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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여행

인물과 역사를 바로 알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봄으로써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 봅시다.

지난 시간여행
제목 시간여행 제157호
등록일 2010. 3. 8.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기미독립선언 상세정보보기

이주의 이벤트와 시간여행 구독, 추천하기 시간여행 구독하기 내용시작1966년 3월 14일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된 강강술래는 해마다 음력 8월 한가윗날 밤에, 곱게 단장한 부녀자들이 수십 명씩 일정한 장소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원형으로 늘어서서, '강강술래'라는 후렴이 붙은 노래를 부르며 빙글빙글 돌면서 뛰노는 놀이이다. 강강술래를 할 때는 목청이 좋은 여자 한 사람이 가운데 서서 앞소리를 부르면, 놀이를 하는 일동은 뒷

소리로 후렴을 부르며 춤을 춘다. 유래는 임진왜란 때, 당시 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이 수병을 거느리고 왜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 적의 군사에게 해안을 경비하는 우리 군세의 많음을 보이기 위하여, 또 왜군이 우리 해안에 상륙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하여, 특히 전지부근의 부녀자들로 하여금 수십 명씩 떼를 지어, 해안지대 산에 올라, 곳곳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돌면서 '강강술래'라는 노래를 부르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싸움이 끝난 뒤 그곳 해안 부근의 부녀자들이 당시를 기념하기 위하여, 연례 행

사로서 '강강술래' 노래를 부르며 놀던 것이 전라도 일대에 퍼져 전라도 지방 특유의 여성 민속놀이가 되었다. '강강술래'라는 말은 한자의 '强羌'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말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강강'의 '강'은 주위 ·원이란 뜻의 전라도 방언이고, '술래'는 한자어로 된 '(순라)'에서 온 말로서 '경계하라'는 뜻이니, 이는 '주위를 경계하라'는 당시의 구호인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 주위의 뜻인 '강'이 둘 겹친 것은 특히 주위에 대한 경계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술래'가 '수월래'로 들리며,

그렇게 기록되기 쉬운 것은, 진양조(또는 진양)로 길게 뽑을 때 '수월래'로 들리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그러므로 표기는 '강강술래'라고 하는 것이 옳다.

숭례문 중앙통로 개방

내용시작도산공원은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에 자리한 근린공원이다. 1970년 3월 10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 이 나라 자주와 독립을 위해 바친 위대한 애국정신과 민중의 교화를 위한 교육정신을 국민의 귀감으로 삼게 하고자 도산공원을 조성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에 서울시는 1973년 강남구 신사동에 약 1만여평 공원을 조성하고, 망

우리 공동묘지에서 선생의 유해를 이장하는 동시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부인 이혜련 여사의 유해를 옮겨와 합장하였다. 그 후, 성동구 청담동에서 논현동에 이르는 노폭 50m 연장 3250m의 신설가로를 도산대로로 명명하였다.

숭례문 중앙통로 개방

사회
‘낙동강 페놀오염사건

내용시작1991년 3월 14〜15일 8시간 동안 구미공업단지 내 두산전자에서 가전제품용 회로기판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페놀 원액 30t이 배관 손상으로 누출되어 낙동강 수원지로 유입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직후 누출사실에 대한 두산측의 보고가 늦어지고 페놀이 원수검사 항목에 들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 수원지에서는 원수에 페놀이 함유된 사실을 발견하지 못한 채 살균제인 염소를 투입했고, 그 결과 페놀과의 화학반응으로 생성된 심한 악취성 클로로페놀이 대구광역시 내 각 가정에 송수되면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하천의 수질관리와 수원지 관리의 문제점이 전면적으로 부각되었고 환경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국민들의 경각심이 고조되었다.

‘낙동강 페놀오염사건

영국, ‘남자의 넥타이 착용 강요’는 성차별이라고 판결

내용시작반드시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착용 해야 했던 한 공무원이 직장을 상대로 제기한 성차별 소송에서 승소했다. 매튜 톰슨은 자신의 직장인 맨체스터 구직사무소의 동료 여직원들은 자신과 같은 복장을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내복장규정은 인권을 침해한다고 말했다. 톰슨은 "여직원들에게는 티셔츠나 축구유니폼 상의를 입는 것이 허용되는 반면, 나는 반드시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착용하도록 규정하고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자신은 행정직원이기때문에 고객들을 만나러 구직민원센터에 가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 PA 통신은 톰슨이 맨체스터 노동법원의 판결을 통보

받고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여성에게는 기대되지 않는 기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한 남성으로서, 나에게는 차별이다." 그의 고용주인 노동연금부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 "실망스럽다"며,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영국, ‘남자의 넥타이 착용 강요’는 성차별이라고 판결

북제주 빌레동굴에서 3천여년 전으로 추정되는 원시인 생활터 발견

내용시작이름이 무척 아름다운 이 굴은 제주도의 용암동굴로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동굴이다. 우선 이름자체가 평평한 암반을 뜻하는 제주도 말인 빌레와 연못의 못이 합쳐져, 이 동굴이 연못과 관련이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동굴 주위에는 중산간지대 수풀속에 가리워진 두 개의 연못이 조용히 자리잡고 있으며 이 주위에 동굴이 있기에 빌레못 동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리고 이 동굴에서는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주거 흔적이 발견되어 그 굴의 역사가 결코 녹록치 않게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북제주군 애월읍에 지하에 세상 모르게 자리잡은 이굴은 60여개의 가지굴까지 합쳐 길이가 11,749m로서 단일 동굴로서는 세계 최장이며 옛부터 "어음굴(빌레못굴)에 고양이가 들어가면 한림이나 협재굴에서 나온다"는 말이 전할 정도로 길며 그 굴이 다른 굴과 곳곳에서 연결되어 있다 한다. 1973년 몇몇 고고학 연구자들이 이들 굴을 탐사했는데 이 굴 입구에서 약 900여m 들어간 지점에서 큰곰, 붉은 사슴, 노루 등의 뼈화석과 함께 집게, 박편도끼 등 석기조각 1백여 점을 수집하였다. 이 유적은 적어도 7〜8만년 전인 중기구석기 유적으로 추정됐기 때문에 이 굴은 제주도 최초의 선사시대 사람들의 주거지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다.

북제주 빌레동굴에서 3천여년 전으로 추정되는 원시인 생활터 발견

한국 103위 순교성인 축일을 로마축일표에 의무축일로 수록할 것을 선포

내용시작1984년 7월 2일 103위 성인이 탄생함에 따라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공문을 통해 한국성인의 공경에 대한 지침을 발표했다. 지침내용은 첫째, 9월 6일 한국순교복자 대축일을 없애고 9월 20일을 한국성인 대축일로 기념하며, 각 교구에서는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며, 둘째, 복자성월 9월은 순교자성월로 지낼 것 등이다. 198

.4년 10월 14일 로마 교황청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103위 시성 로마 경축대회가 열렸다. 이듬해 3월 12일 교황은 한국순교성인축일을 세계공용 로마 축일표에 수록하고 기념하도록 선포했다.

한국 103위 순교성인 축일을 로마축일표에 의무축일로 수록할 것을 선포

미국의 체스 대가 피셔(Fischer, Bobby) 출생

내용시작국제 체스연맹에서는 최고의 체스선수에게 그랜드 마스터의 지위를 부여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바둑으로 치면 명인의 위치에 준하는 체스 최고의 지위다. 피셔(Fischer, Bobby, 1943.3.9~2008.1.17)는 1958년 15세의 나이로 이 최고지위를 획득함으로써 세계 최연소 체스 그랜드 마스터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던 피셔는 체스를 위해 학업을 그만두고 미국 전역을 다니며 수많은 체스대회를 휩쓸었다. 이후 세계대회에 진출한 피셔는 1972년 소련의 체스선수 보리스 스파스키를 물리치며 공식적으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며 최초의 미국인 챔피언이라는 영광도 함께 누렸다. 뛰어난 전술가이자 전략가로서 순발력 있는 경기를 보여주었던 피셔는 과거 냉전시대 소련의 체스선수를 꺾음으로서 미국의 영웅으로까지 추대되었다.

미국의 체스 대가 피셔(Fischer, Bobby) 출생

제1회 노동절 행사 거행

내용시작1959년 3월 10일 제1회 근로자의 날 행사가 거행됐다. 대한노총이 발족되면서 근로자의 노고를 범국민적으로 위로·격려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우리나라는 일제시대인 1920년대부터 5월 1일을 노동절로 기념해왔으나 대한노총이 발족하면서 노동조합연합회 결성일인 3월 10일을 `근로자의 날`로 할 것을 결의, 이날 행사를 처음 거행했다. 그 뒤 1963년에 제정· 공포된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에 의거, 3월 10일이 노동절 아닌 `근로자의 날`로 공식 지정됐고, 1964년부터 3월 10일 근로자의 날은 법정 유급 휴일이 됐다. 하지만 1994년 5월 1일 노동절이 공식 부활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메이 데이(May Day)`로 알려진 5월 1일 `세계 노동일`은 미국의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하는 데 성공한 날을 기념하여 정해진 날이다.

제1회 노동절 행사 거행

정치
트루먼 독트린 발표

내용시작트루먼(Truman, Harry, S., 1884~1972) 미국 대통령이 1947년 3월 12일 미국 상하 양원합동특별회의에서 `그리스·터키 원조 법안` 승인을 위해 이른바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을 발표했다. 그리스·터키가 공산주의 세력에 의해 국내외로부터 위협받을 경우 미국은 자유국가를 지키기 위해 양국에 군사원조를 실시하고 군사고문단을 파견해야 한다는 내용의 연설이었다. 트루먼은 "무장한 소수 또는 외부로부터의 압력에 저항하고 있는 자유국가 국민을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점

을 특히 강조했다. 2차대전 중 협력했던 미국과 소련의 우호관계를 파기하고 반소 반공 입장의 냉전정책을 보다 확고히 한 `트루먼 선언`이 발표되자 미국 국민들은 이를 열렬히 환영했다. 10일부터 모스크바에서 시작된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외담에 참석하고 있던 마샬 국무장관이 무장관회본국에 전화를 걸어 트루먼에게 발표배경을 묻자, 트루먼은 "법안통과를 위해 공산주의의 위험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트루먼 독트린 발표

프랑스 혁명의 중추적 역할을 한 미라보

내용시작18세기 프랑스 혁명초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던 미라보(Mirabeau, 1749.3.9~1791.4.2)는 청년시절 방탕한 생활을 일삼으며 도피생활을 해왔다. 그러나 뛰어난 언변과 정치적 감각은 그를 유명인사로 만들었고 파리의 중심에 돌아오게 하였다. 1789년 삼부회의 평민대표로 출마해 당선된 미라보는 뛰어난 언변과 화술로 평민들의 대표가 되었다. 아버지로부터 정치적 도움을 받지 못하여 어쩔 수 없는 선택에 의해 평민신분으로서 삼부회에 진출했지만 그는 제3신분과 특권계급의 싸움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국민회의 탄생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프랑스 혁명의 중추적 역할을 한 미라보

한국정부, '해외이주법' 공포

내용시작1962년 3월 9일 정부는 법률 1030호로 `해외이주법`을 공포했다. 이날 당시 보건사회부장관은 "58년 만에 다시 실시되는 이민은 주로 농업이나 광업, 기타 산업분야에서 노동하기 위해 해외로 이주하는 것이다."고 밝혔다. 3월 15일에 관민으로 구성된 4명의 시찰단은 1962년 이주대상국인 `브라질`에 현지조사를 하여 정식으로 교섭을 한 후 세부적인 모집요강을 발표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이민은 1904년부터 1906년사이에 중남미 멕시코에 약 400여명, 하와이에 3천여명 정도가 있은 후 건국 후 이번이 처음이 되는 것이었다. 해외이주법은 해외이주를 하는 자의 편의를 도모하고 해외이주절차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법률로 전문 17조와 부칙으로 되어있다. 해외이주법은 해외이주 제한, 이주자의 결격사유, 이주종류, 해외이주신고, 해외이주정책심사위원회, 해외이주 알선, 영주귀국의 신고, 해외이주자의 재산반출, 해외이주 알선업자의 금지행위, 해외이주 알선업의 등록, 등록의 결격사유 등을 규정하고 있다. 해외이주법 제정이후 9번의 일부개정이 있었다.

한국정부, '해외이주법' 공포

그리스의 정치가, 법률가 카라만리스(Karamanlis, Konstantinos, 1907.3.8~1998)

내용시작그리스의 정치가인 카라만리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학교를 겨우 졸업할 수 있었다. 아테네에서 변호사생활을 하였던 카라만리스는 정치에 뜻을 품고 정계에 입문하여 1935년 의회에 진출하였다. 뛰어난 정치적 수완과 명석한 두뇌는 곧 그의 입지를 확고히 하는 밑거름이 되었고 재선을 거쳐 1946년 노동장관으로 입각하였다. 여러 부처의 장관을 역임한 그는 1955년 총리로 선임되어 11년간 그리스정치의 중심에 있었다. 정치적 해결에 탁월한 능력을 가졌던 그였지만 1963년 키프로스에 얽힌 갈등으로 사임 후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하였다. 1974년 군사정권의 몰락과 함께 귀국한 그는 군부를 복종시키며 그리스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1995년 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그리스의 정치가, 법률가 카라만리스(Karamanlis, Konstantinos, 1907.3.8~1998)

문화
“뉴욕타임스” 발행인 옥스 출생

내용시작미국의 신문발행인인 옥스(Ochs, Adolph Simon, 1858~1935). 1896년부터 〈뉴욕 타임스 The New York Times〉를 소유하면서 이 신문을 세계적인 유력지로 성장시켰다. 옐로 저널리즘을 경멸한 그는 폭넓고 신뢰성 있는 뉴스 취재를 강조했다. 제럴드 화이트 존슨이 쓴 그의 전기 〈영예로운 거인 An Honorable Titan〉(1946)을 보면 그가 미국 신문 산업에 기여한 공헌과 폭넓은 영향을 잘 알 수 있다. 교양있는 유대계 이주민 가정의 아들로 태어난 옥스는 테네시 주 낙스빌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신문배달을 했다. 그는 1872년 낙스빌의 〈크로니클 Chronicle〉지의 인쇄소 견습공이 되었다가 뒤에는 켄터키 주 루이스빌의 〈쿠리어 저널 Courier-Journal〉지의 식자공이 되었다. 1877년에는 채터누가의 〈디스패치 Dispatch〉지의 창간을 도왔다.

“뉴욕타임스” 발행인 옥스 출생

러시아 안무가, 무용수 프티파(Petipa, Marius) 출생

내용시작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나 러시아에 귀화한 프티파(Petipa, Marius, 1819.3.11〜1910.7.14)는 유명 무용수였던 아버지와 형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발레와 인연이 깊었다. 하나의 주제를 몸으로 표현하는 기술에 대하여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감각의 소유자였던 그는 1838년 프랑스낭트에서 데뷔한 후 유럽과 미주지역을 순회하며 프랑스낭트에서 데뷔한 후 유럽과 미주지역을 순회하며 명성을 쌓았다. 1847년 러시아로 초빙된 프티파는 상트페테부르크 발레단의 최고의 남성 무용수로 활약하며 그의 전성기를 열기 시작하였다. 마린스키 극장에서 ‘파키타 (Paquita)’로 데뷔하였고 이후 창작활동에 전념 1862년 ‘파라오의 딸 (La fille du pharaon)’로 연출가로서 최고의 성공을 거두었다. 수석안무가로서 마린스키 극장에서 60년간 활동한 프티파는 차이코프스키 등과 협력하며 ‘잠자는 숲속의 미녀(The Sleeping Beauty)’, ‘호두까기 인형 (The Nutcracker)’, ‘백조의 호수(Swan Lake)’, ‘지젤 (Giselle)’을 비롯한 러시아 발레의 황금기를 이룩하며 고전발레의 화려한 양식을 완성하였다.

러시아 안무가, 무용수 프티파(Petipa, Marius) 출생

독일의 건축가겸 무대장식가 싱켈

내용시작F.길리(Gilly, Friedrich, 1772~1800)의 작품을 보고 감격하여 그에게 건축기법을 사사한 후 이탈리아에 유학하여 고전 건축을 연구하였고, 1811년에는 베를린 건축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초기에는 걸출한 그리스 양식 재흥의 디자이너로 알려졌고, 베를린의 왕립극장(Schauspielhaus, 1821), 구미술관, 포츠담의 니콜라이교회(Nikolaikirche, 1830〜1837) 등의 대표작이 있다. 그러나 중기 이후에는 자유롭고 합리주의적인 사고로 전환하였으며, 영국 여행에서 돌아온 뒤로는 영국의 픽처레스크 양식의 영향까지도 받아 독창적인 양식을 개발하여 19세기 최대의 거장으로 일컬어졌다. 그의 고전 연구에 의한 합리적 설계는 근대건축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 벽화에도 손을 대어 낭만주의적인 경향을 보였고 무대장식에도 관여하는 등 다채로운 업적을 남겼다. 저서로 “Grundlagen der praktischen Baukunst, 2권, 1834”가 있다.

브라질의 작곡가 빌라 로보스(Villa-Lobos, Heitor, 1887.3.5~1959)

스위스의 작곡가 오네게르(Honegger, Arthur) 출생

내용시작취리히와 파리의 음악원에서 공부한 후 1920년 D.미요, G.오리크 등과 ‘6인조’를 결성, 프랑스 현대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알려지기 시작한 오네게르(Honegger, Arthur, 1892.3.10~1955.11.27)는 바흐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폴리포니에 전념하는 한편, R.슈트라우스와 스트라빈스키 등의 현대적인 수법 및 재즈의 영향을 받아 견실한 구성과 대담한 어법을 융합하는 데 성공하였다. 또한 스위스인이라는 혈통도 작용하여 그의 음악에는 프랑스적인 조형감각과 독일적인 정

신성이 공존하고 있다. 오라토리오 《다윗왕》(1921) 《화형대의 잔다르크》(35) 등 깊은 신앙심에 뿌리박고 있는 종교적 극음악을 발표하는 한편, 기계문명을 반영한 《퍼시픽 231》(23)과 같은 현대적인 작품도 남기고 있다. 작품은 교향곡 ·관현악곡 ·실내음악 ·피아노곡 ·가곡 ·발레음악 ·오라토리오 ·영화음악 등 많은 분야에 걸쳐 약 200곡에 달한다. 또 저서 《나는 작곡가이다》(51)에서는 음악의 미래에 대하여 비관적인 견해를 표명, 화제를 일으켰다.

스위스의 작곡가 오네게르(Honegger, Arthur) 출생

포르투갈의 서정시인 데우스(Deus, Joao de, 1830~1896)

내용시작포르투갈 낭만주의 대미를 장식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규정된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던 성격처럼 그는 항상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였다. 형식을 거부하고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다녔던 그의 기이한 행적들은 오히려 그를 추종하는 많은 친구들을 두게 되었고 데우스는 그들에게 열심히 시를 써서 들려주었다. 인간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솔지 담백한 그의 서정시들은 젊은 시인들 사이에서 데우스를 영향력 있는 인물로 만들어주었다. 자유롭다 못해 어찌 보면 방임적인 생활을 한 덕분에 항상 경제적 빈곤에 시달렸던 그였지만 친구들로 하여금 하원의원에 추천될 정도로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1876년 읽기방법에 대한 획기적인 교육서 ‘모성독본 (Cartilha Maternal)’을 발표하며 그가 개발한 교육법의 전파자로서 인생의 전성기를 열었던 데우스는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포르투갈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남았다.

포르투갈의 서정시인 데우스(Deus, Joao de, 1830~1896)

이탈리아 작곡가 레온카발로(Leoncavallo, Ruggiero, 1858.3.8~1919)

내용시작나폴리 음악원에서 음악공부를 시작한 그는 몇 년간의 교육 활동의 이후 자작 오페라 상연의 기회를 얻으려고 노력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소규모 극장과 음식점에서 연주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던 그에게 1892년 기회가 찾아왔다. 밀라노에서 자신이 쓴 오페라 ‘어릿광대’가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남은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유명한 푸치니의 ‘라보엠’이 그가 제공한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작곡한 ‘라보엠’보다 푸치니의 곡이 성공을 하는 등 이후

이렇다 할 큰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레온카발로는 남아있는 작품들만으로도 동시대 몇 안 되는 뛰어난 문학적 감각을 가진 작곡가로서 각본을 쓰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었음을 전해주고 있다.

이탈리아 작곡가 레온카발로(Leoncavallo, Ruggiero, 1858.3.8~1919)

과학
영국의 천문학자 허셜 천왕성 발견

내용시작1781년 3월 13일 독일 태생의 영국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Friedrich William Herschel, 1738.11.5~1822.8.25)이 최초로 천왕성을 발견했다. 허셜은 멀리 떨어진 천체를 연구하기 위해 배율이 6,450배나 되는 강력한 접안 렌즈를 직접 만들었다. 그의 누이 캐롤라인 허셜도 그를 도와 1783년 발견한 성운과 1786〜97년 발견한 8개의 혜성 관측에 참여했다. 허셜은 망원경으로 2번에 걸쳐 전천의 예비 관측을

수행한 후 1781년 3번째이자 가장 완전했던 전천 관측을 하는 동안 천왕성을 발견했다. 그는 W. Ÿm슨 2세에 의해 런던 왕립학회에 소개되었고, 천왕성 발견의 업적을 인정받아 코플리 메달을 받았다. 조지 3세는 그를 궁정 천문학자로 임명했다. 이후 그는 태양계의 행성과 다른 구성요소들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로 성운구조론·항성진화론·우주진화론 정립에 크게 기여했다.

영국의 천문학자 허셜 천왕성 발견

금주의 노벨상

[노벨문학상] 그리스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 세페리스

그리스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 세페리스  내용시작세페리스(Giorgos Seferis, 1900.3.13 ~1971.9.20)는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청년시절부터 외교관으로 활동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그리스 외교관으로서 활동하였던 세페리스는 당시 출간한 첫 시집 ‘전환점 (I strofi,1931)’으로 촉망받는 시인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1957년부터 영국주재 그리스 대사를 지내기도 하였던 세페리스는 그리스만의 특색을 살린 전통적인 독특한 작품을 다수 남겼으며 영국의 시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몇 편의 수필 또한 중요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세페리스는 1947년 아테네 아카데미로부터 명예시인으로 추대되었으며 세련된 서정성과 신선한 어법으로 그리스 시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작가로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

[노벨물리학상]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아인슈타인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아인슈타인 내용시작"너의 존재가 내 학급에 대한 존경심을 잃게 한다." 학창시절 수학의기본인 구구단도 외우지 못하는 것은 물론 어학과목인 라틴어와 그리스어에서 항상 꼴지를 하는 아인슈타인의 그리스어 교사가 그의 가족들에게 전한 퇴학 권고 사유 구절이다. 20세기 초, 창조성이 뛰어난 대표적 지식인으로 격찬 받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1879.3.14~1955.4.18). 우리는 단편적으로 아인슈타인하면 상대성 이론을 생각하고 상대성 이론하면 곧 아인슈타인을 떠올린다. 1905년 발표한 특수상대성 이론과 이를 확장하여 1915년에 발표한 일반상대성 이론으로 우리는 뉴턴 이래 일반화된 것과는 전혀 다른 시공간의 개념을 갖게 되었고, 중력의 본질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분명 한 사람의 과학자가 할 수 있는 일 중 인류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업적은 단순히 상대성 이론에만 머물지 않는다. 실제로 1922년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것은 상대성 이론이 아니었고 역시 1905년에 발표한 광전효과에 대한 이론적 설명이었다. '광양자 가설'로 알려진 이 이론에 의하면 빛도 입자의 성질을 가지는데, 이것은 1900년 플랑크에 의해 제시된 에너지의 양자화 개념을 뒷받침하여 20세기 과학의 최대 걸작인 양자역학을 낳게 하는 시금석 중의 하나가 되었다. 독특한 것은 양자역학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물리현상을 확률적 개념에 의해 설명하려 하자, 아인슈타인은 오히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로 확률적 해석을 강하게 반대하여, 충분히 노력하면 자연계의 질서를 확실하게 찾아낼 수 있다고 확신 하였다. 1933년 독일의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가 득세하면서 독일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 유태인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고등연구소에서 자연계에 존재하는 힘들을 하나의 형식으로 통일하려는 통일장 이론을 정립하는데 여생을 바쳤다. 그러나 1955년 죽을 때까지 아인슈타인은 그 바람을 성취할 수는 없었다. 자연과학 분야에 많은 지원 활동을 벌이고, 아인슈타인의 업적을 기리고 발전시키기 위해 설립된 미국의 아인슈타인학술재단은 1991년에 아인슈타인 노벨평화상을 마련, 해마다 2명의 과학자에게 수상의 영광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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