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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야기

전문가가 들려주는 우표속 세상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우정이야기
제목 우리나라 최고가 편지봉투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11월18일은 달력에 아무런 표시가 없다. 그러니까 국경일도 기념일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근대
우정사에 있어 이날은 역사적인 날이다. 최초의 우정관청인 우정총국이 업무를 시작한 게 1884년 이날이기
때문이다.

우정사업본부가 ‘정보통신의 날’로 정해 기념하는 날은 4월22일이다. 1884년 고종이 우정총국을 세우라는
내용의 전교(傳敎)를 내린 날이다. 우정총국의 설립 근거가 된 날이 공식 기념일이라면 실제 업무개시일은
비공식 생일쯤 되지 않을까. 눈에 띄는 것은 고종의 지시가 있고 우정총국이 업무를 개시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7개월밖에 안된다는 점이다. 당시 조정의 분위기가 근대 우편제도 도입에 매우 적극적이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렇게 의욕적으로 출발한 우정제도가 예기치 않은 정치적 격변에 휩쓸려 초기에 좌초됐다는
점이다. 우정총국 설치를 고종에게 건의했고, 초대 총판(지금의 장관격)으로 임명되기도 한 홍영식이
쿠데타(갑신정변)를 일으켰다가 참형을 당하면서 우정총국 또한 업무 개시 20일만에 폐지된 것이다. 그로
부터 우정제도가 재개되는 데는 10년이란 세월이 걸렸으니 우정사 최대의 불행이다. 또 이 기간에 많은
사료(史料)가 사라지면서 우정사에 공백이 생긴 것도 비극이다.

우표의 가치는 기본적으로 희소성에서 비롯되지만 형태별로 보면 사용필(畢) 우표가 미사용 우표보다,
편지봉투에 붙어있는 우표가 봉투와 분리돼 있는 것보다 비싸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인 문위우표의 가격도 이 원칙에서 조금도 벗어나 있지 않다. 같은 문위우표라도
사용되지 않은 것은 유통 물량이 많아 지금도 큰 돈을 주지 않고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용필 문위우표는
남아있는 게 17장밖에 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문위우표가 편지에 그대로 붙어 있는 실체
봉투는 어떨까. 정확한 가격을 누구도 알 수 없다.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 신문에
‘문위우표 실체봉투가 나왔다’는 기사가 몇번 실린 적이 있으나 번번이 가짜로 판명됐다. 진짜 실물이
나온다면 적어도 10억원은 족히 받을 수 있으리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현존하는 한국 우편물 가운데 가장 값나가는 것은 함경도 경흥우체사(우체국) 소인이 찍힌 태극우표 실체
봉투다. 이 편지봉투는 1993년 5월 스위스 루가노에서 열린 국제우표경매에서 일본우취협회장인 미즈하라
메이소(水原明窓)가 수수료 15%를 포함해 20만7000스위스프랑(당시 약 1억5000만원, 현재 약 2억3700여
만원)을 지불하고 낙찰받았다. 이 편지는 옛 러시아 정부가 서울의 러시아공사에 보낸 공문서를 러시아
관리가 함북 경흥으로 가져와 한성으로 부친 것이다. 1897년 1월28일자 경흥우체사 소인과 2월20일자 한성
우체사 소인이 태극보통 우표 2푼짜리와 25푼짜리에 찍혀 있으며, 뒷면에는 한글로 ‘서울황제 아라사공사
귀하’라고 쓰여 있다.

이 실체봉투를 낙찰받은 미즈하라는 “1971년 헝가리 국제우표전시회에서 이 편지봉투를 처음 본 순간
놀라움에 떨리는 심정을 도무지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후 국제전시회가 열릴 때마다 이 경흥우체사
봉투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했다고 자신의 저서 ‘조선근대우편사’에서 털어놓았다.

그가 이 봉투를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는 구입 경위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이 봉투의 소유자인
러시아인이 스위스 경매에 내놓았을 때 미즈하라는 병상에 있었다. 미즈하라는 경매소식을 듣고 현장에
달려가려 했으나 의사는 비행기를 탈 몸이 아니라며 반대했다. 결국 그는 국제 전화로 입찰에 참여했고,
파격적인 가격을 써내 손에 넣었다고 우취칼럼니스트 여해룡씨는 설명했다.

미즈하라는 이 희귀품을 손에 넣은지 6개월만인 1993년 11월 69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그래서 이 봉투는
미즈하라가 생전에 사재를 털어 도쿄에 설립한 우표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한국 최고의 희귀 우편자료가
일본에 건너가게 된 경위다.

출처 : 이종탁(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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