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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 명작을 말하다

우표로 발행된 문화유산을 소개합니다.

우표 명작을 말하다
제목 분청사기상감모란문합(粉靑沙器象嵌牡丹文盒)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No.1 미술관과 우표-분청사기상감모란문합

조선왕조 개국 초기에는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앞 시기의 고려왕조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자 노력했다. 정치체제의 변화와 더불어 불교에서 유교로의 사상 전환은 물론, 심지어 그릇에서까지도 새로운 변화를 보였다. 특히 지배계층의 취미와 기호, 중국 자기(磁器)의 양식 변천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고려시대를 대표하던 청자는 점차 쇠퇴하고 생산을 담당하던 가마와 장인들도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이들은 전국 곳곳에서 새로운 가마를 짓고 새로운 그릇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들이 만들었던 그릇의 바탕이 되는 흙 태토(胎土)는 청자와 유사하지만, 장식과 유약 등 자기의 표현 방식에 새로운 시도가 담겨 있었다. 이것이 분청사기의 시작이다

분청사기는 다양한 문양과 장식은 물론 대담하고 해학적인 문양, 거친 표면감 등이 특징으로 꼽히는 그릇이다. 표현법으로는 고려시대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 상감(象嵌), 일정한 문양의 도장을 가지고 눌러서 표현하는 기법인 인화(印花), 조각칼 등으로 표면을 파내어 문양을 표현하는 음각(陰刻), 산화철 등을 주된 안료로 하고 여기에 점토와 유약 등의 보조제를 혼합하여 잘게 부수고 정제하여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철화(鐵畵) 기법 등이 주로 사용되었다. 또한 이외에도 흰색의 백토 분장을 하고 문양의 여백을 긁어내는 박지(剝地), 백토물에 그릇 전체를 담갔다 꺼내는 덤벙, 백토를 두터운 큰 귀얄 붓으로 바르는 귀얄 등의 기법이 새롭게 적용되었다. 또한 이러한 다양한 기법들을 하나의 그릇에 적용하기도 했다.

분청사기상감모란문합
분청사기상감모란문합

조선 초기인 15세기에 크게 유행한 분청사기는 전국의 생산지를 바탕으로 하여 민간에서는 물론 관청과 왕실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이러한 분청사기는 문양과 기형(器形) 등에서 몇 가지 대표적인 양식을 띠고 있다. 첫째는 고려시대 청자를 계승한 전통적 양식을 보이는 것, 둘째는 중국 도자 양식의 유입을 연상하게 할 만큼 중국 도자를 모방하여 새로운 기형과 문양을 보이는 것, 셋째는 분청사기만의 고유한 기형과 문양을 지닌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조선의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역시 분청사기의 고유 양식을 지닌 것이다.

여기 소개하는 분청사기상감모란문합은 뚜껑이 몸체를 뒤덮는 형식의 합(盒)이다. 합은 국수장국이나 떡국, 밥, 약식, 찜 등 따끈하게 먹는 음식을 주로 담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그릇의 명칭이다. 보통 그리 높지 않은 형태에 둥글넓적하며 음식이 식지 않도록 덮어 두는 뚜껑이 있다. 이 그릇이 바로 그러한 합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 분청사기상감모란문합은 이전 시기의 고려청자 양식을 계승한 것도 아니고, 명나라 도자의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닌, 바로 조선 고유 양식을 보이는 대표작이다. 과감하면서도 대범한 문양, 거친 표면의 질감, 자유로운 구도와 배치, 흙냄새 묻어나는 빛깔 등이 그러하다.

먼저 뚜껑을 보면 중앙에 커다란 모란이 간략하게 상감기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모란의 당초 줄기는 절삭된 측면부로 내려와 꽃과 이어지면서 흰색의 상감으로 표현되었다. 꽃잎과 가지 역시 전반적으로 굵게 표현되었는데, 이처럼 대범하고 거친 모란의 표현법은 같은 시기 다른 여러 분청사기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층으로 구분된 뚜껑의 테두리에는 종속문의 띠를 두르고 풀과 꽃의 문양을 상감으로 표현하여 합의 몸체 구연부(口緣部) 초화문 종속문 띠와 쌍을 이루도록 하였다. 뚜껑 안쪽에는 내화토(耐火土) 받침 5개를 사용하여 번조(燔造)한 흔적이 보인다.

합의 몸체에는 상하의 종속문 띠 안에 뚜껑과 같은 모란당초문이 상감되었다. 중심이 되는 문양인 커다란 모란은 정교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단순함과 생략을 통해 소박하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이러한 모란 표현은 연꽃과 더불어 15세기 분청사기 문양의 주류를 이루었다.

몸체 하단의 밖으로 벌어진 굽은 별도로 제작하여 접합한 것이다. 흙물이 튄 채로 그대로 가마에서 구워지다 보니 몸체 안쪽 일부의 거친 질감과 유색은 마치 흙물 같은 자연스러움을 보여 준다. 이 그릇은 제례(祭禮)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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