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 최초, 팬텀기 부대 창설
1960년대 말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에 따라 우리정부는 전반적인 국군의 군사력 강화가 시급하다고 판단, 미국에 전력증강을 요청하였다.
전력증강을 위한 1년여 동안 치밀한 외교전을 펼친 끝에 미국 정부가 동맹국에 지원하는 특별군사원조금을 받아내기에 이르렀고 이와 함께 육, 해, 공군의 전반적인 전력증강을 착수하게 되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작성된 한국의 전력 증강 기본 계획은 미군이 도착할 때까지의 기간을 45일로 보고 그 기간 동안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전쟁물자 비축과 우리 국군의 전반적인 전력을 증강하는 것이 그 핵심 내용을 이루고 있다.
이 계획에 따라 공군의 핵심 전력증강사업의 일환으로 공군 비행장 개선을 포함하여 새로운 전투기의 도입을 추진하였고 그 결과 월남전과 중동전에서 탁월한 제공능력을 인정받은 당시 최신예 전투기인 F-4 팬텀을 도입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초 미국은 생산중단에 처한 F-102기를 한국에 강매 할 예정이었으나 당시 베트남전에서 한국의 추가파병 또한 절실한 터인지라 결국 우리정부의 요청을 수락하여 팬텀기 18대 1개 대대를 한국에 판매하였다.
1969년 8월에 인도된 F-4D 팬텀은 당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전폭기로서 한국동란 이후 1961년 도입된 F-86F과 1965년 도입한 F-5A에 이어 이후 40여 년간 한국공군의 주력 전투기로 운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