최초로, 지금은 불법화된 자유노조를 탄생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후 바웬사는 1990년 마조비에츠키와 대결해 압도적인 표차로 폴란드의 초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이후 경제개혁의 부작용으로 실업이 증가하고 경제난이 가중되는 등 국민의 불만과 시위가 확산되자 의회를 해산하고 1993년 9월 총선거를 실시, 신정부를 출범시켰으나 1995년 대통령선거에서 전 공산당원 A.크바스니에프스키에게 패배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노벨문학상 세인트루시아의 시인 데릭 월콧

2002년 세이트루시아 발행내용시작 영국령 세이트루시아에서 출생한 시인이자 극작가인 데릭 올튼 월코트(Derek Walcott, 1930 ~ )는 영국인 아버지와 아프리카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쌍둥이로 태었났다. 자신의 시에서 스스로를 분열된 아이라고 표현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집안의 개신교 전통과 로마 카톨릭 문화 사이에서, 또한 자신의 핏줄 속에 녹아 있는 순수한 아프리카 문화와 토속적인 카리브 해외문화, 서구 유럽의 문화 사이에서 깊은 정신적 고뇌를 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 배경은 평생 시인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시의 모티프가 되어 그의 시 세계의 특징을 이룬다. 그를 노벨상 수상자로 이끈 작품인 “오메로스(Omeros, 1990)”는 다양한 문화가 서로 갈등하고 삼투하는 과정과 서로 다른 문화와 문학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탁월하게 소화하고 있다. 이 작품으로 월콧은 1992년 10월 8일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화학상 독일의 유기화학자 피셔

내용시작 쾰른 근교에서 출생의 독일 유기화학자 피셔(Emil Fischer, 1852. 10. 9 ~ 1919. 7. 15)는 1902년 당(糖)과 퓨린기에 관한 연구를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1881년 그는 퓨린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해 요산(尿酸)·크산틴·카페인·테오브로민 및 다른 질소화합물과 단일 물질인 퓨린에 대한 관계를 설명했다. 1883년에 시작된 당류(糖類) 연구는 유기화학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입체화학 관계에서 오는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프룩토오스(과당)·글루코오스(포도당) 등 다른 많은 당의 분자구조를 결정했으며, 이 화합물들을 합성함으로써 자신의 결과를 증명했다. 그는 또 효소를 비롯한 단백질의 화학적 성질에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는 본대학교와 스트라스부르대학교에서 공부한 후 1892년 베를린대학교 화학교수가 되었다. 1890년 영국 왕립학회에서 수여하는 데이비 메달을 받았으며, 1899년 외국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노벨문학상 위대한 프랑스 소설가, 모리악

내용시작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노력한 만큼 가치가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 · 수필가 · 시인 · 언론인으로 활동한 모리악(François Mauriac, 1885. 10. 11 ~ 1970. 9. 1)은 195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모리악은 현대 생활의 추악한 현실을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조명한 프랑스 가톨릭 작가들의 계열에 속한다. 그의 주요 소설들은 끊임없이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벌어지는 음울하고 준엄한 심리 드라마로 펼쳐진다. 그의 모든 작품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죄악·은총·구제라는 문제와 씨름하는 종교적 영혼을 대두시키고 있다. 유명한 논쟁가로도 불리는 모리악은 1930년대에는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를 비난하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파시즘을 규탄하면서 정력적으로 논쟁에 뛰어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레지스탕스 작가들과 함께 일했고, 전쟁이 끝나자 정치 토론에 점점 더 많이 참여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마르셀 프루스트 이후의 위대한 프랑스 소설가로 인정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미국 흑인 여류소설가, 모리슨

내용시작 1993년 10월 7일 미국의 흑인여류작가 토니 모리슨(Morrison, Toni, 1931.2.18 ~ )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토니 모리슨을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스웨덴 왕립아카데미는 "환상의 힘과 시적 함축으로 특징지어지는 소설을 통해 미국의 현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적인 정수를 살려냈다"고 밝히고, 또 "토니 모리슨이 서사시적 힘을 갖고 있으며 대화에 올바르게 귀를 기울였고 미국 흑인을 풍부하게 묘사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가장 푸른 눈'으로 문단에 등장한뒤 '사랑하는 사람' '재즈' 등 6편의 소설과 다수의 수필을 남겼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토니 모리슨은 여성의 시점으로 미국 흑인의 역사와 삶을 그려왔지만, 흑백문학을 통틀어 미국의 현대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혀왔다. 미국작가로서는 10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리슨은 지난 1970년 소설 '가장 푸른 눈'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고, 1987년 '사랑하는 사람'으로 퓰리처상을 받는 등 이미 미국문단에서 스타급 작가로 대접받았다.

온라인미술관
이탈리아의 신비주의 조각가 그레코
1974년 산마리노 발행

내용시작그리스에서 출생하여 이탈리아에서 조각가로 활동한 그레코(Emilio Greco, 1913.10.11~1995.4.5)의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폴로스(Domnikos Theotokopoulos)인데, 그리스인이라는 뜻의 그레코로 통칭된다. 베네치아에서 V.티치아노의 지도를 받고, 틴토레토와 B.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 정확한 자연묘사를 하였고 베네치아풍의 색채법을 사용하여 황금조(黃金調)가 아닌 흑회색(黑灰色)을 주로 사용하였다. 대부분이 종교화와 초상화였지만, 깊은 명암과 색채, 비정상적으로 길쭉한 인체묘사로 에스파냐 신비주의를 대표한다. 사후 오랫동안 그 진가가 망각되었으나 19세기 이후 재평가되어 P.세잔을 비롯한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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