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등에 의하면, 동부여는 해부루가 왕조를 창업하였고 금와(金蛙)와 대소(帶素)가 뒤를 이어 재위하였다. 특히 국상
(國相) 아란불(阿蘭弗)이 “천신(天神)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하여 동해가로 국가를 옮길 것을 주장하자, 이에 해부루는 천도하고
국호를 동부여라 하였다 한다.
동부여(東夫餘)는 해부루(解夫婁)가 건국한 부여족 국가이며『삼국사기』와『삼국유사』에는 고구려 건국시조인 주몽(朱蒙)의
출자처로 기록되어 있다.「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에는 고구려 시조인 추모왕(鄒牟王)의 속민(屬民)이었으나 도중에
반(叛)했기에 광개토대왕의 정벌을 받는 존재로 등장한다.
북부여의 왕인 해부루의 신하 아란불 꿈에 천제가 나타나서 “앞으로 내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려고 하니 너는 다른
곳으로 가거라. 동해 바닷가에 가섭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땅이 기름지니 도읍을 세울 만하다”라고 했다. 꿈에서 깨어난 아란불은
왕에게 도읍을 그곳으로 옮기도록 권하고 나라 이름을 동부여라고 하였다. 해부루에게는 늙도록 자식이 없어 산천에 기도하여 아들
낳기를 바랐는데 이때 그가 타고 가던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러 큰 돌을 마주보며 눈물을 흘렸다. 왕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사람을
시켜 그 돌을 들추어 보니, 금빛 개구리 모양의 어린아이가 있었다. 왕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는 바로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주시는 것이로구나!” 하고 거두어 기르면서 이름을 금와(金蛙)라고 했다. 금와가 장성하자 태자로 삼았고 왕이 죽자 금와가 그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의 왕위를 태자 대소에게 물려주었다.
북부여 왕 해부루는 서기 전 59년에 나라를 동쪽으로 옮겨 지금의 길림성 북부 부여현 지역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 부여가
동부여로서 서기 494년에 고구려에 투항함으로써 멸망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부여 [東夫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