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반은 우리나라 음식 문화와 함께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던 필수품이자 그 당시 사람들의 풍습과 미감(美
感)이 고스란히 담긴 가구이다. 소반은 다른 가구와 달리 계층을 막론하고 널리 사용되었으며, 현대 주거공
간이 입식으로 변화함에 따라 사용 빈도가 줄긴 했으나 여전히 우리의 밥상과 다과상으로 애용되고 있다.
조선시대 우리나라는 온돌과 좌식 생활 문화, 주거공간과 부엌이 분리된 주거 형태로 서양과 달리 음식을
방으로 옮겨 와 식사를 했다. 소반은 이에 걸맞은 용구로, 식탁의 기능과 함께 음식을 들고 나를 수 있는 쟁
반의 기능을 겸한다. 오늘날과 달리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성별, 나이, 신분이 다른 사람들이 한 상
에서 함께 식사하지 않고 한 사람이 하나의 상을 사용했다. 따라서 집집이 여러 개의 소반을 구비하고 있어
야 했다. 특히 큰일을 치르는 일이 많은 대가에서는 많은 수의 소반을 보유하고, 잔치나 행사 때에 소반을 대
여해 사용하기도 했다.
소반은 음식상을 차리고 운반해야 하므로 한 사람이 운반하기 좋은 크기로, 사람의 어깨너비를 고려해 보
통 40~50cm의 너비로 만들어졌다. 또한, 좌식 가옥 구조에 따라 방바닥에 앉아서 사용하기 편하도록
25~30㎝ 높이로 낮게 제작되었다. 소반을 만드는 데에
는 은행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피나무 등 가
볍고 튼튼하며 가공이 쉬운 나무가 사용되었으며, 물이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표면을 옻칠 등으로 마감
했다. 특히 은행나무를 사용하여 만든 소반을 ‘행자반(杏
子盤)’이라 하는데, 은행나무는 가벼울 뿐만 아니라 탄력
이 있고 잘 썩지 않아 소반을 만들기에 적합한 최상의 재료이다.
소반은 기본적으로 천판(天板), 다리, 운각(雲脚)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판에는 음식물이나 식기를 운반할
때 미끄러져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장자리에 도드라지게 변죽을 두었는데 변죽은 한 장의 통판을
파내어 만들거나 별도로 제작하여 천판에 끼워 접합하기도 한다. 다리는 무거운 그릇이 올라가게 되는 천판
을 받치는 역할을 하며 끝 부분을 2개의 족대(足臺)로 연결하고 일부 형식에서 다리 중간 부분에 중대(中臺)
를 둘러 다리의 힘을 보강한다. 천판 아래에는 다리를 고정하기 위한 구조물로 운각을 두었는데 운각은 완만
한 곡선으로 모양을 내거나 조각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소반은 천판의 형태에 따라 원반(圓盤)·화형반(花形盤)·사각반(四角盤)·다각반(多角盤) 등으로, 다리의 형
태에 따라 구족반(狗足盤)·호족반(虎足盤)·마족반(馬足盤)·일주반(一柱盤)·풍혈반(風穴盤)·통각반(筒脚盤) 등
으로 다양하게 부르며, 산지(産地)에 따라 그 지역색이 뚜렷하여 지역명에 따라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특히
황해도 해주, 전라남도 나주, 경상남도 통영은 소반으로 유명한 지역으로 이곳에서 만들어진 것들을 해주반
(海州盤)·나주반(羅州盤)·통영반(統營盤) 등의 이름으로 부른다.
이렇듯 소반은 사용되는 환경과 사용자의 행동양식을 반영하여 알맞은 재료와 크기로 제작되었으며, 쓰임
에 맞게 다양한 구조와 형태를 보인다. 단순히 음식을 올려놓고 밥을 먹기 위한 기능적인 충족에만 머물지 않
고, 시대상과 그 시대 사람들이 가진 생활양식, 멋, 미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화의 산물인 것이다. 현대에
는 음식상으로의 쓰임은 줄어들었으나 실용성 있으면서도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소반은 여전히 우리 생활
속에서 사용되고 있다. 둥글기도 네모나기도 하며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진 소반. 한 점의 소반 위에 정성스럽
게 차려진 음식을 마주하며 옛사람들의 지혜와 슬기, 마음을 느껴 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월간 우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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