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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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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 뒷이야기상세보기
제목 우표가 외교적 분쟁과 전쟁을 일으킨다면 믿으실 수 있습니까?
등록일 2007. 12. 27.
첨부파일 up20130131202719114.gif

도미니카와 아이티 간의 전쟁

지도우표와 지도
설명도미니카(1900.12.21)지도우표와 지도

서인도제도에서 두 번째로 큰 히스파니올라섬의 동반부 2/3에는 도미니카공화국이, 서반부에는 아이티공화국이 차지하고 있는데 1900년 10월 21일 도미니카에서 발행된 지도 우표에 실제 영토보다 더 크게 그려져 아이티의 영을 침범하였습니다.

아이티는 우표 도안의 시정을 요구하였으나 쌍방이 버티다 마침내 전쟁이 일어나 무려 30년이 지난 1929년에서야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3국이 중재하여 겨우 화해가 되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제국의 괴뢰 만주국

[좌] 중국(1926) [우] 만주 (1934)
설명 [좌] 중국(1926) [우] 만주 (1934)

1934년 괴뢰황제 부의의 초상우표가 붙은 우편물이 만주에서 중국 본토로 보내졌을 때 중국정부가 이의 배달을 거부한 일이 있었는데 이 때 수신인에게 개별 통지하여 우편물을 찾아가도록 하면서 부족요금으로 2배의 벌금을 거둔 적이 있습니다. 중국정부는 우편물에 붙은 부의의 초상우표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1926년도에 발행한 중국우표의 지도에 만주가 포함되어 있으며, 일본의 괴뢰정부인 만주제국우표에는 최후의 황제 '부의'를 도안으로 하였다.

그란(대)차코 전쟁(파라과이와 볼리비아 간의 전쟁)

파라과이(1928) / 볼리비아 (1935) / 파라과이 (1957.6.12)
설명 파라과이(1928) / 볼리비아 (1935) / 파라과이 (1957.6.12)

그란차코는 서쪽의 안데스와 동쪽의 파라과이강 사이에 남미 중부의 아르헨티나·볼리비아·파라과이에 걸쳐 면적이 약 77만 7,000㎢입니다.

이 차코 서쪽에서 석유가 발견되어 파라과이에서 먼저 차코 지방을 그려 파라과이령 차코라 글자를 넣은 우표를 1928년과 32년에 발행하였으며, 이에 당황한 볼리비아에서도 1935년 2월 1일에 볼리비아령 차코라 명기한 지도 우표를 24종이나 발행하여 영국자본의 지원을 받은 파라과이와 미국자본의 지원을 받은 볼리비아 간에 1932년부터 1935년까지 3년간 차코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1938년 아르헨티나의 조정으로 현재의 국경선이 확정되었으며, 볼리비아 영토는 독립 당시의 3/5으로 줄었습니다.

파라과이는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는 뜻에서 1957년 6월 12일 "전쟁의 영웅들"이라는 기념우표 25종을 발행하였습니다.

코스타리카와 파나마 간의 분쟁

파나마와 국경 분쟁에 대한 평화적 해결 기념우표(19944.9.18)
설명 파나마와 국경 분쟁에 대한 평화적 해결 기념우표(19944.9.18)

1941년까지 파나마와 코스타리카간에는 국경선이 없었는데 1921년 코스타리카는 태평양 연안의 코토 지역 점령을 시도하였으나 코스타리카의 요청에 따라 미국의 중재로 확전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 결과 파나마는 코토에서 철수하였고, 양국 간의 관계는 1928년까지 단절되었다가 1938년 화해 협정이 체결되었지만 코스타리카 정부는 입법부의 비준을 폐기하면서까지 강력하게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1941년 공동 영역에 합의하였습니다.

포크랜드 전쟁

[좌] 아르헨티나 (1982.6.12)[우] 말비너스 회복기념
설명 [좌] 아르헨티나 (1982.6.12), 말비너스 정책 및 사령관 153년 [우] 말비너스 회복기념(1983.4.9), 말비너스(포크랜드)섬이 아르헨티나 령으로 표시되어 있다.

남미대륙의 동남단, 아르헨티나 대륙부에서 약 500㎞ 떨어진 남대서양의 소도인 포크랜드(아르헨티나 명은 말비너스)의 영유권을 둘러싼 영국과 아르헨티나간의 분쟁은 아르헨티나가 1982년 4월 2일 무력 점령을 감행한데서 발단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영국은 근해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으며, 또 남극대륙에의 전진기지로서의 포클랜드 방위를 위하여 기동부대를 파견하였고, 75일간의 격전 끝에 6월 14일 아르헨티나군의 항복으로 전쟁을 종결시켰습니다.

사상자 630명과 항공기 94대, 함정 11척을 잃은 아르헨티나는 거의 국력을 총동원하는 모험으로 영국보다 더욱 많은 전비를 염출하여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몰렸습니다.

영국은 사상자 452명과 항공기 25대, 함정 13척을 잃었으며 전비 15억 달러를 소비, 국위선양 등 작은 성과에 비하여 커다란 경제적 부담을 안게 되었습니다.

포크랜드 해방 1주년 기념
설명 영국 포크랜드령 (1983.6.14), 포크랜드 해방 1주년 기념, 여백에 영국군 참전부대를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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