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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지난 시간여행
제목 시간여행 제139호
등록일 2009. 10. 30.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광주 항일학생운동 발방 상세정보보기

이주의 이벤트와 시간여행 구독, 추천하기 시간여행 구독하기 인하여 광주고보(光州高普)학생을 위시(爲始)한 전국의 학생들이 총궐기하여 항일(抗日) 독립운동의 전개로 발전하였다. 이는 한국 학생운동의 효시(嚆矢)인 3·1운동에 다음가는 대규모 학생운동으로서 전국에서 194개교 6만여 학생들이 이 항일 독립운동에 참가하여 혹은 쇠사슬에 묶여 철창아래 갇혔고 혹은 피를 뿜고 쓰러졌으니

내용시작1929년 11월 3일은 일제(日帝)의 억압에 분연히 항거하여 광주를 비롯한 전국의 젊은 학도들이 맨주먹으로 조국광복을 부르짖고 나섰던 날이다. 광주 학생 사건으로 알려져 있는 학생운동의 발단은 당시 광주역 부근에서 발생했던

한일 학생간의 단순한 충돌을 배일사상(排日思想)의 노현으로 간주, 관계 한국인 학생만을 투옥하고 학교에서 조차 퇴학 처분을 내린데서 비롯되었다. 애초 개인적인 작은 사건으로 발단된 이 사건은 일제의 과잉대응으로

그날 조국 광복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그들의 고귀한 정신은 한국 학생운동의 귀감으로서 역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 훗날 정부는 매년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정하여 민족의 얼을 빛내었던 그들의 피 끓는 애국심과 불타는 정의감을 추모 하였다.

아동문학가 어효선

아동문학가 어효선 상세정보보기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동요 ‘꽃밭에서’와 ‘과꽃’의 작사가인 난정(蘭丁) 어효선(魚孝善, 1925.11.2 ~ 2004.5.15)선생은 아동문학가이자 수필가로서 1943년 한양중학교를 졸업하고 1945년부터 교원으로 일했다. 1949년 당시 문교부가 주최하는 가사현상모집을 통해 동요 ‘어린이의 노래’와 동시 ‘봄날’로 문단에 데뷔한 뒤, 1961년 첫 동시집 ‘비 오는 소리’를 출간하였다.

어효선 선생은 1957년 대한교과서 출판부장을 거쳐 소년조선일보, 소년동아 등의 편집위원을 지냈으며 소박한 서정과 자연을 맑고 깨끗하게 표현한 동시들을 다수 발표하였다. 그밖에 서민들의 인정과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수필과 ‘밝은 해 민주공화국’ ‘카톨릭 소년(19651)과 같은 동화들도 다수 남겼다. 1971년 한정동 아동문학상, 1986년 대한민국 문학상 등을 받았다.

사회
만국우편연합 조약체결

내용시작근대의 우편제도가 시행된 초기에는 받는 사람이 우편요금을 지불하도록 되어 있었다. 17세기에는 몇몇 유럽국가들간의 우편교환에 대한 쌍방합의로 최초의 세계우편조약이 체결되었으며, 19세기에 들어와서 무역과 상업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쌍방간의 우편교환조약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수 없게 됨으로써 세계우편서비스의 질서와 단일화를 추구하기 위한 우편개혁

만국우편연합 조약체결 상세정보보기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필요에 의하여 1874년 스위스 베른에서 22개국의 대표가 모여 독일의 하인리히 폰 슈테판이 기초한 조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우편에 관한 모든 업무의 조직 및 완성을 보장하고 이 분야에서 국제협력의

촉진을 목적으로 하는 이 조약에 따라 'General Postal Union' (일반우편연합)이 탄생하게 되었으며, 그 후 1878년 제2차 파리총회에서 'Universal Postal Union' (만국우편연합)으로 그 명칭을 새로이 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874년 체결된 최초의 조약은 편지에 한하여 국한되며 소포우편, 국제우편환 등의 기타 업무는 서명국에 대해서만 구속력을 가지는 추가협정들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

 유네스코(UNESCO) 발족_유네스코 헌장 발효

유네스코(UNESCO) 발족_유네스코 헌장 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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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11월 4일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가 창립되었다. 유네스코는 교육, 과학, 문화를 통하여 각 국민 간의 이해와 협력 활동을 촉진하므로서 세계 평화와 안전에 공헌하려는 목적으로 조직된 UN기구 중의 하나로 1945년 11월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주체로 런던에서 열린 유네스코창설 준비위원회에서 44개국 정부대표에 의해 유네스코헌장이 채택되었으며, 1946년 11월 20개 서명 국가들이 헌장비준서를 영국 정부에 기탁함

으로써 탄생되었다. 이 기구는 인류 발전을 위하여 첫째로 세계 각국의 교육, 과학, 문화에 대한 정보수집 및 교환, UN과 그 전문기구에 대한 협조, 인권옹호와 국제협력의 촉진, 장학생파견, 자연자원개발 등의 사업을 하고 둘째로 특정 지역에 관계되는 특수 사업으로 의무교육 확장계획실시, 성인 교육 및 신생활 교육의 보급, 인종 및 사회적 국제긴장의 완화, 동양과 서양문화 가치의 상호 이해 촉진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이 기구는 총회, 집해위원회, 사무국 등 3기관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전 세계 120여개 국가에는 각각 국내위원회가 조직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1950년 8월 14일에 동 기구에 가입했으며 1953년 7월 6일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정식으로 발족되어 유

네스코의 목적과 사업계획을 국내에 보급실시하고 교육, 과학, 문화 활동을 적극 뒷받침하기 위하여 정부 및 관계기관에 건의 또는 자문하며, 필요한 자료의 수집, 조사, 연구 및 이의 국내 또는 국제간의 상호교환, 연구회, 공개강좌, 전시

회의 개최, 원조도입, 출판활동, 인물교류, 국내 학자의 해외파견 등 광범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활동을 범국가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한국위원회는 지방 주요 도시에 지방 유네스코 협회를 두고 있으며 각 대학교에는 유네스코 학생협회가 조직되어 있다.

한국, UN 식량농업기구 가입

내용시작현재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불리는 하버드가 1663년 10월 28일 설립되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 시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인 하버드는 식민지시대 목사양성을 위한 종교교육기관으로 그 첫 발을 내딛었으며 독립 이후 전문적

학문연구 기관으로 탈바꿈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39년 도서와 유산을 기증한 J.하버드 목사의 이름을 따서 하버드로 명명되었으며 현재 미국 대학 교육과정의 원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 UN 식량농업기구 가입

농구 창시자, 네이스미스

농구 창시자, 네이스미스

캐나다 출신의 미국의 체육가, 농구(籠球)의 고안자로 알려진 네이스미스(James Naismith, 1861.11.6.~1939.11.28)는 1891년 스프링필드대학의 체육학과 학장인 루더핼시 굴릭2세의 임용으로 체육 전임강사가 되었다. 겨울에 실시하는 지루하고 위험한 운동 대신, 재미있고 안전한 실내경기를 고안하라는 학장의 지시를 받은 네이스미스는 미식축구, 필드하키 등의 야외운동의 특징을 선택하

여 이론적으로는 신체접촉을 없게 한 운동을 착안해 냈다. 그것이 바로 농구의 시초가 되었다. 1898년 콜로라도 주 덴버에 있는 그로스의과대학(콜로라도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캔자스대학 체육학과 주임교수가 되어 농구를 지도했다. 네이스미스를 기념하여 스피링필드대학에는 농구의 전당이 세워졌다.

캐나다의 탐험가, 민족학자 스테판손

내용시작캐나다의 탐험가 스테판손(Vilhjalmur Stefansson, 1879. 11. 3~1962. 8. 26)은 에스키모들의 생활방식을 습득한 뒤 방대한 캐나다권 북극지역들을 5년 동안이나 탐험했다. 아이슬란드인의 후손인 스테판손은 1906~07년 에스키모와 함께 지냈고, 이를 통해 에스키모들의 언어·문화에 대해 깊이 알게 되었

으며, 유럽인들도 에스키모들의 생활방식을 받아들임으로써 북극에서 '살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1908~12년 캐나다의 동물학자인 루돌프 M. 앤더슨과 함께 캐나다 북서부지역, 매켄지 강과 코러네이션 만의 코퍼 에스키모인들에 대한 민속지 연구와 동물학을 연구했다..

한캐나다의 탐험가, 민족학자 스테판손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 기공식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 기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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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시작서울시는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를 치루게 될 상암지구 월드컵 주경기장 명칭을 `서울 월드컵 경기장`으로 확정짓고 1998년 11월 6일 김대중 대통령과 고건 서울시장 등 관계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공식을 가졌다. 2001년 12월쯤을 완공으로 한 주경기장은 보조경기장을 합쳐 4만6천7백평에 건물면적 1만7천7백70평 규모로 연면적이 3만8천3백70평에 달하며, 주경기장은 지상6층, 지하1층, 최고높이 48.3m 규모의 직사각형모양으

로 건설되며, 이 안에 길이 1백5m, 폭 68m의 천연잔디구장이 들어서게 된다.경기장의 외양은 우리민족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21세기의 희망을 담을 수 있는 `전통소반`과 `팔각 모반`을 두겹 겹쳐놓은 상태로 형상화되었고,

경기장의 전체 이미지를 마포나루에 드나들던 황포돛배가 모여있는 모습으로 표현하며 경기장 지붕은 우리나라의 이미지와 문화를 띄운다는 의미로 전통 방패연의 모습으로 형상화 하였다

포나루에 드나들던 황포돛배가 모여있는 모습으로 표현하며 경기장 지붕은 우리나라의 이미지와 문화를 띄운다는 의미로 전통 방패연의 모습으로 형상화 하였다.

정치
유혈사태 없었던 시민혁명, 영국 명예혁명

유혈사태 없었던 시민혁명, 영국 명예혁명

내용시작의회정치 발달의 기초를 확립하는 계기를 마련한 영국의 명예혁명(名譽革命, Glorious Revolution, 1688~89년)은 제임스2세의 폭정에 불만을 품은 시민혁명으로써 유혈(流血)사태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게 되었다.1685년 왕위에 오른 제임스 2세의 가톨릭교 부활정책과 전제주의, 상비군 설치 등으로 국민들의 반감을 사게 되었

다. 이에 영국의회는 영국의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네덜란드 총독 윌리엄, 메리 부처를 초대 하였다. 그들은 1만 5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영국 남서부에 상륙하여 런던으로 진격하며 국내 귀족과 지방호족들 진영 합류를 이끌어 내었으며,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 왕이 파견한 처칠도 왕을 배반하고 윌리엄 진영에 투항하고,

왕의 둘째딸 앤도 윌리엄군(軍)에 가담하였다. 이렇게 되자 왕은 국외로 망명할 것을 결심하고, 왕비와 왕자를 프랑스로 도피시킨 뒤 그도 뒤따라 망명하였다. 런던에 입성(入城)한 윌리엄 부처에게 1689년 2월, 의회에서는 ‘권리선언(權

利宣言)’을 제출하여 승인을 요구하였다. 부처는 그것을 인정한 다음, 윌리엄 3세, 메리 2세는 공동으로 왕위에 올랐다. ‘권리선언’은 뒤에 ‘권리장전(權利章典)’으로서 재차 승인을 받았다. 이 장전의 원칙에 나타나 있듯이, 이 혁명은 17세

기의 왕권과 의회의 항쟁에 종지부를 찍게 하였고, 종래 의회의 권리를 수호함과 동시에 왕위계승까지도 의회가 결정할 수 있게 하여, 그 뒤 의회정치 발달의 기초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군사재판, 김대중에 사형선고

군사재판, 김대중에 사형선고

내용시작제15대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金大中, 1924.1.6~2009.8.18 )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투쟁 일화는 이미 널리 알려진 것처럼 파란마장 했다. 그 중의 하나로, '5.17 계엄확대 조치'와 함께 '사회불안조성 및 학생-노조소요의 배후조정'혐의로 연행된 김대중은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 반공법, 계엄법, 외환관리법 위반혐의로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에 기소돼 19

김 전대통령은 1999년 5월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인’ 중 공동 1위에 선정되었으며, 당해 6월에는 미국 경제주간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하는 '아시아

개혁을 주도하는 지도자 5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 50여 년간 지속되어 온 한반도 냉전과정에서 상호불신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에의 새로운

장을 여는데 크게 기여한 공로로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8월 86세의 일기로 서거하였다.

문화
아카데미 프랑세즈 설립

내용시작15세기 말엽부터 16세기 전반기에 걸쳐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난 프랑스는 루이 14세 이전까지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살롱을 중심 무대로 전개된 전반기 문학과 루이 14세의 절대주의 통제 체제 아래 전개된 후반기 문학으로 나뉜다. 당시 귀족과 문인들의 정기적인 사교모임으로서 프랑스 상류사회에서 성행되던 살롱모임은 인간 본성에 관한 문제들을 즐겨 화제로 삼아 생각과 말을 세련시키며 많은 문학적 영감과 장르를 생산하는 산실로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한 살롱문화는 프랑스 문학발전에 긍정적인 부분 이외에 외국 문화에 의한 프랑스어의 전통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부정적인면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당시 루이13세 때 국무대신이었던 리슐리외

추기경에게 프랑스어의 순화를 위해 사전과 문학 서적을 간행하는 일과 문학에 대한 공식적 평가 기준을 세워야 할 필요성을 요구하였다. 리슐리외 추기경은 이 살롱을 공공기관화하기 위해서 1634년 40명의 회원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를 설립하였고 1635년에 법인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프랑스 혁명 동안에 잠시 중단된 이후 오늘날까지 유럽에 있는 많은 문학 아카데미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최고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불멸의 지성'으로 일컬어지는 40명의 제한된 회원수를 가지며 코르네유·라신·볼테르·샤토브리앙·위고·르낭·베르그송 등프랑스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설립

색소폰 발명자, 삭스 출생

내용시작 금관악기 제조업자인 샤를 조지프 삭스(1791~1865)의 아들로 태어난 삭스(Antoine-Joseph Sax, 1814. 11. 6 ~ 1894. 2. 7)는 벨기에 태생, 프랑스의 악기제조업자이자 색소폰 발명자이다. 그는 브뤼셀 음악원에서 플루트와 클라리넷을 공부했고 1842년 파리로 건너가 베이스 클라리넷을 개량해서 색소폰을 발명했는데, 이 악기는 홑리드로 된 금관악기로 원추형 관과 옥타브에서의 올려불기(overblowin

g) 등이 특징이었으며, 1846년 특허를 얻었다. 아버지와 함께 뷰글 혼을 개량한 색스혼(1845 특허), 뷰글과 트럼펫 사이의 음을 내는 색스 트롬바, 색스튜바 등을 발명하고, 공명관 속에서 진동하는 공기 기둥의 길이가 음색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857년 파리 음악원의 색소폰 강사로 임명되었고, 이후 여러 악기들을 상업적 목적이 없이 개량, 발명했다.

색소폰 발명자, 삭스 출생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 마가렛미첼 출생

내용시작 마가렛 미첼(Margaret Mitchell, 1900.11.8~1949.8.16)의 유일한 작품으로 집필기간이 무려 10년(1926~36)에 이르고, 천페이지가 넘는 대작으로 평가받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는 총 5부작으로 이루어진 대하드라마다. 남북전쟁(1861~65)과 패전, 재건시대의 급변하는 사회상을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아름답고 강인한 스칼렛 오하라의 인생과 파란만장한 사랑이야기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에 비해 연약한 이상주의자 애슐리 윌크스에 대한 스칼렛 오하라의 사랑, 물질주의적이며

행동가인 레트 버틀러와의 애증 등을 한데 엮은, 간결한 문체와 정교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발행 후 1년 동안에 150만 부가 팔렸으며 10여개 국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1936년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1939년 빅터 프레밍 감독이 비비안 리(스칼렛 역), 클라크 게이블(레트 역) 주연으로 영화화되어 아카데미상 10개 부문을 휩쓸기도 하였다. 한편 1991년 미국 소설가 A.리플리가 속편격인 '스칼렛'을 써서 40여 개국에서 번역되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 마가렛미첼 출생

과학
 핵분열 연구의 창시자, 마이트너

내용시작우라늄 분열을 발견한 오스트리아 출신 스웨덴의 물리학자 마이트너(Lise Meitner, 1878.11.7~1968.10.27)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첫 여학생으로 물리학을 전공하였다. 오토 한, 프리츠 슈트라스만 등과 협력하여 30여년 동안 방사능 연구에 몰두 하였다. 1968년 우라늄의 분열을 발견한 공로로 엔리코 페르미 상을 받았다. 그녀와 오토 한은 공동연구를 통해 프로트악티늄-231 동위원소(그들은 이를 프로트악티늄이라 불렀음)를 처음으로

분리했고, 핵이성질(核異性質)과 베타 붕괴를 연구해서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슈트라스만과 함께 우라늄에 중성자를 쏘았을 때 나오는 생성물을 연구했다. 유대인이었던 그녀는 1938년 나치 독일을 떠나 스웨덴으로 망명하였고, 1939년 1월 조카 오토 프리시와 함께 우라늄에 중성자를 쏘면 바륨이 생성되는 과정의 물리적 특성을 설명하였는데, 이 과정을 핵분열(fission)이라 하자고 제안했다.

핵분열 연구의 창시자, 마이트너

 핼리혜성의 궤도를 밝힌 영국천문학자 핼리

내용시작거상(巨商)의 아들로 태어나 17세에 옥스퍼드대학에 입학한 핼리(Edmund Halley, 1656.11.8 ~ 1742.1.14)는 1676년 대학을 중퇴하고 세인트헬레나섬에서 천체를 관측하고 거기서 수성(水星)의 일면경과(日面經過) 관측 및 진자실험(振子實驗)을 하였다. 1678년 귀국과 동시에 '행성의 궤도에 대하여'라는 논문으로 대학 졸업자격을 인정받았고, 왕립협회 회원으로 천거되었다. 1682년 출현한 대혜성(大彗

핼리혜성의 궤도를 밝힌 영국천문학자 핼리

星)을 관찰, 그것을 1531년과 1607년에도 출현하였던 혜성의 회귀(回歸)라 주장하였고, 1705년 I.뉴턴의 역학을 적용하여 그 궤도를 산정하여 《혜성 천문학 총론》을 간행하였다. 그 후 그 대혜성을 핼리혜성

이라고 불렀다. 14년 연상인 뉴턴과는 20년의 교우관계였고,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출판할때 자료의 제공과 출판비 부담, 교정을 보아주는 등 많은 협력을 하였다. 1693년 달의 운동에서 영년가속(永年

加速)을 발견하였고, 1698년 조석관측(潮汐觀測)을 시도하였다. 1703년 옥스퍼드대학의 천문학 교수에 취임,1716년 금성(金星)의 태양면 통과 관측에 의한 태양시차 결정법을 시도하였고, 1720년 그리니치천문대 대장에 취임하였다.

 프랑스 비행술 선구자, 에스노펠트리

내용시작소르본대학교에서 공학을 공부한 에스노펠트리(Robert Esnault-Pelterie, 1881.11.8~1957)는 라이트 형제의 1902년형 글라이더 복제품의 제작및 활공을 시험하면서 비행술에 도전하였다. 비행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라이트 형제의 비행원리를 비난하던 가운데 보조날개(가동 날개부)를 발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907년에는 최초의 단엽기(單葉機) 가운데 하나이며

프랑스 비행술 선구자, 에스노펠트리

혁신적인 7기통 성형기관(星形機關)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동력 항공기를 제작했으며, 이 항공기로 비행한 최장거리는 600m였다. 또

한 새로운 형태의 연료 펌프를 발명했다. 에스노 펠트리는 우주탐사에 흥미를 가지고 로켓의 고공비행에 대한 이론을 연구했다. 이를 통

해 '우주비행술'(astronautics)이라는 말을 만들어냈고, 이 분야의 업적에 대하여 매년 주어지는 상(펠 허시 상)을 제정하는 데도 기여했다.

 콩코드기 마하2의 굉속으로 53분간 순항하는 기록 수립

내용시작프랑스와 영국이 공동개발한 초음속여객기 `콩코드(Concorde)` 2대가 1976년 1월 21일 각각 100명의 승객을 태우고 처음으로 상업비행을 시작했다. 1대는 프랑스항공기로 파리를 출발 다카르를 경유해 리우데자네이루로 향했고, 또 1대의 영국항공기는 런던을 출발 페르시아만으로 향했다. 콩코드의 속도는 마하 2.25로 전장길이 62.1m, 날개길이 35.5m, 정원은 128명이었다. 1962년 양국의 콩코드 공동개

발협정 성립 이래 양국은 140억달러라는 거액의 비용을 투입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대당 가격이 약 190억달러가 됐고 더구나 초음속비행때문에 연비가 나빠 구입하려는 회사가 없었다. 콩코드는 1969년 3월 2일 첫 시험비행에, 10월 1일 초음속비행에 성공했다. 1970년 11월 4일에는 1백2번째 시험비행 만에 마하 2의 굉속으로 53분간 순항하는 기록을 세웠다.

콩코드기 마하2의 굉속으로 53분간 순항하는 기록 수립

금주의 노벨상

[노벨화학상]프랑스 유기화학자, 사바티에

[노벨화학상]프랑스 유기화학자, 사바티에 내용시작 프랑스의 유기화학자 사바티에(Sabatier Paul, 1854. 11. 5~1941. 8. 14)는 1912년 유기촉매 합성에 대한 연구, 특히 수소화반응에서 니켈을 촉매로 사용하는 방법을 발견한 공로로 빅토르 그리냐르(Victor Grignard, 1871.5.6~1935.12.13)와 함께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1884년 툴루즈대학 교수로서 물리학을 가르치며, 물리학과 화학의 경계 영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1897년 J.B.상드랑과 함께 환원니켈을 접촉제로 하고 벤젠에 수소를 첨가하여 쉽게 시클로헥산을 얻는 데 성공하였다. 그로부터 여러가지 환원금속을 써서 유기화합물 전반의 접촉환원을 계통적으로 연구하여 유기화학에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 이 방법으로 마침내 경화유공업은 확고한 이론적 기초를 마련하게 되었다.

[노벨문학상] 프랑스 소설가겸 극작가 카뮈

[노벨문학상] 프랑스 소설가겸 극작가 카뮈 내용시작사르트르와의 친교관계로도 주목받으며, 시사평론을 하면서 청년층의 절대적인 인기를 얻었던 알버트 카뮈(Albert Camus, 1913.11.7~1960.1.4)는 1913년 알제리에서 태어난 카뮈는 이듬해 아버지를 여의고 빈곤하고 어두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결핵과도 싸워야 했던 그는 학업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문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특히 그의 스승 Jean 그르니에의 영향으로 철학에 깊이 눈뜨게 된다. 연극에도 심취하였던 그는 극단에 관계하기도 하였으며, 한때는 공산당에 가입하기도 하였다. 카뮈는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며 모랄리스트이자 정치이론가로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체, 나아가서는 전세계에서 그의 세대의 대변가이자 다음 세대의 스승으로 추앙되었다. 그의 글들은 주로 낯선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는 개인의 소외, 악의 문제, 그리고 죽음이라는 임박한 파국을 이야기함으로써 전후 지식인들의 소외 의식과 환멸을 정확하게 반영했다. 주요 작품으로 '이방인, 異邦人(1942)', '시지프의 신화(1942)', '페스트(1947)', '전락, 轉落(1956)' 등이 있다. 195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 자신이 노벨상평가위원이었다면 앙드레말로()에게 표를 던졌을 것이라며 겸손함을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3년후 그의 최초의 장편소설 '최초의 인간'을 집필하던 중,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노벨생리/의학상] 핵물리학의 어머니 퀴리

[노벨생리/의학상] 핵물리학의 어머니 퀴리 내용시작핵 물리학의 어머니 혹은 라듐의 어머니로 일컬어지는 폴란드 태생 프랑스의 물리학자 퀴리(Marie Curie, 1867.11.7~1934.7.4)는 H. 베크렐과 그녀의 남편인 피에르 퀴리와 함께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으며, 1911년 단독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는 등 노벨상을 2번 받은 여성으로 유명하다. 퀴리 부부는 방사능을 함유한 '라듐'을 발견하였다. 마리는 방사능의 성분을 연구하여 두 가지 성분을 발견하였는데, '라듐'과 '폴로니움'이다. 이 연구로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는데, 여성으로서는 최초에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다. 남편과 사별한 뒤에도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마리는 방사능의 성분 연구에 계속하였고, 1911년에는 두번째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한 사람이 두 번이나 노벨상을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1914년, 퀴리는 프랑스의 파리에 라듐 연구소를 설립하였고, 얼마 후 라듐 연구소는 그녀의 업적을 기려 '퀴리 연구소'로 명칭을 바꾸어 운영되었다. 1934년에 백혈병으로 생을 마감한 퀴리의 업적을 기려 여성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그녀의 남편과 함께 파리 팡테옹 신전으로 이장되었다.

온라인미술관
이탈리아 화가들의 모범, 레니
이탈리아 화가들의 모범, 레니 이탈리아 화가들의 모범, 레니

내용시작카남(南)이탈리아의 레조디칼라브리아 출생의 미래파 조각가 보초니(Umberto Boccioni, 1882.10.19~1916.8.16)는 1898∼1902년 로마에서 활동하던 중 전위파(前衛派) 화가인 G.발라 및 G.쇠라의 영향을 받고 파리에 갔다가 러시아를 거쳐서 귀국하였다. 1910년에 시인 F.마리네티 및 G.세베리니를 중심으로 한 '미래주의 선언(未來主義宣言)'에 참가하여, 이 파의 가장 중요한 화가·조각가·이론가로서 활약하였다. 과거의 전통에서 벗어나 기계문명·스피드·폭력·감각의 세계를 찬미한 매력적인 새 형식을 시작하여 전위파의 문을 열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에 출정하여 33세로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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