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극작가 보마르셰
파리 출생의 보마르셰는 여러 방면으로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시계상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뛰어난 시계제작기술과 더불어 하프 연주에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재능을 인정받아 궁정에 출입하기 시작한 그는 유력인사들과 쉽게 친분을 쌓을 수 있었으며 그들이 주는 정보를 이용해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보마르셰의 진정한 재능은 그 어느것 보다 글을 쓰는 재주에 있었다. 자신의 부를 이용해 귀족의 작위를 산 그는 본격적인 극작가의 길로 들어서 몇 편의 희곡을 완성시켰다. 그중 1775년 초연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둔 '세비야의 이발사'는 그를 인정받는 극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이를 계기로 루이 16세의 밀사로까지 활약을 하게 되었다. 작가들의 권익보호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그는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 등 격동의 시기를 보내며 '세비야의 이발사'에 이어지는 3부작 '피가로의 결혼(Le Mariage de Figaro, 1781), '죄 있는 어머니 (1792)' 등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